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383625] · MS 2011 · 쪽지

2015-12-10 20: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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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붙고 다른 대학에 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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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약칭 설의...

설법이 없어진 현재 문, 이과 통틀어 최고 존엄 되시겠다.

안 썼다면 모를까,

쓰고, 붙고!!

안 갈 수 있을까?

근데,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1. 성균관대 의대


성의가 문을 연 것은 1997년...

6년 전액 장학금을 내건 데다 수련 병원이 다름 아닌 삼성 의료원이었기 때문에,

당시 성의의 위상은 대단했다.

지금은 설의, 연의 다음 가는 소위 가울성 메이저 라인에 속해 있지만,

6차 교육과정 시절 성의는 연의를 능가하는 가군의 황태자였다.

당시 이과 최상위권의 원서영역은 주로, '성의(연치) - 설의 - 경한'이었다.


또한 그 때 성의는 문과 교차지원을 허용했기에,

일부 문과 변태 고득점자들의 원서영역은 '성의(고의) - 설법 - 아주의'이기도 했다.
(아주대 의대도 문과 교차지원을 받았다)

실제로 설법에 붙고 성의에 진학한 케이스도 있어 신문에 나기도 했다.



2. 경희대 한의대


10여년 전 경한의 위엄은 말하기도 귀찮은 수준...

언어(국어)를 반영하지 않는 수, 외, 탐 전형으로 두 문제 이상 틀리면 합격이 어려웠다.
(지금처럼 쉬운 수능이 아니었는데도)

당시 이과 최상위권은 나군에 설의, 다군에 경한을 썼는데,

설의와 경한에 둘 다 붙고 경한에 진학한 케이스가 종종 있었다.



3. 조선대 치대


2006학년도 수능 최대 이변...

491점(500점 만점)을 받아 광주, 전남 자연계 수석을 차지하고 설의에 붙었음에도,

조치로 진학해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상식을 파괴하는 사건이었던 지라 소문이 무성했다.

아버지가 조선대 치대 교수로 미래 교수 자리가 보장되었다 카더라,

아버지가 조선대 치대 출신 치과의사로 치대 진학을 강력 권유했다 카더라,

피를 못 보는 성격이라 의대 대신 치대를 선택했다 카더라 등등...


당시 연치도 같이 붙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연치 - 설의 - 조치'를 쓰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도 조치에 진학한 걸 두고,

아버지가 조선대 치대 출신이라는 루머의 신빙성이 높아졌지만,

지금까지 뚜렷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



이상 설의 예비번호 돌게 만든 장본인들... ㅎ

저 때 설의 1번 받은 분들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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