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숲 펌] 늦은 건 없습니다 (어제 실수로 지워서 다시 올립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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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 글을 올렸다가, 수정한다는 게 실수로 지워버렸습니다 ㅠㅠ
연대숲 #36821번째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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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24 오후 10:25:33
넓은 백양관 대강당에 자는 사람이 반, 강의를 듣는 사람이 반.
백발의 교수님은 느리지만 차분하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나는 여러분 나이 때 삼수를 했습니다.'
옆 사람이 움찔하면서 잠에서 깼어요. 삼수?
여기저기서 뜨이는 눈들을 보신건지, 교수님의 눈가에 살짝 웃음이 감돌았어요.
'이 연세대학교에 들어오려고 삼수를 했어요, 내가. 삼수.'
그래. 네가 들은 게 맞다, 라는 듯 교수님은 몇몇의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교수님은 삼수생이셨어요. 연대생이 되고 싶어 삼수를 하셨대요. 현역, 그리고 재수 생활 때 닿을 듯이 닿지 않은 연대가 가고 싶어 삼수를 하셨대요.
'많이 늦었지. 많이 늦었어요. 대학교도 늦게 왔으니, 군대도 늦게 갔고.'
어디든 따라다니던 '삼수'의 꼬리표가 교수님은 그렇게 힘드셨대요. 대학교 동기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형은 왜 이렇게 나이가 많아요?' 군대에서 만난 나이 어린 선임들은 '너는 뭐하다가 이제야 왔냐?'
삼수를 했다. 그래 내가 대학교 한 번에 못 들어가서 조금 늦었다. 사람들은 어딜 가나 교수님께 같은 질문을 했고, 그 때마다 교수님은 같은 대답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그게 힘드셨대요.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게. 내가 괜스레 주눅드는 게. 많이 초조하셨대요. 나의 친구들은 이미 나보다 2년이 앞서있어서. 나는 2년 전에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교수님께는 꿈이 있었어요. 힘들었던 재수 생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삼수 생활을 이 악물고 버티게 해준 꿈.
어렵게 어렵게 삼수를 해가며 들어온 이 대학에서, '교수'라는 직함을 걸고 강단에 서는 것. 본인이 그렇게 사랑하는 이 학교의 학생들, 자신의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 그게 교수님의 목표였고 꿈이었어요.
길고 힘든 과정이었다..고 얘기하셨어요. 군대, 학부 졸업, 대학원 진학.. 언덕을 하나 넘으면 다음에는 산.
주변에서는 '저 나이가 되도록 대체 뭘 하고 있느냐' 라는 말을 듣기 일수였고, '내가 가는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인가' 라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조교를 하던 때에는 목표를 공유하던 어린 동료들의 조롱까지.
'그 나이 먹고 아직도 조교해요?' 나이 차도 별로 안 났는데.
'솔직히 교수하기엔 좀 늦지 않았어요?' 기껏해야 몇 년 늦었을 뿐인데.
쓰라린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그리 편하지는 않으셨던 건지.
쓴웃음을 지으며 교수님은 잠시 말을 멈추셨죠.
이내 알 수 없는 미소에, 눈을 빛내며 입을 떼시던 교수님.
'근데 지금, 그 친구들 중에 교수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아요?'
침묵이 맴돌았죠. 그리고 교수님의 입가에 돌던 옅은 미소.
'나 하나에요, 나 하나.'
'내 자랑을 하자는 게 아니에요.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
"늦은 건 없습니다."
우리만큼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없을 거에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서로를 비교하며 살아왔잖아요. 옆집 철수가 국어에서 100점을 맞아오면 나는 수학에서라도 100점을 맞아야 했고, 이웃집 영희가 미국 유학을 갔다 오더니 how are you?를 원어민처럼 한다면 나도 암 파인 땡큐 앤쥬?는 좀 굴려야 했죠.
고등학교 때는 특목고다 뭐다, 과학고다 뭐다. 초등학교 동창이 유명한 자사고에 들어가면 어느새 모든 부모님들이 그 소식을 알고 있었고요. 대학 입시는 어땠나요. 나는 재수하는데 친구는 연세대 들어간 게 친구들 사이의 핫뉴스였죠. 우리는 항상 알게 모르게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왔어요. 남보다 뒤쳐지면 안되니까. 남들보다 늦으면 안되니까.
근데, 그러면 어때요. 남들이 뭐라 한들 어때요. 늦은 건 없어요. 중학교 때 반에서 꼴등하던 친구가 유학 가더니 하버드에 들어갔대요. 고등학교 자퇴한 친구가 어플 하나 만들었더니 대박이 났대요. 남들이 뭐라 한들, 어때요? 나는 나의 길이 있어요. 그게 지금은 남들이 보기에 늦어 보일 수도 있고, 내가 보기에도 남들보다 뒤쳐져서 불안하고 초조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어요.
거리에서 나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불편하잖아요. 남과 같은 길을 걷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그저 눈치 보면서 공부만 하다가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갖는 것. 물론 그것도 어떤 면에서는 정말 성공한 인생이겠죠. 그 길이 자신의 길인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게 우리 모두가 가야만 하는 길인가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쳇바퀴만 돌리는 인생을 살 수는 없잖아요. 지금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나의 길을 묵묵히 찾아봐요. 모르겠으면 일단 한 길로 걸어봐요. 재수 삼수 사수 n수 하면 어때요. 취업 좀 늦게 하면 어때요. 아니, 아예 취업 때려 치고 다른 길을 찾아 좀 헤매면 어때요. '옳은 길'은 오직 나만 아는 거에요. 결국 그 모든 게 나의 목적지로 향하는 길인 거고, 나는 내 인생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거에요. 누가 알아요? 나중에 자서전에 이렇게 한 문장을 넣을 수도 있겠죠.
'김연돌, 그는 대학은 네 번이나 떨어졌지만 인생은 한번에 합격했다.'
'늦은 건 없습니다.'
교수님의 그 말이 요즘 들어 자꾸 생각나곤 해요. 소위 말하는 '늦는 길'을 제가 지금 걷고 있거든요. 그래서 불안해요. 그리고 초조해요. 하지만 다시 그 행보를 이어가고자 해요. 저는,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요.
늦은 건 없어요. 20대 밖에 안된 우리에게 대체 뭐가 그리 늦은 일이고 늦는 길이겠어요. 천천히 가는 길은 있어도 늦은 도착은 없는 거니까요. 남들보다 조금 천천히, 경치를 둘러보며 세상을 좀 더 알아가며 걸어갈 뿐인 거니까요.
삶에 조금의 풍파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저 다들 자신의 속도에 맞춰 기나긴 길을 걷고 있는 거겠죠.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천천히.
어느덧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2015년도 벌써 열 달이 흘러갔고요. 수능을 준비 중인 고3과 n수생들, 중간고사를 갓 마치고 푹 쉬고 있을 대학생들, 그리고 예비 직장인이 되기 위해 힘쓰고 있는 많은 분들까지. 저마다 나에게는 가장 높아 보이는 삶의 언덕을 하나씩 넘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우리의 삶에는 앞으로도 수많은 오르막길이 있을 거에요. 오르고 올라도, 넘고 넘어도 계속되는 언덕과 오르막길. 다치기도 하고 많이 넘어지기도 할거에요. 그게 부끄러워 주저앉고 싶을 수도 있어요. 나보다 빨리 정상에 오른 저 친구들을 보며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결국에 당신은 당신만이 갈 수 있는 정상에 도달할 거에요. 물론 힘든 여정이 될 거에요. 지금도 이미 많이 힘들겠죠. 하지만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래서 이제는 다 놓아 버리고 싶을 때. 그 날의 백양관 대강당에서 나지막이 울려 퍼졌던 교수님의 한 마디를 기억해주세요.
당신은 늦지 않았어요. 당신은 틀리지 않았어요. 꿈을 찾아 가는 당신은 그 누구보다 빛나는 길을 걸을 거에요.
'늦은 건 없습니다.'- 8598 899
지나가던 고3입니다. 20여 일도 채 남지 않은 수능이 인생에서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가장 큰 벽이라서 그리고 혹여나 내가 보낸 1년이 헛되이 될까봐, 재수하고 삼수하면 꿈에서 점점 멀어질까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정시인데 수시 쓰고 면접 가는 친구들을 보며 나만 틀린 길을 가는 것 같고 마치 이 길이 가시밭길 같았습니다. 그래도 이 글을 보니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리는 것 같아요. 조금 늦어도 조금 돌아가도 꿈에 도달할 수 있도록 내일도 제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36 27(익명) 저는 나이로는 삼수 미국대학포함 반수 한국에만 따지면 현역인 참 특이한 입시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사실 이렇게 익명으로 보내는 것도 아직 떨어질까 두려워 주변에 제가 입시를 새로 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아서예요. 분명 사람마다 자신이 가는 속도도 방향도 다른데 남들과 비교하며 지내게 되는게 너무 싫지만.. 주변에서 그렇게 만들어주는 환경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네요ㅠ 저도 나이로 삼수 인지라.. 교수님께서 겪었던 비슷한 것들을 경험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때 마다 잘 새겨듣겠습니다. 꼭 연대에서 이 교수님 뵙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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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글 올려주셨었어요?
http://orbi.kr/0006986082
새벽이네요 ㅋㅋ
중복이라 너무 창피하지만.... 그냥 흑역사로 남기겠습니다;;
하지만 원래 제가 먼저였다는거!! ㅋㅋ
쪽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답장드렸습니다!
조선생님이 올려주셨다가 글이 1분만에 내려가서 당황했는데 조금있다가 우연히 키랄님이 그뒤에 퍼오셨어요
흑역사 ㅠㅠ
http://orbi.kr/0006982776
늦었는데 괜찮을까요?
그냥 복학 그 자체가 싫으신 건지, 아니면 인생의 꿈을 위한 길에
지금의 학교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냉철하게 판단하신 건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서카포를 못 갔다는 열등감이 너무 커요
실례지만, 하고 싶은 일이 어떤 분야인지 알 수 있을까요? 서카포 나온다고, 그 자체만으로 뭐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입시판에서 고생하시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일을 찾아서 하시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보이는데요...
저는 천천히가는길을 걷고있는거라 믿겠습니다ㅎㅎ
천천히, 그러나 완주하면 되는 거겠죠.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음 주 중에 꼭 뵙길 기다리고있겠습니다
네 연락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