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논술] 궁금증을 가져야 독해를 잘한다 (설명을 요구하는 현상을 설명해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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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설명을 요구하는 현상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오늘 제게도 그랬습니다. 오늘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전쟁과 평화> 수업을 듣는 날이었고, 교수님께서 오늘 수업에 당신이 쓰신 책, 『전쟁과 평화 - 6.25 전쟁과 정전체제의 탄생』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교수가 학술서를 출판할 때 A 대학의 교수는 A대학교출판부를 통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 책은 서강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책이었어서, 저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아니,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님께서 왜 서강대학교출판부에서 책을 내셨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시게 될 분이 계시다면, 이 수업은 정말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정말 배우는 바가 많은 수업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설명을 (강하게) 요구하는 현상과 그렇지 않은 현상을 구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세대학교 교수가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학술 서적을 출판한다면, 이것은 그다지 설명을 요구하는 현상은 아닙니다. 연세대학교 교수니까 웬만해서는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책을 출판하겠죠. 그러나 연세대학교 교수가 서강대학교출판부에서 책을 내는 경우는 다릅니다. 이런 궁금증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아니, 연세대학교 교수님이시면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책을 내실 법도 한데, 왜 다른 학교 출판사에서 책을 내셨지? 그리고 그 많은 타 대학들 중, 왜 하필 서강대학교출판부이지?’ 교수님께 질문을 드리기는 했는데, 교수님께서는 “원래 하버드대학 교수는 예일대학 출판사에서 책을 내곤 한다.”라고 답변해 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원래 자기가 소속된 대학의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게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그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어떤 현상들은 설명을 (강하게) 요구하는데, 논술 답안을 잘 쓰려면 이런 현상들을 마주할 때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왜 이런 (설명을 요구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인지, 어떤 설명이 이 현상을 제대로 해명해 낼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예시를 들어 보겠습니다.
2016학년도 연세대학교 사회계열 기출문제 中
자, 위의 두 그래프를 봅시다. <그림 1>은 기부자 명단 공개 전후 마을1과 마을2의 100명당 기부 횟수를, <그림 2>는 CCTV 설치 전후 마을1과 마을2의 100명당 신호위반 횟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기부자 명단 공개 전, CCTV설치 전의 상황을 봅시다.
⑴ 마을2가 마을1에 비해 100명당 기부 횟수는 많습니다.
⑵ 마을2가 마을 1에 비해 100명당 신호 위반 횟수는 적습니다.
기부자 명단 공개 후, CCTV 설치 후의 상황을 봅시다.
⑶ 기부자 명단을 공개하자 마을 1의 100명당 기부 횟수는 늘었지만, 기부자 명단 공개 후에도 마을2의 100명당 기부 횟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⑷ CCTV를 설치하자 마을 1의 100명당 신호위반 횟수는 대폭 감소하였으나, 마을2의 100명당 신호위반 횟수는 소폭 감소하였습니다. 그래서 CCTV 설치 후 100명당 신호위반 횟수는 마을2가 마을1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여기서 논술을 못하는 학생은 이 현상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입니다. ‘아, 이런 일이 벌어졌구나.’ 이런 지적 호기심이 전혀 없는 태도로는 논술 답안을 잘 쓸 수가 없는데요, 바로 이 현상이 설명을 (강하게) 요구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프 위에 있는 (라)의 설명을 보면, 마을1과 마을2는 인구수와 기타 사회경제적 조건이 비슷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궁금증들을 품어야 합니다.
인구수, 사회경제적 조건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두 마을은 구별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구수도 비슷하고, 사회경제적 조건도 비슷한 두 마을이 왜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걸까요? 다시 말해, 인구수도 비슷하고, 사회경제적 조건도 비슷한데 왜 기부자 명단 공개 전 마을1은 마을2에 비해 기부를 덜하고(⑴), CCTV 설치 전 신호 위반은 많이 하는 걸까요(⑵)? 인구수도 비슷하고 사회경제적 조건도 비슷한데 왜 기부자 명단 공개 후 마을1의 기부 횟수는 늘고 마을2의 기부 횟수는 그대로인 걸까요(⑶)? 왜 CCTV 설치 후 마을1의 신호위반 횟수는 대폭 감소하는데 마을2의 신호위반 횟수는 조금밖에 감소하지 않는 걸까요(⑷)? 즉, 비슷한 마을에 정확히 같은 조치(기부자 명단을 공개하거나 하지 않음 / CCTV를 설치하거나 하지 않음)를 취했는데, 왜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걸까요?
이러한 궁금증을 가져야, 그 궁금증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 현상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고, 그러한 설명이 들어 있는 논술 답안이 좋은 논술 답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은 주어진 제시문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단지 문제에서 주어진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말고, 주어진 제시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설명이 필요한 현상을 설명해 내려는 시도를 반드시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위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 낼 수 있는지 궁금한 학생들이 있으실 겁니다. 제가 아래에서 간략히 그 설명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먼저 아래의 두 제시문들을 읽어 보세요.
2016학년도 연세대학교 사회계열 기출문제 中
2016학년도 연세대학교 사회계열 기출문제 中
이 문제에서는 개인적(내면적) 진정성과 사회적(외면적) 진정성의 대립이 중요했습니다. 진정성은 인간의 내면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판단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외면을 바탕으로 타인에 의해 판단되는 것인가(㈏)? 제시문들의 이러한 대립적 내용을 바탕으로 위의 그래프가 제시하는 현상을 적절히 설명해 낼 수 있습니다.
마을1의 사람들은 사회적(외면적)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볼 때 자신의 진정성은 자신의 외양에서 드러나며, 진정성 판단의 주체 역시 타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외부의 시선에 비교적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것입니다. 기부자 명단 공개 전에는 이들의 기부 횟수가 적은 것은, 기부 행위를 감독하는 타인의 시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기부자 명단 공개 후 이들의 기부 횟수가 늘어난 것은, 기부 행위를 감독하는 타인의 시선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CCTV 설치 전에 이들의 신호위반 횟수가 많은 것은, 신호위반 행위를 감독하는 타인의 시선이 없기 때문이며, CCTV 설치 후 이들의 신호위반 횟수가 대폭 감소한 것은, 신호위반 행위를 감독하는 타인의 시선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을2의 사람들은 개인적(내면적)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볼 때 자신의 진정성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으로서, 진정성 판단의 주체 역시 오직 자기 자신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남들의 시선에 비교적 덜 신경씁니다. 기부자 명단 공개 전후로 이들의 기부횟수가 그대로인 것은, 이들이 타인의 시선을 덜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자기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적절한 수준의 기부를 하고 있는데, 기부자 명단이 공개되었다고 해서 기부량을 늘릴 이유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CCTV 설치 전에도 자기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신호위반을 적게 하고 있었는데, CCTV가 설치되었다고 해서 신호위반 횟수를 확 줄일 이유도 없습니다. 마을1 사람들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만 떳떳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니까요.
사실 이렇게 설명을 다 해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여전히 설명을 요구하는 현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파악하신 분은 댓글로 달아 주세요.
자, 마을1과 마을2의 인구수와 사회경제적 조건은 비슷했지만, 마을 구성원들의 진정성에 대한 가치관은 달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차이가 <그림 1>과 <그림 2>에 나타난 마을1과 마을2의 차이를 해명해 준 것입니다.
이 정도로 설명을 제공하고 나면, 이로부터 어떤 함의도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설명을 하지 않은 학생은 어떠한 적절한 함의도 파악해 낼 수 없습니다.
개인적(내면적)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은 비교적 기본적 규범 수행도가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을2 사람들은 기부자 명단 공개 전과 CCTV 설치 전에도 이미 마을1보다 기부를 많이 했고, 신호위반은 적게 했습니다. 심지어 기부 횟수의 측면에서는, 기부자 명단 공개 후를 기준으로 보아도 마을2의 100명당 기부 횟수가 마을1보다 많습니다. 반면, 사회적(외면적)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은 비교적 기본적 규범 수행도는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을1 사람들은 기부자 명단 공개 전과 CCTV 설치 후에 마을2보다 기부는 적게 하고 신호 위반은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내면적)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은 비교적 개선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조금 속된 말로 자기 잘난 맛에 취해 사는 사람들이라, 기부 횟수를 늘리거나 신호위반 횟수를 줄이기 위해 어떤 조치(기부자 명단 공개, CCTV 설치)를 해도, 말을 잘 안 듣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을2의 100명당 기부 횟수는 기부자 명단 공개 후에도 전혀 늘지 않았고, 신호위반 횟수도 CCTV 설치 후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죠. 반면 사회적(외면적)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은 비교적 개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부자 명단이 공개되자 마을1의 100명당 기부 횟수는 늘었고, CCTV가 설치되자 마을1의 신호위반 횟수는 대폭 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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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논술전형을 준비하고 있는 많은 수험생들의 고민일 것입니다. 좋은 답안을 쓰기 위해서는 답안에 들어갈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설명을 요구하는 현상을 마주했을 때 궁금증을 가지고, 그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설명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노력을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채점자는 여러분의 답안에서, 설명을 요구하는 현상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있는지를 찾고자 합니다.
설명을 요구하는 현상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설명해 내려고 노력하는 태도는, 비단 논술 답안을 작성하는 데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 전체에 유용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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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불가 들어본사람만아는
감사합니다. 인문논술 공부하시는 분들이 적어서 메인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ㅠㅠ
저에게 정말 필요했던 글입니다!!! 저도 연세합사 선생님 수업 들으면서 인문논술 준비하는게 유삼환 선생님의 칼럼도 자주 보고 있어서 도움 많이 받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합격하십시오 ㅎㅎ
감사합니다!!!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도움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런면에서
시사에 관심이많고
평소 어떤 사안에대해 내가 어떤 입장인지명확하면
확실히 자료를 연결하기가 수월하지요
지식이많으면 논술이 좋더라구요
맞습니다 ㅎㅎ
아직 설명을 요구하는 현상이 무엇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는데 혹시 답변해주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