어느 한 수험생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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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계신 오르비언님들 안녕하세요.
우선 저는 8학군 학교를 다니는 고3이고, 이 지역의 여느 아이들이 그러하듯 입시판에서 유명하다는 강사분들 현강 다니면서 비싼 자료도 받을 만큼 받는데, 공부는 제대로 안 해서 높은 목표를 성적이 받쳐 주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중학생 때까지도 부모님이 학업 관련 지원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누리는 기회들이 누군가에게는 얻고 싶어도 못 얻는 갈망의 대상이 아닌가 싶어 요즈음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헌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공부가 1순위였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거든요.
제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겁 많고 소심하던 저는, 7살 때 호주 유학을 떠났습니다. 낯선 장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그저 매일매일을 울음으로 채우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저는 초등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도 별로 없었고, 여전히 수틀리면 우는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많이 고생을 했었죠.
중학생이 된 저는, 잘나가는 아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때로는 저를 업신여기는 친구들의 비위를 맞추면서까지 겉으로 보이는 친구 숫자에 집착했었는데, 어쩌면 저는 사람이 고팠던 것 같아요. 그치만 저의 미숙한 사회성 탓에 상처만 가득 입고 졸업을 했습니다.
잠시 숨을 돌렸던 저의 고1.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났고, 학교 생활이 즐겁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여태껏 부딪치고 깨지며 기른 사회성이 드디어 빛을 발한 건지, 동아리에서 선배들과도 친분을 쌓으며 한 해를 성공적으로 마쳤었죠.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저의 장이 말썽이었습니다. 24시간 지속되는 복통, 횟수를 셀 가치도 없는 잦은 설사. 극심한 장염에 걸린 상태가 매일 지속되었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것 같네요. 당시 고2였던 저에게 있어 공부는 커녕, 교우관계마저도 뒷전이었습니다. 당장 제 몸 하나 이끌고 학교에 나가는 것부터 용기 있는 도전이었거든요. 이 시기에 사람이 너무 차가워 다가가기 힘들다는 말을 질리도록 들었을 정도이니, 대강 짐작이 가시겠죠.
참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네요. 눈 깜짝할 새 고3이 된 저에게, 이제는 수능이라는 현실이 코앞에 다가와 저의 목을 죄고 있습니다.
저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을 참 좋아합니다. 인간은 세상 살이로부터 의미를 찾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끝없이 투쟁하고 반항해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저마다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어쩌면 카뮈는 시대를 앞서, 2025년 우리나라의 수험생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끝을 알 수 없는 막연한 공부, 운적인 요소가 유의미하게 작용하는 시험 성적, 1점 차이로 갈리는 대학의 수준. 우리는 수험 생활의 의미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펜을 놓지 않고, 책상을 떠나지 않는 우리의 태도는, 가파른 산을 따라 굴러떨어질 바위임을 알면서도 산꼭대기로의 운반을 멈추지 않는 신화 속 시지프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전국 각지의 시지프 여러분! 그대들을 향한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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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결론이 왜 그렇게나지

잘읽었어요 오늘 국어공부안했는데이걸로퉁쳐야지
시지프가 제가 아는 시지프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파란만장하지 않고 나름 일반적인데
글 유려하게 잘 쓰시네요
과하지도 밋밋하지도 않은 글쓰기가 정말 힘든데.. 잘쓰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