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시대 [1315925] · MS 2024 · 쪽지

2025-02-23 23: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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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여의사로 다시 만난 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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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고등학교 때 유명한 여학생이 있었다.


모의고사 쳤다하면 1~2개밖에 안 틀리고, 내신도 전교 10등 안에 드는 공부실력이 굇수 그 자체였지. 


자사고라 당연히 의대에 가겠지 했던 그 여학생은 심지어 학교의 퀸카였다.


동글동글한 얼굴형에 귀여운 이목구비, 뽀얀 피부까지.


단아한 분위기까지 풍기는 그녀는 단연 우리 학교 남학생들의 첫사랑이었다.


특히, 그녀가 웃을 때 짓는 눈웃음을 보면 누구나 심장이 요동치게 됐었다.


나도 그녀가 웃을때면, 멍하니 그녀의 눈동자 속으로 빠져들곤 했었지.


공개수업 때 걔 어머니가 오신 적이 있었는데, 역시 외모는 유전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어머님도 미중년이셨지.


한번은 학교의 chad가 그 여학생한테 고백했다가, 개같이 차인 적이 있었다.


그러곤 chad가 반에서 펑펑 울던 걸 봤을 땐, 은근히 쌤통이었지.


물론 나도 관심이 있었지만, 난 티를 전혀 안 내는 스타일인지라.


오히려 무관심한 척, 쌀쌀맞게 대하려고 노력을 했었지.


그러다가 매점에서 만났을 때, 선심쓰듯 레쓰비 하나 사주면 좋아했었지.


하지만 내 여친이 될 순 없어. 남사친들이 너무 많으니까. 


성격도 유순하고 착해서 별 병신같은 남자애들한테도 잘해줬던 아이였음. ㅇㅇ


또 갤 여친으로 맞으면 주변에서 시기질투가 얼마나 심하겠어?


그래서 난 다른 반에 여친 만들어서 놀았지. 


야자 끝나고 여친 손잡고 하교하는데 걔랑 마주쳤을 땐 얼마나 민망하던지.


밤공기가 텁텁하게 느껴졌다.


사실 걔랑 나는 급차이가 너무 났다. 내가 넘볼 수 없는 완벽한 여자였지.


그래서 일부러 단점을 찾고, 난 널 좋아하지 않아, 자기최면을 걸었나보다.


어쨌든 걘 수시로 메이저 의대로 진학을 했고, 난 호기롭게 0수시를 썼다가 수능을 조지고 교대로 진학했지.


그리곤 연락이 끊겼다. 연락처는 내 쪽에서 먼저 지웠을 것이다.


Time flies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대학 mt를 갔다왔고 술병이 났다.


실습을 갔고, 수업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학교 시험에 지각을 하고, 임용 교재에 필기를 끼적였다.


4학년 1년 동안은 임용 공부에 매진했다.


어찌어찌 임용에 괜찮은 성적으로 붙은 나는 당해 3월자로 바로 발령이 났다.


본가와는 거리가 먼 도시였다.


에휴 ㅈ됐네 하고 열심히 다닌다. 군대에도 다녀온다. 


돈을 모아 자취방도 하나 얻는다. 그렇게 첫 학교에서 5년을 보내고 만기가 찼다.


그리곤 본가 쪽으로 인사발령을 냈다. 잘 있어라, 소패 동료교사들이여.


30대가 되니 집이 사고 싶어진다. 본가와 가까운 곳에 대출 풀로 땡겨서 집을 하나 샀다. 국평 주제에 존나 비싸다. 


그러다 어느날, 절친했던 고딩 친구한테 연락이 온다.


결혼한단다.


청첩장 모임에 가서, 저녁을 얻어먹었다.


돈도 잘 버는 새끼가 고기 추가하려는데 눈치를 준다.


아내 사진을 보여주는데 아내 분이 굉장히 통통하다.


표정 관리를 잘 해야하고, 말을 아끼는 편이 좋다.


"결혼식은 언제 한다고?"


"다다음주 토요일이야. 근데 너 축의 얼마할거냐?"


"30만원."


"야 이 새끼야. 10만원만 해. 나도 나중에 10만원만 하게."


결혼식 당일에 난 늘 입는 양복을 꺼내 입는다.


향수도 두어번 뿌려주고, 정수리 쪽은 작년부터 애용하던 흑채로 덮어준다.


결혼식을 한 번도 안 가본 급식들은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다보면 결혼식은 그냥 뷔페먹는 날이다. 결혼식도 죄다 획일화되 있어서 재미 ㅈ도 없다.


그렇게 결혼식에 도착해서 축의를 뽑는다. 수수료 1300원을 내고 신랑쪽 통에 30만원을 넣는다. 식권도 스근하게 받아둬야지.


남편 쪽 입구로 살 들어가서 신랑놈을 찾아본다. 리허설을 하고 있다. 와줘서 고맙단다. 만약 나중에 내 결혼식 안 오면 뒤진다. 


앉을 자리를 찾아본다. 아 죄다 친인척이라 앉을 자리가 없다. 잠깐 뒤에 서있다가 식 시작하면 바로 밥 먹으러 가야겠다.


그렇게 뒤돌아 가는 순간,


누가 날 빤히 쳐다보고 웃고있다.


그게 느껴져서 나도 그게 누군지 바로 쳐다봤다.


누구지?


이쁘장한 여자가 날 보고 방실방실 웃고 있다.


누구야 근데? 왜 날 보고 쪼개?


내가 빤히 5초 정도 그녀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근데 그녀도 말없이 웃고만 있는 것이다.


마치 자기가 누군지 거억나냐는 듯이.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기억해냈다. 


10년 전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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