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kky Shibaseki [1212576] · MS 2023 · 쪽지

2025-05-07 18:28:18
조회수 54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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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너무 아까워.

외형적으로 못나지도 않았고, 키가 작은 것도 아니고, 집이 못 사는 것도 아니고, 재능이 없지도 않아.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사람인데 제대로 뜻을 펼치지 못하는게 너무 아까워.


딱 하나 단점이 있는데, 바로 나약함이야.

난 이제 우울증, 무기력증, 양극성 장애 이런 잡다한 병도 실재하는지 모르겠어.

이것도 다 똑똑한 인간들이 나약한 인간들 어떻게든 벗겨먹으려고 정의한 개념들인거 같아.

가정폭력, 가장의 부재, 그로 인한 모든 병들, 그런건 다 허상이 아닐까.

그냥 내 나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싫어서 어떻게든 남탓하는 거 아닐까.


요즘 세대가 대부분 부족함 없이 자라와서 너무나도 나약한 거고, 난 그 중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해.

부모 세대 말 들어보면 나보다 힘들면 힘들었지, 절대 풍족하게 자라오지 않았어.

내가 그 세대에 태어났다면 적응 못하고 자살했을 거 같아.

근데 그들은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와서 지금의 부를 이뤘어.
정말 대단해.

왜 난 못할까, 같은 인간인데.


의사 선생님도 지난 6년간 내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말씀하시고, 내가 느끼기에도 그건 사실이야.

다만, 내가 원하는 이상, 아니 이상도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일반인’의 기준에 난 아직도 한참 못 미친다는게 개탄스러울 뿐이야.


0에서 꾸역꾸역 20까진 어떻게 올려왔는데,

내가 생각하는 정상인의 기준은 한 100쯤 되는 거 같아.

그렇다고 내가 너무 엄격한 잣대를 내세우는 건 아니야.

그냥 객관적으로 봐도 난 한참 밑바닥에 있어.


내가 노력을 안 한것도 아니야. 남이 볼땐,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내가 노력을 안 한것 같다고 말하지만, 난 내 모든 안 좋은 것들과 끝없이 싸워가면서 여기까지 온거라고 생각해.

근데 아직도 80이나 더 가야되네.

이젠 좀 지쳐.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난 수능을 보기 적합한 사람이 아니야.

누구보다 게으르고, 누구보다 나약하고, 누구보다도 의지박약이야.

하지만 난 내가 맛봤던 내 고점들이 너무 아까워.

글 초반에 말했다시피 난 부족한게 없이 자라왔어. 

심지어 공부에 재능이 꽤나 있어. 그냥 하기만 하면 돼.

서울대든 뭐든 다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난 너무나 나약해.


국어는 노베였던 22 수능때도 2등급은 나왔으며, 다음 해에는 백분위 99를 찍었고, 지구는 두달만에 4등급에서 1등급까지 올려놨어.

이건 결코 재능이 부족한게 아니야.

진짜 하기만 하면 안될게 없어. 근데 안해 이 병신새끼가.

난 미치겠는거야.


무슨 느낌이냐면 내가 나를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는 느낌이야.

드라마의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지.

존나 답답한 새끼들 있잖아. 그게 나야.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가정형편 때문에 수능 준비를 못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안해 씨발.

아무리 티비 화면을 통해 뭐라 뭐라 말을 해도 듣지를 않아.

난 그러니까 너무 답답한거야.

그러니까 내가 더더욱 수능을 포기할 수 없는거야.

가능성이 분명 있거든.


가능성에 중독된 상태.

이 말을 내가 정말 많이 싫어하는데, 역설적으로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인 거 같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어.

그냥 이렇게 “난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야.”를 수백번 외치다가 서른에 접어드는 게 아닐까 싶은.


더 이상 이렇게 살기가 싫어. 바꾸려고 노력도 많이 해봤어. 근데 이미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버렸어. 지쳐.

현역, 재수 땐 독재를 안 가는게 문제였지 가기만 하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할 자신이 있었어.

근데 이 나이쯤 되니까 그것도 이제 옛말인 거 같네.

점점 내가 바라는 서울대와는 멀어지고 죽음과 가까워지는 걸 느껴.


서울대에 간다면 내 모든 상태가 호전될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어.

내 역린 중 하나인 학벌 컴플렉스가 해결되는 거니까 굉장한 효과가 있지 않을까.

삶에 대한 내성이 생긴 더 단단한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근데 이런 생각도 다 무의미한거 같아.

공부를 안하는데 어떻게 서울대를 가니.


여기 사람들 너무 착해서 내가 또 우울 똥글 싸지르면 맹목적으로 위로해줄 거란 걸 잘 알아.

근데 난 그런거 받기도 아까운 사람이야.

내가 너네였으면 그냥 병신새끼 하나 동물원에서 관람하는 기분일 거 같아.

더 이상 위로도 하지 말아줘. 그냥 난 평생 이렇게 살 거니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고, 더 이상 빚지고 싶지 않아.

그냥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모르겠다.




rare-천벌 rare-PAKA rare-Do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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