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tata [348885] · MS 2010 · 쪽지

2024-09-09 21:29:22
조회수 10,839

이명학 선생님의 두부썰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69114962

수학실모라는 것의 정체성 및 이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어제 쓴 글을 보충해보려 합니다.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이명학 선생님의 썰 하나 보고 가시겠습니다.


외국에서 받은 충격 #1-두부편 (youtube.com) 



이 영상에서는 칼닦는 두부를 맛보는 선생님의 모습이 코믹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 두부는 그냥 칼만 닦으라고 갖다놓은 것인데,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하였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던 어느날,


사람들이 너도나도 문득 칼닦는 두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하나 둘씩 호기심에 이걸 먹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손님들 사이에 이 두부가 맛있어야 찐맛집이라는 믿음이 생기고,


몇몇 레스토랑도 이러한 손님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서 


칼닦는 두부에 간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를 메인 요리로 내세웁니다.


그 결과, 손님들도 레스토랑을 선택할 때 


이 칼닦는 두부가 얼마나 맛있는 지에 주목하게 되는데요.


칼을 닦은 후 이 두부를 맛있게 먹어야 메인요리도 잘 소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레스토랑 맛집=칼닦는 두부 맛집


으로 통하게 됩니다.



이상, 현재 수학 실모 메타에 대한 저의 생각을 예시로 들어보았습니다.


요즘 학생들이 수학 실모를 선택할 때


개별 문항의 퀄리티가 좋은가? 배울점이 많은가?


등을 많이 고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요소들이,


위의 예에서 '칼닦는 두부의 맛'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실전모의고사는 100분이라는 시간을 시뮬레이션 하기 위한 용도입니다.


시간을 정확히 재고,


100분동안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들을 체크하면서


부족했던 사항들을 복기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쉬운 문제 같은데 풀이방향이 보이지 않을 때:


일단 넘어갈 지 조금 더 붙잡을 지 자신만의 기준 세우기. 


다른 문제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마인드컨트롤 하는 연습 등등...


풀이방향은 보이는데 계산실수가 계속 나올때:


자신의 풀이에서 계산실수를 잡아내는 연습, 그 과정에서 긴장하지 않고 의연함을 유지하는 연습 등등...


풀긴 했는데 정답인지 확신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검토하는 방법 고민, 


만약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다른 문제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어떻게 마인드컨트롤을 해야할 지 고민 등등...


이 외에도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다양합니다.


특히 수학실력에 비해 점수가 나오지 않는 케이스라면 더더욱 다양한 훈련 소재가 있겠죠.


이러한 연습을 하려면,


실전모의고사는 수능과 유사한 난이도와 단원 배치, 문항의 서술을 하고 있어야할 것입니다.


이 30개의 문항은 그저 여러분들이 실전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재료일 뿐이에요.


개별 문항 자체로 어떤 수학적인 교훈이나 가르침이 적더라도


이런 훈련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계산실수는 소위 배울점이 많은 문제에서만 하는건 아니죠.


오히려 그와 정 반대인, 계산량이 다소 많은 문제에서 계산 실수가 나기 쉬울 것이고


이 문제가 더 좋은 훈련 재료가 될 것입니다.


(물론 계산량이 너무 많으면 수능과의 유사성이 떨어지겠죠. 그래서 '다소 많은 문제'로 한정하였습니다.)


또한 풀었는데 확신이 없는 상황은, 수학적인 교훈을 주는 문제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문제들이 저마다 수학적인 의미와 교훈을 담고 있으면 


아무래도 난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고, 그와 별개로 수능시험지와의 유사성도 떨어지게 됩니다.


수능은 출제자들이 여러분들에게 수학적인 의미와 교훈을 가르쳐주는 시험이 아니라,


0점부터 100점까지 줄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배울점이 있는 문제들도 출제되지만, 


어떻게 하면 만점자 수나 등급컷을 원하는 수준에 맞춰서 줄을 잘 세울 수 있을 지가 중요한 시험입니다.


따라서 저는 실전모의고사에서


문항 하나하나마다 여러분에게 어떤 수학적인 교훈이나 가르침을 줄 필요가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칼닦는 두부는 


칼을 넣었을 때 뭉개지지 않도록 어느정도 단단하고,


칼이 잘 닦일 수 있도록 깨끗하면 될 것입니다.


맛있는 두부가 먹고 싶다면 두부를 요리하는 식당을 가면 되지,


레스토랑에서 칼닦는 두부를 먹어야 하는건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문제로부터 수학적인 교훈이나 가르침을 얻고 싶다면


N제나 인강 교재 또는 기타 시중 문제집에서 찾으면 충분히 많을텐데


이걸 실전모의고사에서까지 찾아야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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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2020년에 모 카페에 썼던 것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원본은 2018년 오르비에 있구요.


(링크: https://orbi.kr/00018649894 )


이렇게 4~6년전의 저는 변화하는 실전모의고사 시장에 대해 의문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도움이 되니까 유행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실전모의고사라는 것의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동안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수학 실모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 


현재까지 내린 결론은 어제 쓴 글에서와 같습니다.


즉,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는 꼭 두부로 칼을 닦을 뿐만 아니라 그걸 맛보는 것도 학습에 도움이 되지만,


(실모 한 세트를 푸는게 재미가 있고, 집중이 잘 되며, 어렵게 나오는 시험을 대비할 수 있고,


여기에 모래주머니 효과까지.)


그외 절대다수의 학생들은 두부의 맛까지 볼 필요가 없고 두부로 칼만 잘 닦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 두부의 존재 이유이니까요.



이러한 점을 떠올리면서 실전모의고사를 학습해보시면 어떨까하여 몇 자 더 적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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