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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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글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이번에 수능 본 학생입니다.
수능을 치기 전에 꼭 많은 사람들에게 이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나서
이 사이트 들어올 일도 이젠 없을 것 같아 한번 써 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고3올라오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저는 다른 과목은 그다지 잘하진 못하고, 단지 국어는 미약하게나마 소질이 있었고 열심히 했던 수험생입니다.
3월 교육청 100점, 6월 모의고사 100점, 9월 모의고사 100점, 수능 100점이었습니다.
국어를 풀면서 제 국어 실력이 모자라다는 느낌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던 셈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제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3학년 들어오자마자부터 시작해서 여름방학 전까지 국어를 푸는 나름의 논리를 세웠거든요. 정말 편집증 걸린 사람처럼 스프링노트 한 권에 수능 기출되는 비문학 지문의 형식, 상황별 대처, 유형별 대처, 선지별 유형과 대처, 보기의 종류와 원전, 문학개념어가 기출되는 방식... 처음엔 비효율적으로 느껴졌지만 할수록 정리가 되어갔습니다. 2학기나 막판에 하겠다면 미친 짓이었겠지만 그때는 결국 여유롭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인강이나 책, 기출문제집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정리를 끝내고 기출을 풀 때 처음에는 적용이 안 됐습니다. 머릿속에 수많은 체크리스트가 떠도는데 그걸 다 지키면서 풀기가 힘든 게 당연했죠. 초반에는 정리한 내용들을 옆에 펼쳐 두고 문제를 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두 달 정도 꾸준히 내용들을 생각해가며 풀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해서 풀게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달라진 건 사실 없었는데, 왜냐하면 사실 고2 때도 국어를 틀린 적은 없었거든요. 고2모의고사와 함께 10개년 수능 기출을 풀어 거의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2004 수능과 2011년 수능에서 하나씩 틀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교에서 시켜 당일에 풀었던 2015 수능도 어휘문제 한 문제를 틀렸었습니다. 제가 기억나는 건 그 세 문제네요.) 그 때는 감으로 풀어서 점수가 잘 나왔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체계적인 논리를 계속 의식해가면서 푸는 것과, 감으로 풀고 나름의 논리를 그때그때 세워서 해결하는 게 결과적으로만 볼 때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조금 더 들어가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은 근본적으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10월 초 쯤, 수능이 얼마 안 남았을 때 깨닫게 된 사실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제가 2015 수능을 2학년 때의 방식 그대로 현장에서 풀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아마 80점대도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제 풀이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지금의 상태라면 2015 수능이 아니라 리트 문제를 가져와도 제한시간 내에 현장에서 다 맞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보기도 했구요.
결국 모의고사는 대학 가는 데에는 전부 필요없습니다. 중요한 건 수능 딱 하나고, 딱 한 번의 시험입니다. 수능은 일반 모의고사와 다릅니다. 한 문제 한 문제에 자신의 인생의 무게가 달려 있습니다. (실제로는 아닐지 몰라도, 현장에서 보는 수험생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불공평한 것이, 공부를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한 사람들이 더 어려워지는 시험입니다. 더 많은 게 달려 있을수록 한 문제 한 문제의 무게가 무겁습니다. 평소엔 그냥 넘어가는 화법 3점도 단언하건대 절대 그냥 넘어가지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국어를 언어적 감에 의존해서 푼다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반드시, 하늘이 무너져도 이 문제의 답은 1번, 아니면 2번, 혹은 5번이 맞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쓴 게 '필연적으로, 명증적으로' 답이 된다고 확신하지 않으면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인이 '스스로' 체화한 논리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긴 고등학교 생활 중에는 감으로 푸는 것이 결과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수능 하나만 놓고 봤을 때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 건 수능 딱 한 번입니다. 이 사실을 저보다 현명한 친구들은 먼저 깨달았을 것이고, 그래서 손해처럼 보여도 제가 겪은 과정을 같이, 아니면 저보다도 먼저 겪었을 것입니다.
괜히 국어 정말 잘하는 학생들이, 국어 '더 안 해도' 될 것 같아 보이는 학생들이 국어 공부 열심히 하는 거 아닙니다. 이미 100점인 사람들이 기출문제집 여러 번 더 풀고, 오답선지 노트정리하고, 이원준 선생님 강의 듣는 게 바보짓이 아닙니다. 절대로. 이걸 깨달아야 합니다. 꼭 절대적 기준으로 봤을 때 최선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잘하는 학생들은 본인 기준에서 최선인 '체계적 사고' 를 정립해 놓지 않았다면 수능 당일날 후회할거라는 걸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깨닫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지랍 같지만 추가로 얘기하자면, 국어는 강의를 듣는 게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장 최선은 본인이 정리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게 조금 벅차다고 느껴질 때에는 선생님을 선택해 '100%'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어떤 선생님인지는 크게 상관없습니다. 요즘 호평받는 선생님들은 정말 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수능 국어에서의 체계적 사고라는 의미를 스스로 정립하신 분들이니까요. 그게 누구든, 정말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내 인생의 무게가 걸린 문제에서의 '확신' 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강의를 들으면서도 의심이 된다면 그만 두는 게 맞습니다. 그렇게 해서 본인이 직접 하든, 선생님의 강의를 바탕으로 하든 본인만의 논리와 사고를 정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모의고사 10~20 개 이상을 풀면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체화시켜야 합니다. 그 이후에야 좋은 사설 모의고사를 사서 풀든, 시간단축 연습을 하든 추가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국어의 왕도를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생각한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어떤 선생님의 무슨 강의를 듣고, 무슨 문제집을 풀어 이 시기에는 뭘 해야 하고... 그런 거 사실 없습니다.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정언명령 정도로 생각한다면 있습니다.
"단 1%라도 감으로 풀지 마라"
언어적 감은 본인의 체계적 사고를 정립시킨 후에야 쓸 자격이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도 풀이방식으로써가 아니라 풀이 속도를 위한 윤활유 정도로만 사용해야 가치가 있습니다.
절대, 절대, 감으로 풀지 마세요.
너무 당연한 얘기를, 너무 추상적인 얘기를 써 놓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 이번 A형 19번은 출제오류가 맞습니다.
언어적 감으로 풀면 아무 생각 없이 맞고, 체계적 사고로 풀면 의심이 남는 문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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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감사합니다 비문학지문형식 유형을 적은 뒤 어떻게 체화하셨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