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이후 글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69507177
깃털
문득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다. 사랑이 담긴 눈으로 지그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뻗어 등을 토닥이는 순간. 그 사랑이 사실은 당신의 외동딸을 향한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등을 토닥인 다음엔 언제나 반복해 말씀하셨으니까. 엄마를 정말 닮았구나. 눈이 영락없이 똑같다.
외갓집의 부엌 안쪽에는 널찍하고 어둑한 창고 방이 있었는데, 어린 내가 방학 때 내려가면 외할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제일 먼저 그 방으로 가셨다. 찬장 서랍을 열고 유과나 약과를 꺼내 쥐어주며 말씀하셨다. 어서 먹어라. 내가 한입 베어무는 즉시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 기쁨과 할머니의 웃음 사이에 무슨 전선이 연결돼 불이 켜지는 것처럼.
외할머니에게는 자식이 둘뿐이었다. 큰아들이 태어난 뒤 막내딸을 얻기까지 십이 년에 걸쳐 세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늦게 얻은 막내딸의 둘째 아이인 나에게, 외할머니는 처음부터 흰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칼을 가진 분이었다.
그 깃털 같은 머리칼을 동그랗게 틀어올려 은비녀를 꽂은 사람. 반들반들한 주목 지팡이를 짚고 굽은 허리로 천천히 걷는 사람. 대학 1학년 여름방학에 혼자 외가로 내려가 며칠 머물다 올라오던 아침, 발톱을 깎아드리자 할머니는 ‘하나도 안 아프게 깎는다… (네 엄마가) 잘 키웠다’고 중얼거리며 내 머리를 쓸었다. 헤어질 때면 언제나 했던 인삿말을 그날도 하셨다. 아프지 마라. 엄마 말 잘 듣고. 그해 10월 부고를 듣고 외가에 내려간 밤, 먼저 내려와 있던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얼굴 볼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손을 잡고 병풍 뒤로 가 고요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를 볼 때, 스위치를 켠 것같이 심장 속 어둑한 방에 불이 들어올 때가 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재수하자마자 스트레스너무받아서 슬럼프와서 6평9평 전부 다말아먹고 가을쯤 돼서야...
-
삼수는없다진짜 존나힘들다 ㅋㅋㅋ
-
안녕하세요 이번엔 국어로 돌아왔어요 우선 저는 작수 화법과 작문 백분위 98, 올6...
-
20학번 6
화석이다 Vs 아니다 화석은 아니다
-
어떨 것 같나요
-
이거 하신분들 있음? 수강 기간 나 10.24까지라는데 그 이후에는 못들음..?...
-
아수라 지금 시작하는데요 아무래도 다 하는 건 불가능 같아서 좀 걸러서 할려는데...
-
3합4 맞추고 메디컬 가기 성공ㅋㅋㅋ 수학 진짜 일요일 빼고 최소 4~5시간 공휴일...
-
근데 또 양은 뒤지게 많아서 걍 유기해야되나 강매할거면 해설강의라도 주던가 ㅆㅃ
-
이런책 없나
-
풀어보고싶긴한데 서킷 끼워팔기때메 사기싫음
-
ㅎㅇ 4
-
미디어의 폐해
-
차마 이걸 풀이라고 올리진 못하겠음 (21번은 다른 경우들 본다고 확통 페이지에 더 풀긴 했었음
-
이유가 머임
-
"월급 절반 나누자"…병무청 설립 이후 첫 '대리 입대' 적발 4
[앵커] 다른 사람을 대신해 군에 입대하고 실제 석 달 동안 군 생활을 한 20대...
-
걍 절댓값때고 푸는게 훨 편한데
-
안좋은일이 더 많나요 좋은일도 그만큼 많은데 뉴스에 안나오는게 아닐까요
-
9모 잘본줄알았는데 실채점 나오니 좆망 10모 커리어하이 수능 10모보단 떨어졌지만...
-
이투스 빼고 다 2컷 76인데 등급컷 1점정도 내려가는 경우가 많나요..???
택시 안에서 첫문단 읽고 눈물 훔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