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식T [68501] · MS 2004 · 쪽지

2025-05-02 15: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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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기출로 시작하는 인문논술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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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특강 - 연세대 2021 기출 인문사회 오후 1-1번 - 사실추론.pdf

연세대 기출로 시작하는 인문논술의 기초






대치 오르비 인문논술 최은식






문제 소개 및 접근 전략




안녕하세요. 오르비에서 여러 해 동안 논술을 가르치고 있는 최은식입니다. 올해도 좋은 기회를 만나 여러분들과 오르비에서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도 고등학생 때 오르비를 매우 매우 매우 열심히 하던 헤비 유저 출신이어서, 늘 오르비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반갑습니다. :)



오늘 함께 풀어볼 문제는 연세대학교 2021학년도 인문사회 오후 기출 1-1번 문제입니다. 먼저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제시문 (가)와 제시문 (나)의 관점에서 제시문 (다)의 등장인물 '임 씨'의 노동을 설명하시오. (600자 안팎, 25점)


연세대 논술은 총 네 문제가 출제되는데, 그중 첫 번째 문제이며 배점은 25점입니다. 한 문제당 보통 30분 정도 시간이 배정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글자 수는 600자 안팎인데, '안팎'은 보통 ±10%를 의미하므로, 540자에서 660자 사이로 작성하면 됩니다.


문제를 보면 구조가 보입니다. '제시문 (가)와 제시문 (나)의 관점에서' 라는 부분이 있고, '제시문 (다)의 등장인물 '임 씨'의 노동을 설명하시오'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설명'입니다. 이때 설명을 위한 '판단 기준'이 되는 제시문이 있고, 설명의 '대상'이 되는 제시문이 있습니다.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요? 바로 (가)와 (나)의 관점입니다. 이 두 제시문이 우리가 임 씨의 노동을 분석하고 설명할 때 사용할 사고의 틀, 즉 '기준'이 됩니다. 기준이 두 개네요.


설명의 대상은 무엇인가요? '제시문 (다)의 등장인물 임 씨의 노동'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분석해야 할 '대상'입니다.


이러한 '기준-대상' 구조의 문제는 연세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학의 논술 시험에서 출제되는 아주 중요한 유형입니다. 따라서 이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독해 순서를 정하는 것입니다. 많은 학생이 문제만 읽고 바로 제시문 (가)부터 읽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가)가 대상 제시문이었다면 처음부터 분석의 방향이 완전히 어긋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판단 기준'이 되는 제시문을 먼저 읽는 것입니다. 기준 제시문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가)와 (나))을 통해 분석의 틀을 먼저 잡고, 그 틀에 맞춰 대상 제시문 (다)을 해석해야 합니다. 대상 제시문을 먼저 읽으면 대상 제시문의 내용 중 어떤 내용이 중요한지 알기 어렵고, 대상 제시문 전체의 주제 의식에 불필요하게 매몰될 수 있습니다. 기준 관점에서 보면 중요하지 않은 내용인데도 말이죠.


기준 제시문이 여러 개일 경우(여기서는 (가), (나)), 어떤 것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까요?


  1. 비문학 우선: 기준은 보통 논리적인 '이론'이나 '관점'을 제시하므로, 문학보다는 비문학 제시문이 내용을 명확하게 정리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비문학 제시문이 있다면 먼저 읽는 것이 좋습니다.

  2. 쉬운 것 우선: 둘 다 비문학이라면(이 문제처럼), 또는 둘 다 문학이라면, 훑어보고 더 쉽다고 판단되는 것부터 읽으세요. 출전 정보가 있다면 교과서 지문 등이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출전 정보가 없다면, 몇 문장 읽어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3. 유연성: 특정 제시문을 읽다가 너무 어렵다고 느껴지면, 다른 기준 제시문으로 잠시 넘어가는 유연성도 필요합니다. 다른 제시문을 통해 얻은 정보가 어려운 제시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 문제의 경우, (가)와 (나) 모두 비문학적 성격이 강합니다. 둘 중 더 쉬워 보이는 것을 먼저 읽되, 어려우면 다른 것으로 넘어가는 전략을 사용하면 됩니다.


독해를 할 때는 다음 사항에 유의하세요.

  • 한 번에 깊게 읽기: 논술은 수능 국어와 달리 시간이 비교적 여유롭습니다(수능의 약 2배). 여러 번 급하게 읽기보다, 한 번 읽을 때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생각하면서, 내용을 완벽히 정리하며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읽자마자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세요.

  • 핵심 문장 밑줄 및 메모: '감'에 의존하지 말고, 문맥적으로 뒷받침되는 중요한 문장에 밑줄을 긋고, 인과관계나 핵심 논증 구조는 화살표 등으로 표시하며 간략하게 메모하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길게도, 아예 안 하지도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패러프레이징(바꿔쓰기) 습관: 제시문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 표절 위험이 있습니다. 3어절 이상 동일하면 표절로 간주될 수 있으니, 핵심 내용은 유지하되 자신의 언어로 바꿔 표현하는 연습을 하세요.




제시문 (가) 분석: 노동의 본질적 가치와 만족

자, 그럼 이제 판단 기준이 되는 제시문 (가)부터 자세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제시문 (가)

노동이란 인간 존재의 근본적 행위이다. 노동은 자연의 세계를 인간의 세계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공동의 노동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생산된 세계이다. 또한, 노동은 의도와 목적으로부터 나오는 행위이다.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 차이다. 동물의 욕구는 자연을 통해 직접 충족된다. 이에 반해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오직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활동을 통해서만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한 활동은 노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인간은 재료를 자연 속에서 찾으나, 재료 그 자체가 아니라 재료의 가공과 그 산물에서 마침내 만족을 얻게 된다. 노동의 희열은 단순한 근육 사용이나 숙련성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인간세계의 건설에 참여한다는 인식에서 생겨난다. 노동하는 사람은 생산한 결과물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 노동자의 만족감은 공동으로 창조한 생활양식 속에서 그리고 주변 환경을 함께 건설하는 데서 비롯된다.

역사적으로 노동에 대한 평가는 변해왔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모든 육체적인 노동을 저속한 것으로 경멸했다. 완전한 인간은 귀족으로서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며 정신적이고 예술적인 활동을 하는 존재여야 했다.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노동을 죄에 대한 벌로 보았다. 인간이 천국에서 쫓겨났고 죄의 몰락을 짊어지고 있으며 결국 얼굴에서 땀을 흘려야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교는 노동을 큰 축복으로 본다. 칼뱅주의는 노동의 성과를 구원의 징표로 이해했으며, 이러한 관점은 종교의 영역을 넘어서 세속적 직업의 책임 개념으로 이어졌다. 노동이 축복이고 존엄이며 인간의 가치척도라는 인식은 그러한 바탕에서 생겨났다. 여기에는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아야 한다"는 당위적인 요구와 "일함으로써 절망하지 않는다"는 내면의 축복이 포함된다.



제시문 (가) 해설

제시문 (가)는 노동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요? 첫 문장부터 "노동이란 인간 존재의 근본적 행위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뒤에 "노동은 자연의 세계를 인간의 세계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라는 이유가 제시되므로 중요한 문장입니다. 즉, 노동은 근본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이 '근본적 가치'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좁은 의미의 합리성)을 넘어섭니다. 이는 마치 봉사 활동을 점수 때문만이 아니라 '착한 일'이라는 도덕적, 윤리적 가치(당위성)나 인간의 '본질'에 부합하는 '고귀한' 행위로 여기는 것과 유사합니다. 즉, 노동은 그 자체로 존엄하고 가치 있는 행위라는 관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노동은 "자연의 세계를 인간의 세계로 변화시키는" 행위, 즉 "인간 세상을 건설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동은 동물과 달리 "의도와 목적으로부터 나오는 행위"이며, 인간은 이러한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활동"(노동)을 "통해서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무엇을 얻을까요? 단순히 결과물만이 아니라, "재료의 가공과 그 산물에서 마침내 만족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이 "노동의 희열"은 단순한 육체 활동이 아니라 "인간세계의 건설에 참여한다는 인식에서 생겨난다"고 강조합니다. 즉, 노동은 만족과 행복의 원천이 됩니다. 노동자는 "생산한 결과물" (인간 세상, 공동으로 창조한 생활양식)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만족감을" 얻습니다.

뒷부분에서는 노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다룹니다. 고대 그리스나 유대-기독교에서는 노동을 저속하거나 죄에 대한 벌로 보았지만, 이는 제시문의 관점과 다릅니다. 제시문은 "신교"의 관점을 중요하게 제시하는데, 신교는 노동을 "큰 축복"으로 보았고, 이는 "세속적 직업의 책임 개념"으로 이어졌습니다.

결정적으로, "노동이 축복이고 존엄이며 인간의 가치척도라는 인식" 이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존엄'이라는 단어는 앞서 말한 '근본적 가치', '당위적 가치'와 연결됩니다. 또한, 여기에는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아야 한다"는 당위적인 요구와 "일함으로써 절망하지 않는다"는 내면의 축복(만족, 행복)이 포함된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제시문 (가)의 핵심 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노동의 당위적 가치: 노동은 인간 존재의 근본이며, 그 자체로 존엄하고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가치 있는 행위이다.

  2. 노동을 통한 만족: 인간은 의식적인 노동 과정과 그 결과(인간 세계 건설 참여)를 통해 만족감과 행복, 즉 내면의 축복을 얻는다.

이 두 가지 관점을 모두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시문 (나) 분석: 노동 해방 이후의 여가와 삶의 기술


이제 두 번째 기준인 제시문 (나)를 살펴보겠습니다.


제시문 (나)

인간은 창조된 이래 처음으로 자신이 풀어야 할 진정 영구적인 문제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절박한 경제적 걱정에서 해방된 상황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과학과 축적된 자본 덕분에 얻게 된 여가를 어떻게 사용해야 지혜롭고 훌륭하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악착같고 집요한 돈벌이꾼들은 인간을 경제적 풍요의 품으로 데려다줄 수 있다. 하지만 막상 풍요가 왔을 때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삶의 기술 자체를 생생하게 구현할 줄 알고 더욱 완벽해지도록 가꿀 줄 아는 사람들, 그래서 생계 수단을 위해 자신을 팔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내 생각에 어떤 나라나 민족도 여가와 풍요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은 너무나 오랫동안 즐길 줄은 모르고 그저 죽도록 일만 하도록 훈련받아왔기 때문이다. 별다른 재능이 없는 보통 사람에게는 이런 상황이 왔을 때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가 실로 두려운 문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부유한 계급들이 벌이고 있는 행태나 그들이 기껏 성취랍시고 해놓은 것들을 보면 참으로 암울하다. 이들은 저 약속된 땅을 먼저 보고 캠프를 마련한 선발대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 재난에 가까운 실패만 저질러왔다.

나는 확신한다. 우리가 약간만 더 경험을 쌓으면 자연으로부터 얻을 이 새로운 전리품을 오늘날 부자들이 쓰고 있는 방식과는 아주 다르게 쓸 수 있게 될 것이며, 부자들이 계획하는 삶과는 아주 다른 계획으로 삶을 짜나갈 수 있다고.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래 인간은 노동에 얽힌 원죄 의식이 너무나 강했기에 무언가 일을 하지 않으면 만족을 느낄 수 없었다. 우리는 오늘날의 부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우리 자신을 위해 하게 되고, 의무와 과제와 지루한 일상으로 찌든 노동을 기꺼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아직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남은 노동을 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많은 사람과 공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 강제로서가 아니라 되레 풍요를 분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분배하는 노동의 양이 세 시간 정도의 교대시간 혹은 주당 15시간 정도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당분간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노동의 원죄 의식이라는 것도 대부분 하루 세 시간 정도 노동이면 충분히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제시문 (나) 해설


제시문 (나)는 어떤 상황을 가정하고 있나요? "절박한 경제적 걱정에서 해방된 상황", 즉 과학 기술과 자본 축적 덕분에 더 이상 생계를 위해 억지로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이때 인류가 직면할 "진정 영구적인 문제"는 바로 "얻게 된 여가를 어떻게 사용해야 지혜롭고 훌륭하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입니다. 이것이 제시문 (나)의 핵심 질문입니다.


과거 인간은 생존을 위해 "즐길 줄은 모르고 그저 죽도록 일만 하도록 훈련받아왔다" 고 지적합니다. 또한 "노동에 얽힌 원죄 의식", 즉 일을 하지 않으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심리가 강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과거의 습성과 심리 때문에, 막상 노동에서 해방되어도 여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두려운 문제"가 될 수 있고, 이미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부유한 계급들"의 행태처럼 "암울한" 방식으로 여가를 낭비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들의 모습은 '재난에 가까운 실패'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시문 (나)는 단순히 일만 하던 과거("노동의 노예")나, 의미 없이 여가를 낭비하는 부자들의 모습 모두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신 "삶의 기술 자체를 생생하게 구현할 줄 알고 더욱 완벽해지도록 가꿀 줄 아는" 삶을 제안합니다. 이는 "생계 수단을 위해 자신을 팔지 않는" 주체적인 삶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의무와 과제와 지루한 일상으로 찌든 노동"은 줄이고, "아직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남은 노동"은 "최대한 많은 사람과 공유"하자고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주당 15시간 정도"만 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노동 시간을 줄이고 공유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풍요 분배 (행복 추구): 이는 경제적 강제가 아니라 "풍요를 분배하는 것"이므로, 사람들이 물질적 여유 속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합니다.

  2. 원죄 의식 해소 (당위 충족): 하루 세 시간 정도의 노동은 여전히 남아있는 "노동의 원죄 의식"을 충분히 달랠 수 있게 해줍니다. 즉, 노동을 아예 안 함으로써 느끼는 죄책감이나 불안감 없이, 도덕적으로도 당당하게 여가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정리하면, 제시문 (나)의 핵심 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노동 집착/강박 비판: 생계나 물질 때문에 과도하게 노동하거나, 일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원죄 의식'에 얽매이는 것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2. 여가의 현명한 활용: 노동에서 해방된 후 확보된 여가를 '삶의 기술'을 연마하고 발전시키는 데 사용하여, 진정한 '풍요(행복)'와 '지혜/훌륭함(당위)'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3. 적정 노동의 필요성: 이를 위해 과도한 노동은 줄이되, 필요한 노동은 사회적으로 분담/공유하며(예: 주 15시간), 완전한 여가보다는 적절한 수준의 노동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시문 (가)가 노동 자체의 긍정적 가치(당위+만족)를 강조한다면, (나)는 과도한 노동을 비판하고 노동에서 해방된 이후의 삶의 방식(여가 활용 + 적정 노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시문 (다) 분석: 임 씨의 노동


이제 분석 대상인 제시문 (다)를 읽고, 임 씨의 노동이 어떤 모습인지 파악해 보겠습니다.


제시문 (다)

"비가 오면 또 다른 벌이가 있어요?"

"비 오는 날엔 아침부터 가리봉동에 가야 합니다."

"가리봉동에?"

"예, 사장님은 몰라도 됩니다요. 암튼 비가 오면 난 가리봉동으로 갑니다."

임 씨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언뜻 지었다. 이렇게 힘든 일을 매일같이 계속했으면 비 오는 날 하루쯤은 쉬어야 할 게 아닌가, 하고 말해 주려다가 그는 입을 다물었다. 누군들 쉬고 싶지 않을 거냐는, 하루에 두 끼는 라면으로 배를 채우는 식구들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어찌 비 오는 날이라 하여 아랫목에서 뒹굴기만 하겠느냐는 데 생각이 미쳤던 까닭이었다.

간단하게 여겼던 옥상의 공사는 의외로 시간을 끌었다. 홈통으로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경사면을 맞춰야 하는 것도 시간을 더디게 했고 깨 놓은 자리와 기왕의 자리의 이음새 사이로 물이 새지 않도록 면을 고르다 보니 조금씩 더 깨부숴야 하는 추가 부담도 잇따랐다. 이미 밤은 시작된 것이나 진배없어 이웃집들의 창문에 하나 둘 불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임 씨는 만족하다 싶을 때까지는 일손을 놓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그러고도 모자라 이왕 덮어 놓은 곳을 한 번에 으깨어 버리고 또 새로 흙손질을 거듭하곤 했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임 씨는 도무지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몇 번씩이나 옥상에 얼굴을 디밀고 일의 진척 상황을 살피던 아내도 마침내 질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대강 해 두세요. 날도 어두워졌는데 어서들 내려오시라구요."

"다 되어 갑니다. 사모님, 하던 일이니 깨끗이 손봐 드려얍지요."

다시 방수액을 부어 완벽을 기하고 이음새 부분은 손가락으로 몇 번씩 문대어 보고 나서야 임 씨는 허리를 일으켰다. 임 씨가 일에 몰두해 있는 동안 그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일을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저 열 손가락에 박인 공이*의 대가가 기껏 지하실 단칸방만큼의 생활뿐이라면 좀 너무하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목욕탕 일도 그러했지만 이 사람의 손은 특별한 데가 있다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주무르고 있는 일감에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되어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는 임 씨의 열 손가락은 손가락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공이: 굳은살



제시문 (다)의 핵심 내용 파악


제시문 (다)는 화자인 '그'의 시점에서 옥상 방수 공사를 하는 '임 씨'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임 씨의 노동은 어떤 특징을 보이나요? 앞서 분석한 기준 (가)와 (나)의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임 씨의 노동 관련 핵심 팩트를 정리해 봅시다.


  1. 양적 측면: 고된 노동과 쉼 없는 일상

  • 임 씨는 "힘든 일을 매일같이 계속"합니다.

  • 심지어 "비 오는 날"에도 쉬지 않고 다른 벌이를 찾아 "가리봉동에 가야 합니다". 이는 "하루에 두 끼는 라면으로 배를 채우는 식구들을 거느린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인 것으로 암시됩니다.

  • 옥상 공사 역시 "의외로 시간을 끌었고", "이미 밤은 시작"되었는데도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1. 질적 측면: 장인 정신과 완벽 추구

  • 임 씨는 대충 마무리하라는 집주인 아내의 말에도 "하던 일이니 깨끗이 손봐 드려얍지요"라며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합니다.

  • 자신이 "만족하다 싶을 때까지는 일손을 놓고 싶지 않은 모양"이며,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심지어 "이왕 덮어 놓은 곳을 한 번에 으깨어 버리고 또 새로 흙손질을 거듭"할 정도로 완벽을 기합니다.

  • 화자는 임 씨의 손이 "특별한 데가 있다"고 느끼며, 일감에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되어 날렵하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단순한 노동 이상의 숙련됨과 몰입을 발견합니다.

  1. 결과: 고된 노동과 어려운 생활

  • 이렇게 열심히 일하지만, 그의 노동의 대가는 "기껏 지하실 단칸방만큼의 생활"에 불과한 것으로 보여, 화자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정리하면, 임 씨는 가족 부양의 책임감 때문에 비 오는 날에도 쉬지 못할 정도로 양적으로 많은 노동을 하며, 동시에 자신의 일에 장인 정신을 가지고 질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죠.



이제 이 임 씨의 노동을 기준 (가)와 (나)의 관점에서 각각 해석해 보겠습니다.


임 씨 노동에 대한 다각적 해석


 제시문 (가)의 관점 적용


제시문 (가)는 노동을 근본적이고 존엄하며 만족을 주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이 관점에서 임 씨의 노동은 어떻게 평가될까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당위적 가치 실현: 임 씨는 고된 상황 속에서도 "매일같이" 노동하며 "깨끗이 손봐 드리려" 책임을 다합니다. 이는 (가)에서 말하는 노동의 '근본적'이고 '존엄한' 가치를 실천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생계 때문이라 할지라도, 그는 노동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행위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 노동을 통한 만족: 임 씨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만족하다 싶을 때까지" 완벽을 추구하며 일에 몰두합니다. "이리 재고 저리" 재며 "한 치의 틈도 없이" 일하는 모습은 (가)에서 말하는, 노동 과정 자체와 "인간 세계 건설에 참여한다는 인식"(옥상 수리) 에서 오는 "희열" 과 "만족감"을 느끼는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임 씨는 비록 가난하지만, 노동의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며 그 안에서 자부심과 만족을 찾는, 훌륭하고 존엄한 인간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제시문 (나)의 관점 적용


제시문 (나)는 과도한 노동을 비판하고, 노동 해방 이후 여가를 활용한 '삶의 기술' 연마를 강조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임 씨의 노동은 어떻게 보일까요? 비판적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노동의 노예 / 원죄 의식: 임 씨는 "비 오는 날" 조차 쉬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립니다. 이는 (나)의 관점에서 볼 때, 생계 압박을 넘어 "노동에 얽힌 원죄 의식" 에 사로잡혀 있거나, 즐길 줄 모르고 "죽도록 일만 하도록 훈련받은" 과거의 모습, 즉 '노동의 노예' 상태로 비칠 수 있습니다.

  • 삶의 기술 부재: 임 씨의 삶에서는 노동 외에 다른 것, 즉 (나)가 강조하는 "삶의 기술"을 가꾸거나 여가를 "지혜롭고 훌륭하고 행복하게" 사용할 여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완벽주의적인 노동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일 뿐, 진정한 풍요나 지혜와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 극복 대상으로서의 노동: (나)는 생계 유지를 위한 노동을 궁극적으로 '극복'하고 '줄여야 할' 대상으로 봅니다. 따라서 임 씨의 고된 노동은 안타깝지만 극복되어야 할 현실이지, (가)처럼 그 자체로 긍정할 대상은 아닙니다.

따라서 제시문 (나)의 관점에서 임 씨의 노동은 생계 압박과 원죄 의식에 얽매여 진정한 행복과 삶의 기술을 추구하지 못하는, 안타깝지만 극복되어야 할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효과적인 답안 구성 전략


답안 구성 가이드


자, 이제 두 기준의 관점에서 임 씨의 노동을 분석했으니, 이를 바탕으로 600자 답안을 어떻게 구성할지 구체적인 틀을 짜 봅시다. 앞서 말했듯이, '공통 대상(임 씨의 노동)'을 먼저 제시하고, 각 기준에 따른 분석을 차례로 전개하는 것이 좋습니다. 각 문단은 두괄식으로 작성하며, 주장(결론) - 이유(논거) - 근거(제시문 활용) - 적용(해석)의 논리적 흐름을 따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1. 첫 문단: 대상 요약 (약 100자)

  1. 핵심: 제시문 (다)의 임 씨는 (양적으로 많고 질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노동 중심의 삶을 사는 인물임을 제시합니다. (“제시문 (다)에 따르면 임 씨는…”)

  2. 상술: 비 오는 날에도 쉬지 않고 일하며, 맡은 일에 장인 정신을 발휘하여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을 간략히 부연합니다.

2. 두 번째 문단: (가) 관점 분석 (약 250자)

  1. 주장 (결론): "먼저,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이러한 임 씨는 노동의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는 존엄한 인간으로 볼 수 있다." 와 같이 결론적 평가를 명확히 제시합니다.

  2. 이유 (논거): 왜 그렇게 보는지 (가)의 핵심 논리를 제시합니다. (“왜냐하면 제시문 (가)에 따르면 노동은 그 자체로 인간의 근본적 행위이자 당위적 가치를 지니며, 인간은 노동 과정과 결과에서 만족감을 얻기 때문이다.”)

  3. 근거 (제시문 활용): (가)의 구체적인 내용을 인용하거나 요약하여 뒷받침합니다. (“제시문 (가)에서는 노동이 인간 세계 건설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내면의 축복을 얻는다고 설명한다.”)

  4. 적용 (해석): (가)의 논리를 임 씨의 모습과 연결합니다. (“이처럼 임 씨가 책임감을 가지고 완벽하게 일을 수행하는 모습은 노동의 존엄성을 실천하는 것이며, 그는 이 과정에서 존재의 의미와 만족감을 경험할 것이다.”)

3. 세 번째 문단: (나) 관점 분석 (약 250자)

  1. 주장 (결론): "반면, 제시문 (나)의 관점에서 임 씨의 노동은 생계 압박과 노동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타까운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와 같이 상반된 평가를 제시합니다.

  2. 이유 (논거): (나)의 핵심 논리를 제시합니다. (“제시문 (나)에 따르면 인간은 과도한 노동에서 벗어나 여가를 활용하여 삶의 기술을 연마해야 진정한 행복과 풍요를 누릴 수 있다.”)

  3. 근거 (제시문 활용): (나)의 내용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제시문 (나)에 나오듯, 생계만을 위한 노동이나 원죄 의식에 따른 노동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여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적용 (해석): (나)의 논리를 임 씨의 상황에 적용합니다. (“따라서 임 씨가 쉼 없이 일하는 모습은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나 노동 강박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이 구조를 바탕으로 글을 작성하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답안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조언


지금까지 우리는 연세대 2021학년도 기출 문제를 분석하고, 제시문 (가), (나), (다)를 깊이 있게 독해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답안을 구성하는 전략까지 세웠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구술 글쓰기' 연습입니다. 개요를 완성한 후, 바로 손으로 쓰지 말고 말로 먼저 표현해보는 연습을 충분히 하세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버벅거리겠지만, 반복할수록 논리 전개가 매끄러워지고 표현력이 향상됩니다. 600자 정도는 1분 30초 안에 말로 술술 풀어낼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머릿속으로 충분히 숙달된 내용을 손으로 옮겨 적는 것은 훨씬 수월하고 시간도 단축됩니다. 논술은 결국 생각하는 능력, 즉 두뇌 단련이지 손가락 훈련이 아닙니다. 구술 글쓰기는 손으로만 쓰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사고력과 표현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충분히 연습한 뒤에는 시간을 재고 최대한 빨리 써보는 실전 연습을 하세요. 그리고 자신이 급하게 쓸 때 어떤 실수를 하는지 파악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면 더욱 완성도 높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정확한 독해 → 원칙에 따른 개요 작성 → 구술 글쓰기 숙달 → 빠른 작성 및 검토 → 피드백 및 수정의 과정을 성실하게 반복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긴 글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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