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공과희망 [1382797] · MS 2025 · 쪽지

2025-04-12 01: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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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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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아아, 새여 너는 어디로 흐드러지느냐

햇빛이로되 차가운

고향이로되 낯선

이상(理想)이로되 이상(異常)인

새여, 너는 어디로 날아가느냐


가리워진 거울 속의 애상에 젖은 저 늙은이는

어째서 뒤돌아있는고

늙은이가 얇은 연장으로 변모할 때,

비로소 비로소 나의 모습이 드리워진다

연장의 드리운 나의 모습은 새도 늙은이도 아닌,

그저 벗지 못한 허물을 뒤집어쓴 채 나타나온다


새가 나에게로 단풍잎을 물고 날아올 때,

늙은이의 등에는 시들어버린 솔잎이 자라난다


새가 내게 단풍잎을 건네면,

연장 속의 나는 허물을 싸맨다


새가 늙은이의 눈을 파먹고 떠나면

비로소 비로소 비틀린 상(像) 속의 나는

유리로서 나타나온다


유리에 늙은이의 빛바랜 솔잎이 비치면

솔잎은 다시 푸르름을 되찾고

늙은이의 뺨에는 새순이 피어오른다


마침내 단풍잎이 시들면,

비로소 허물은 아교가 되어 유리를 이어붙이어

이름없는 나를 창조해낸다


아아, 새여

너는 계절이었구나

아아, 새여

너는 이상이었구나

아아, 새여!

너는 어째서 나로서 존재하로되 내가 아닌가

어째서 내게 계절을 가르치는가

아아 새여, 새여.. 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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