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ㄹ [545459] · MS 2014 · 쪽지

2015-12-22 00:40:49
조회수 1,033

수능이 감투가 아닌데.. 참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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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맨날 오르비는 눈팅위주로 하다가 처음 글다운 글을 써보네요.

이건 그냥 제 신세 한탄이고 제가 요즈음 몇일간 겪을 일에 대한 생각입니다.

저는 늦깎이 수험생입니다. 남들보다 두세살 많은 나이에 다시 공부해서 돌아오는 해에는 큰 이변이 나지 않는 이상 소위 남들이 명문대라고 부르는 학교 좋은 과에 진학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자랑하고 싶어서 쓰는 글이 아니니 인증은 이런건 하지 않겠습니다. 주작이라고 생각하실 분들은 생각하세요...

시험을 잘본다는 것은 제 노력에다가 하늘의 도우심도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하며 지내지만 남들에게 크게 자랑할 것도 없고, 시험을 잘봄으로 인해 제가 다른 수험생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알고 소소한 축하나 해주면 고맙고..뭐 그정도 입니다.

전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제 가정사의 복잡한 이야기는 분량이 너무 길어지니 생략하도록 하죠. 세상엔 다양한 부자 지간이 있고, 때로는 그 모습이 이상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지요. 저는 그전에 알분들은 아시고 모를분들은 모르실 그런 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오면 저한테 "ㅇㅇ아, 사람들이 너가 ㅇㅇ대 다닌다고 하면 웃는다. 쪽팔리다. 거기는 몇등정도 하는 애들이 가는데냐? 다시 공부해서 스카이에 가라." 하시던 분입니다. 저도 다니던 곳이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공부하고 싶었는데, 우연히 상황이 도와 때를 잘 만나 다시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었네요.

 한 이틀전인가요. 아버지를 통해 아는 분의 자녀가 고3이 되는데 만나서 오분이라도 이야기 해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그것도 거실에서 큰소리로 저에게 직접말하긴 싫으니까 어머니가 전달하라고 하시더군요.글쎄요, 제가 들어본적도 없는 아버지의 지인분의 얼굴도 이름도 존재도 모르던 자녀분이 고3이 된다고 제가 왕복 3시간 거리를 가서 5분 말해주고 와야 하나요. 그 지인분은 아버지의 자녀중에 저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올해 수능이 끝나고 알았을것 같더군요. 그리고 제가 그렇게 싫으시면 왜 저한테 그런 부탁을 하시지요. 제가 전혀 모르는 그 아이에게 가서 희망의 말이던 따끔한 일침이던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비록 지금 잉여의 상태라고 하지만 저도 제 일정이 있고, 저런 부탁은 받고 싶지 않아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기껏 힘들여 학원비 대놨더니 X가지 없는 XX.. 인터넷 게시판에 쓰고 싶지 않은 기타등등의 천박한 말들 뭐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걸 삼일 째 그러고 계십니다. 얘기를 대강 들어보니 그분들께 제가 당연히 해준다는 식으로 말해놓으셨더군요. 

 여기서는 제 아버지가 상식이 안통하는 분이라는 걸 한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얘기는 말해봤자 답없는 발암이죠. 저도 그렇고 다른 가족들도 그렇고, 수능을 잘봤다라는게 동네방네 자랑이나 감투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자식이, 혹은 자신이 수능을 잘봤다는 건 fact이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일 필요가 있을까요(그것으로 인해 내면의 만족감이나 자부심을 느끼는 걸 욕하는게 아니에요.) 그게 벼슬인 마냥, 하나의 계급장인 마냥 부심을 부리는 것을 보니 참 답답하군요. 어디가서 소문내고 술사고..그런짓을 왜 할까요.

 문득, 세상에 자식을 자랑하기 좋은 한정판 피규어로 생각하시는 부모님들이 제 아버지 말고도 계시겠죠. 저는 남들보다 운좋게, 혹은 조그마한 노력의 차이로 조금 더 선택의 폭이 넓어진 인간일 뿐인데...저와 똑같이 공부하고 노력하고 울고 웃었던 친구들, 저보다 잘본 친구도 못본 친구도 모두 표점합 ㅇㅇㅇ점, ㅇㅇ대생이 아니라 그냥 누구라는 사람이에요. 너무나 당연한 거죠.
 
 그리고 세상에 저라는 존재가 생명활동을 한다는 것도 모르셨던 분들이,제가 ㅇㅇ대 다닌다고 '웃으셨'던 분들이, 제가 수험생활하며 힘들어 할 때 천원짜리 캔커피 하나의 위로도 해주시지 않던 분들이 제가 기쁨조라도 된 것 마냥 제 입장에서 보기에는 염치없는 부탁을 하시는 것을 보면 제가 말이 안통하는 아기들에 둘러쌓여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답답한 아버지를 보며 저는 저런 사고를 가지지 않는 인간이 되기 위해 반성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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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성제대16 · 524054 · 15/12/22 00:45

    길어서ㅠ읽다가 포기햇네..ㅋ

  • 불륜목사와야동스님 · 616265 · 15/12/22 00:46 · MS 2015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m(o_o)m · 564072 · 15/12/22 00:47 · MS 2015

    무슨 맘인지 이해 갑니다
    님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수능 전 격려는 커녕 재수는 하지 말란 말만 듣다
    막상 좋은 대학 가니 자기가 기분 좋아 술을 쐈다고 자랑하시더군요. 그 돈의 일부라도 제게 주셨다면 신환회 때 가방도 없이 가지는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백팩은 너무 부끄러웠거든요.

  • 박해민 · 591191 · 15/12/22 01:32 · MS 2015

    죄송하지만 백팩이 아니면 어떤 가방을??

  • m(o_o)m · 564072 · 15/12/22 02:04 · MS 2015

    대학생 여자는 대부분 백팩 안 써요

  • 박해민 · 591191 · 15/12/22 02:08 · MS 2015

    아하 여자분이셨구나ㅎㅎ 감사합니다

  • 유앤미 · 429261 · 15/12/22 00:51 · MS 2012

    정말....힘드시겠네요 심정이...

  • 연수는내중추 · 407100 · 15/12/22 02:28 · MS 2012

    읽다가 저랑 비슷한거같아 글남깁니다
    말이안통하는 아기에둘러싸인 느낌이든다는말에 공감해서 온몸에 소름이돋네요
    실례긴하지만 저랑비슷한사람이 있다는사실에 위로가되기도 하네요
    힘내시길바랍니다

  • 현역정시러 · 623693 · 15/12/22 02:38 · MS 2015

    저는 남들보다 운좋게, 혹은 조그마한 노력의 차이로 조금 더 선택의 폭이 넓어진 인간일 뿐인데...저와 똑같이 공부하고 노력하고 울고 웃었던 친구들, 저보다 잘본 친구도 못본 친구도 모두 표점합 ㅇㅇㅇ점, ㅇㅇ대생이 아니라 그냥 누구라는 사람이에요. 너무나 당연한 거죠. 이부분 읽고 정말 반성하고 갑니다ㅠ 님 힘내세요 세상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네요

  • 퍼즐완성 · 587742 · 15/12/22 09:30 · MS 2015

    에휴. 모르는 남 상담을 위해 3시간 넘는 거리를 가라고 하시다니.넘 하셨네요.
    아버지께서 이미 약속 하신 거라면 전화로 상담해준다고 하세요.
    그 먼거리를 찾아 간다는 건 진짜 자존심 문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