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어원 이야기: "언니=형님"의 가능성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0866534
'언니'라는 단어는 사실 19세기 말에야 문증되기 시작하는, 친족 어휘 중에서는 비교적 따끈따끈한 어휘이다. 이 갑자기 튀어나온 어휘의 어원을 다루는 기존 설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 고유어 형태소의 결합설. 母을 뜻하는 어근 '*엇('어ᅀᅵ'에 보이는 그 어근)에 모종의 접미사 '-니'가 결합해 '언니'가 되었다는 주장. 그렇지만 만약 그랬다면 어째서 중세국어나 근대국어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어근 '*엇(母)'은 근대국어에는 쓰이지 않았으므로 만약 '언니'가 파생되었다면 고대 아무리 늦어도 중세국어에선 '언니'의 선대형이 형성되었어야 한다.
- 일본어 ‘ani(あに)’ 유래설. 형태가 유사한 다른 고유어가 없다는 점에서 다른 언어에서 차용됐다는 주장. 그렇지만 19세기에 차용되었다기에는 하필 기초어휘 중의 기초어휘인 친족어휘가 차용됐다는 점이 문제이다. 신문물의 명칭도 아니고 '동성의 손위 형제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 차용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다카요시(2020)에서는 '언니'는 사실 한국어 내적 변화에 의해 형성됐다고 보고 그 변화를 육아어에서 찾았다. 육아어란 성인이 유아를 대상으로 말을 할 때 유아가 발음하기 쉽도록 변형된 단어를 얘기한다.
우선 '어니'가 먼저 등장하긴 하지만 '언니'보다 고작 30년 일찍 문증되기 때문에 문헌만으로 무엇이 선대형이라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지리적으로 ‘어니’의 사용 지역이 서울에서 떨어진 해안 지역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어니'가 고형일 가능성이 있다. 또 유아어에선 단비음보다 장비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엄마', '맘마', '맴매' 등이 그러하다. 이미 육아어가 된 후의 변화라고 본다면 '언니>어니'보다 '어니>언니'가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형님'에서 바로 '언니'가 나왔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논문에서는 '언니'의 기원을
- 형님>어니>언니
- 형님>언니
이렇게 두 가지로 본다. 다카요시는 육아어 연구 내용을 인용하면서 '형님>언니/어니'라는 과정은 한국어 음운사에서는 드물지만 육아어의 특징에는 부합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 /hj/ 탈락: 충청 방언에서 ‘형아’가 ‘엉아’로 변한 사례가 존재한다. 유아가 /h/나 /j/ 같은 음소를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형님'의 제1 음절의 초성이 탈락하였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 /ŋ/ 탈락 및 ‘ŋ > n’ 변화: ‘형님’의 중간 자음 /ŋ/이 사라지거나 /n/으로 대체된 것은 유아 언어에서 조음 위치 동화와 자음 탈락 경향과 일치한다. 자음 연쇄 /ŋn/에 포함되어 있는 두 자음은 서로 조음 위치가 다른데 18개월 이후 유아 언어에서는 조음 위치가 다른 자음 연쇄에서 한 자음을 탈락시킨다고 한다. 그렇다면 '형님>엉님>어님'이라는 변화를 상정할 수 있다. 또, 유아어에서는 /ŋ/ 이 치경음 앞에서 [n]으로 발음되기도 하는데 ‘깡총깡총 → [kʼɑnʨʰoŋkʼɑnʨʰ oŋ]’이 있음. /ŋn/을 기피하기 위해 /ŋn/이 /nn/이 됐을 수도 있다.
- /m/ 탈락: ‘-님’이 ‘-니’로 변화한 것은 유아가 /m/ 같은 자음을 발음하기 어렵다는 육아어의 성격을 반영한다. ‘어마니, 아바니, 할아바니, 할마니, 아주바니, 아주마니, 조부니, 누니’와 같은 친족어의 ‘-니’는 사실 '-님'에서 왔다. ‘-니’형에는 꼭 선행하는 시기에 대응하는 ‘-님’형이 존재한다는 점과 ‘-니’형과 ‘-님’형 사이에는 의미적인 연결이 존재한다는 게 그 근거로, ‘형님>언니/어니’에서 상정되는 ‘-님>-니’의 변화를 ‘어마님 > 어마니’ 등의 변화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임금님’을 나타내는 ‘임금니’, ‘선생님’을 나타내는 ‘선생니’라는 육아어가 없는 것처럼, ‘-님 > -니’ 변화는 친족어에 한정된다. 이는 친족어가 유아 생활에 매우 중요하고, 아직 발음에 대한 제약이 많은 시기부터 사용해야 하는 어휘기 때문이다.
이 '-님'이 다소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다카요시는 ‘형님’의 ‘-님’이 격식과 존경의 의미뿐 아니라 친근함을 나타낼 수 있다고 봤다. ‘해님, 달님’과 같은 예에서 보이듯이, 유아와의 소통에서 긍정적인 정서를 나타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언니'는 현재 여성 사이에서만 쓰이는 말로 여겨지지만 원래는 남성 사이에도 쓰이던 말이었다. 한영자전(1897)에서 '어니'를 동성이기만 하면 쓴다고 뜻풀이하였다.
그니까 19세기 말 문헌에서 ‘언니’와 ‘형님’은 연상의 동성 동기를 나타내는 유의어였다는 거다. 당시 ‘언니’는 남녀 구분 없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현대의 ‘언니’와는 다른 '언니/어니'가 사실은 ‘형님’에서 출발해 어린아이에게 친숙한 육아어로 변형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나 더 중요한 점은 경상도 방언에서는 ‘형님’과 ‘언니’의 성조가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韓國精神文化硏究院(1989: 141, 1993: 130)에 따르면 경상도 방언에서 ‘형님’도 ‘언니’도 성조가 [HM/高中]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어 기원설보다 '형님'의 변화에서 '언니'가 형성되었다는 설이 훨씬 개연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 문헌
다카요시 (2020), "‘언니’ 어원고(語源攷)", 국어학 93, 국어학회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연세대 1
왜 발표안함?
-
우리 엄마가 학생때 국어 못하고 수학 잘했어서 문과가면 다 바를 수 있을줄 알고...
-
잇올 생결 질문 2
당일에 전화하면 됨?
-
588언저리에서 끊기려나용
-
드디어킬러다풀었다.. 적분기출들어간다.. 후
-
6모치고싶다 1
-
궁금하네요 제가 방장이었지만 거의 8월부터 바빠서 탈주하긴 했는데 ㅠㅠ
-
사실 첫날부터 매일 고량주 1병에다 미니 소주 두 병씩 까고 기름진 안주까지 처먹었으니....
-
키스해본사람 접어
-
이걸 후자가는사람이 있다고요? 일단 후자에서 전자로 반수하는 사람은 한트럭 봄
-
어디일까여 8
-
내 앞 실지원 표본이 다 허위표본인세계
-
수학 4~5등급 0
수학 4~5등급 왔다갔다 하는데요 이미지쌤 세젤쉬 듣고있고 거의 다 들었어요 근데...
-
VOA "트럼프, 공수처 尹 체포 시도에 '도 넘고 있다' 말할 수 있어, 하지만 동맹 국내 정치 개입은 여전히 위험" 2
미국 정부 방송 VOA(Voice of America,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가...
-
김승리쌤 언매 볼륨 너무 커서 유대종쌤 들어볼까 하는데 언매 개념 베이스 좀 있긴...
-
궁금
-
기름 넘 맛있는데
-
홍대 경영 0
몇번까지 돌까요..? 최근 몇년보다는 좀 덜 돌것같은데... 두바퀴는 돌라나
-
일요일 하루 3시간정도 투자 (인강) 어짜피 일요일은 복습날이라 괜찮을거라...
-
논술이슈보다 고대가 신경쓰이는쪽이 더 컸으면 좋겠다 1월 2X일 조발 기원
-
시간 여유롭게 다풀어서 이건 100점 각이다 유후 하면서 15분 검토하고 채점해보면...
-
큰냄비에 라면 5묶음 6묶음파는거 다때려넣고 계란까지넣구 끓인뒤에 살짝퍼져있는거...
-
이정도뿐이 생각이 안 나요
-
수능을 좀 못봐서 경력을 쌓아보자…
-
과탐이 다 그런 경향이 있지만.. 생명 안해봐서 궁금
-
캐슬드가자잇
-
덕코드림 12
댓글보고 아무나 무작위로 줌 자고로 얼마없음 ㅋㅋ
-
중학생 4인 강의 + 자기주도학습 지도까지 해서 주2 2시간씩 주급 15만원...
-
그냥 김과외 제안서 난사로 구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은 느낌
-
강기분 어때요 1
문학 말고 독서가 좀 약해서 듣고 싶운데 강민철 드립으로만 사실 좀 들어봤지...
-
서울댄가
-
기름은 다 못잡았는지 좀 둥둥 뜨고...물은 좀 덜 부어도 됐을거같아서 아쉽네요 ㅠ
-
서울대 리트 상위몇퍼정도한거임?
-
미적 기본개몀도 자세히 설명해주나요? 아니면 다른강의로 기본개념은 떼고가는게 낫너요?
-
아오 진짜.... 뭔 수학 21번급이야
-
스나 붙으면 반수안할듯..
-
중앙대 물리 와보셈 16
빠져줄까말까 킥킥
-
인생망하게찌 일단2학년은 끝내고 생각해보는게 맞는거겠지
-
친구가 수능 공부에 앞서 독서 지문 풀어보라고 해서 한비자 지문 도전해봤는데,...
-
17명 뽑는과인데 점공 2명안들어왔고 지금 16등에 동점자하나있는데 제가 순위...
-
내 심장의 색깔은 블랙 10
그런김에 질문받습니다
-
몇시간정도 걸려야 정상임? 한 문제 막히면 못 넘어가서 시간 ㅈㄴ 쓰는거 같은데
-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냉장고 털어먹고 있기 때문... 내일은 냉장고 구석탱이에 있는...
-
난 다른 것보다 친구들이 메디컬이랑 스카이 이상 가는게 제일 크게 다가왔던 것 같음...
-
바바바엣츄 3
엣쮸,츄,엣츄희,,,, 데헷 요즘 춥네여
-
무장남 안실장 완전 제미익군 그 이름 안창정. 내가 만든 줄임말로 전북의 모든...
-
ㅠㅠㅠㅠㅠ 억까하지마 오늘 충분히 당했다고
-
이번에 중간 평가한 15개 대학을 제외한 의대들은 올해 인증을 안 받나요? 동국대는 어떻게 될지ㅠㅠ
-
좀 궁금해서 ㅋㅋ
어 이거 재업인가요 비슷한 글을 봤던 기억이
네 재업입니다. 그때 생략한 내용이 많아서 좀 더 자세히 썼습니다
일본어기원설은 국립국어원이 좋아할듯한 학설이군..
국립국어원은 대부분 인정 안할걸요
아 예외적으로 기억나는건 닭도리탕 같은건 있지만요
어원고의 '고' 한자 저거 맞아요??
네 생각할 고 攷 맞습니다
보통 考 쓰지 않나... 신기하네요
오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