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1299522] · MS 2024 · 쪽지

2024-07-14 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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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님이 자살하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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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19살 나이에 양말 공장에서 손가락이 전부 잘렸지만 응급 처치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부모 형제도 없는 모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파키스탄 불법 체류자는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어린 시절부터 자칭 목사 아버지에게 수백 번을 성폭행을 당하고 정신과 육체가 마비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신병원 병실에서 알 수 없는 울음을 내지르는 13살 소녀는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자녀들이 전부 신용 불량자가 되어 집안 가산을 탕진하고, 이제는 낮에는 폐지와 쓰레기를 줍고, 밤에는 고시원 독방에서 굶주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독거 노인은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희귀한 장애를 앓고 있지만 부모에게 버림받고 80 넘은 조부모 손에 길러지면서도 초등학교에서 따돌림마저 당하는 소년은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고등학교 때 부모 친지 친구에게 모두 버림받고 이태원 바에서 알지도 못하는 남자들에게 몸과 맘을 주다가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 홀로 울며 죽어가는 트랜스여성은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폭력과 불안이 가득한 집안에서 탈출하듯 만난 남자에게 헌신짝마냥 조종, 조롱당하고 버림 받은 채 단칸 원룸에서 수면제 스무 알을 들이키는 젊은 여자는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성격이 어수룩하고 말을 더듬고 행동이 굼뜨다는 이유만으로 군대에서 선임들에게 왕따와 폭행을 당하고 야밤에 화장실에서 자살 소동을 벌인 군인은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사십 줄에 중소기업에서 해고당하고 모아놓은 돈도 없이, 아이들은 다 크지도 않았는데 매일 같이 아내와 싸우고 다투고 하다가 홀로 한강 대교 밑에서 소주를 마시는 무능한 가장은 어디로 가야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자.


전주 시장의 야채 팔이 할멈들은 그 와중에도 서열이란게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자리 선점을 하기 위해 싸운다. 

그 안에도 정치라는 것이 존재한다. 


나이가 아흔쯤 되어 보이는 순박한 노파는 그 와중에 누가 봐도 서열 꼴지이다. 

허탈하게 빙그레 웃는 그녀의 얼굴에서 나는 왠지 하느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장을 놀러온 그 어떤 젊은 부부도, 대학생 커플도, 

소위 멋진 남성과 여성들이라면 모두 그 할멈들의 야채를 사주지도, 손에 지전 한장조차 얹어주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한 여대생이 단란하게 남자친구의 손을 맞잡고 야채 파는 할머니들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뒷모습과, 주변의 다른 상인들에게조차 무시 동정의 대상이 되어 회한조차 무뎌진듯한 할머니의 미소 앞에서,


이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뀌었더라면 어땠을까. 누구를 나무랄 것은 없었지만, 단지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그 때 그 자리를 회상하면서 그곳에 놀러온 연인들의 추억과 설렘의 순간을 축복하고, 전주 시장 할머니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도.


노인의 아흔해 인생은 지저분한 거리에서 야채떨이 파는 인생으로 끝나게 되었는데, 여대생의 스무해 인생은 남자친구와 아름다운 거리에서 추억을 만들며 지속되고 있구나.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 두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의 결말을 억측할 수는 없지만 현재, 지금의 세상은 그런 풍경을 보여주고 있구나.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에게 묻고 싶다.

신촌 연세로 밤거리에 젊은이들이 남긴 쓰레기를 주섬주섬 봉투에 담는 노파에게는 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인가?


신촌역 6번 출구에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수염도 깎지 못한 채 벤치에 홀로 누워 사람 없는 거리에서 눈물을 흘리는 노숙인에게는 왜 아무도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인가?


왜 아무도 그들에 대해 볼려고 하지도 일말의 진심을 다한 생각조차 하지도 않는가.

그러나 그대들의 이익이 당장에라도 침해되면 대학 잠바를 거리에 늘어놓고 의식 있는 척 목소리를 높이지 않느냐?


그대들은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에 먼 나라의 기후와 기아들에 대해서는 가끔 생각하는 척 하면서, 

바로 옆의 이웃과 심지어 바로 옆의 또래 학우들의 어려움과 아픔조차 귀찮고 바쁘다는 핑계로 나몰라라 하지 않느냐?


그들이 하나씩 죽어나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살다가, 죽고 나서야 안타깝다고 추모의 댓글 하나 쓰면 그만이지 않느냐?


그러나 내가 말하는 모든 것조차 그대들에게는 결국 이데올로기의 하나일 뿐이라고, 냉소적으로 넘겨질 작고 가여운 일이 아니더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지옥에 가서 중생과 영혼을 제도하고 보살피는 보살의 이름이 있으니 그 이름이 지장(地藏)이다.

지장은 이생에서의 공덕으로 천상 극락에 났으나, 지옥 중생들이 불쌍하여 스스로 몸을 던져 지옥으로 갔으니, 그는 모든 영혼이 지옥에서 다 나오기 전까지는 부처가 되지도 지옥을 떠나지도 않는 존재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5: 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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