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테스 [464284] · MS 2013 · 쪽지

2015-11-10 16:59:52
조회수 2,469

마음을 비우고 행운을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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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 전 14수능 전날에 썼던 글인데 다시 한번 올려봅니다.

2013.11.6. D-1
간략히 내 이야기를 하자면, 과거 아이민 2만대의 회원으로 오르비서 잠시 활동했습니다. 꽤나 오래됐죠? 8~9년 전 eureka라는 아이디로 여러 글을 썼고 지금도 찾아보니 구 오르비 베스트 게시판에 제가 올렸던 글이 세 편이 남아있네요.
오르비와의 인연을 생각해봅니다. 당시 썼던 글 하나가 조회 수가 십만 가까이 나온 게 있습니다. 그 글을 통해 여러 수험생 지인을 알게 되고 대학 진학 후 그 인연을 오프로도 이어나가게 됐습니다. 그중에 한 명의 여학생하고는 서로 응원하며 수험생활을 보내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사귀게 됐습니다. 그리고 현재 사귄 지 2808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

이 사이트에 거의 8년만에 글을 써봅니다. 우연히 한 수험생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일기를 보게 됐습니다. 문득 글을 읽고 나 자신이 먹먹하고 애잔한 기분이 들더군요.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혹자는 승리를 구걸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떳떳하게, 당당하게 승리를 구걸하고 기적을 바라십시오. 승리를 구걸하는 것은 요행심리도 아니요, 구차하고 떳떳하지 않은 행위도 아닙니다.
그동안 보냈던 절실함과 그 노력에 대한 마땅한 보상을 바라는 겁니다.

진인사 대천명입니다. 시험을 풀고 나서는 그 뜻을 하늘에 맡기되, 시험에 직면하기 전까지는 승리를 구하고 기적을 바라십시오. 시험 타종이 올리기 전 기도를 하고 믿지 않는 신께도 기도를 올리십시오.
수험생이 공부의 신이라고 부르는 고승덕 전 국회의원도 자신의 나약함에 부처를 찾고 하나님을 찾으며 고시 생활을 보냈습니다. 적어도 내일 하루 동안은 하늘이 자신의 편이라고 여기십시오.

시험장에서의 긴장된 공기 속에서 매 순간 기도하고, 수험표 뒷면에다 내 소망과 이뤄지길 바라는 목표를 적으십시오.
운이란 것도 일종의 끌림입니다. 기분이 나쁜 채 보는 시험과 그렇지 않은 시험은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심호흡을 통해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고, 쉬는 시간마다 바깥바람을 쐬며 두뇌에 휴식할 시간을 주십시오. 간절히 바라되,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시험을 봤습니다. 오히려 결과는 모의고사보다 훨씬 좋게 나왔습니다.
평상심의 마음을 품고 치는 시험이 결과가 좋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내 또래의 어느 수험생은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당시 목표 대학에 30점 정도 못 미쳐 재수를 결심하고 시험장에 들어가 모의고사를 보듯이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효과가 있어서인지 수십 점이 올라 결국 현역으로 설법에 들어갔습니다. 솔직히 찾아보면 이런 사례는 많습니다. 시험 결과가 꼭 실력을 완벽히 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력이 80. 운이 20이라면 운을 찾고 운을 구하십시오.

나는 당시 우울한 마음으로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왜냐하면 언어가 평소에 점수가 꽤나 안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시험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왠일인지 해야 할 일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에 일기처럼 매일 글을 썼습니다. 주로 후회와 번민의 글이었습니다.
D-1의 글에는 5일만 더 있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과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오늘 나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나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시험은 결국 완벽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시험을 너무 높은 벽으로만 인지했습니다. 나는 알고 있거나 잘할 수 있는 게 90이고 모르거나 약한 게 10이었습니다. 그 10만 바라보며 나의 약함을 탓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험 지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90에서 주로 물어봅니다. 물론 전국 수석을 비롯해서 1000등 안에 들만한 실력을 들기 위해서라면 그 10에 치중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볼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전 과목 만점을 바라며 공부를 해왔고 그렇게 시험을 치르는 학생보다는 그저 내일의 결과가 대박의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며 시험을 보는 학생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나 또한 그랬습니다.

나는 과거에 부족함을 직시하며 우울한 D-1를 보내고 있었습니다.밤 10시에 누웠지만 새벽 1시 넘어 잠이 왔습니다. 결국 마음을 비우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배수진의 결의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운명에 맡길 뿐이었습니다. 동시에 하늘에 조금 간청했을 뿐이었습니다. '긴가 민가 했던 게 다 맞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심리가 아닙니다.
마음 편하게 보고 온 시험을 채점을 하니 9월 모의평가보다는 약 20점 정도 올라갔던 것 같습니다.
총체적으로 - 난이도와 같은 거시적인 요소든, 개인 실수와 같은 미시적인 요인이든 - 그 당일의 운에 따라 상대적인 등수가 결정되는 법입니다.
나는 총체적으로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모의평가 때 80점대 후반이 나오던 언어가 막상 수능 때는 쉽게 나와 99점의 점수(백분위98)를 획득했습니다. 백분위는 조금 오른 것에 불과하지만 언어를 잘하는 친구와 십 점 정도 벌어지던 것을 1점 차이로 줄인 게 나와 같은 경우에는 큰 행운인 것입니다.
나머지 과목도 운이 좋았습니다. 자신 있던 수학은 다소 어렵게 나왔습니다. 마찬가지 좀 난도 높게 나오길 바랐던 영어도 지문이 까다로운 편이었습니다. (당시 수능 1등급 컷이 각각 수85/영92)
운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행운과 불운의 절묘한 조화로 예기치 않은 결과를 일으킵니다.
언수와 영어독해문법까지는 다 합해 -7점만 나갔지만 영어듣기에서 생각보다 많은 점수가 나갔습니다. 하필이면 제가 앉은 자리가 맨 앞자리이었습니다. 영어듣기 시간에 앞에 계신 교사 분이 뭘 그리 찾아보고 검토하는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시험지를 자꾸 펄럭이며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자꾸 반복하면서 시험지를 넘기는 그 소리에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산만해지더군요.
그리고 영어 중간 시간에는 나 자신이 용무가 급해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이것도 크나큰 변수가 됩니다. (생리 현상과 관련된 용무는 필수적으로 미리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더라도 긴장되면 자연스레 몸이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화장실도 거리가 멀어, 다녀오고 다시 집중하는데 5분 이상 소요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험이란 것은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이왕이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불운은 차단해야 합니다. (나는 화장실을 미리 다녀왔어야 했고, 그 감독관에게 조용해달라고 부탁을 했어야 옳았습니다.)

말이 장황했습니다. 요지를 간략히 말하겠습니다.

1.승리를 구걸하라.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이라고 생각하라. 매교시 끝날 때마다 체감 난이도와 별개로 자신의 시험 결과를 좋았다고 자기 위안을 하라. 아니, 확신을 하라. 시험을 보는 순간에는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또한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본인의 행운을 믿어라. 채점의 순간, 자신이 믿었던 행운이 나를 배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험을 치르는 순간에는 그 행운을 믿을 수밖에 없다.

2.초콜릿을 많이 먹어라. 하지만 각성효과는 쉽게 사라지는 만큼, 쉽게 사그라진다. 그러니 틈날 때마다 먹어라.

3.물은 적게 먹어라. 물을 많이 마시든가 국이나 죽 같은 음식을 먹은 경우 화장실을 미리 가라. 절대 귀찮아하지 말라. 마렵지 않더라도 볼 수만 있다면 억지로 일을 봐야 한다.

4.굳이 가채점 표에 정답을 옮겨야 하는가?
수학 정도만 옮겨도 괜찮다. 하지만 국어 영어는 100% 가까이 자신이 선택한 답이 기억난다.
즉 그나마 옮길 틈이 나는 수학과 사과탐은 정답을 적되, 시간이 애매한 국어와 영어는 헷갈리거나 찍은 정답만 따로 체크해도 된다. 실력자가 아니 한, 1분 1초도 아깝기 때문이다.

5.내일 하루는 평상시의 자신과 다를 것이다.
무언가, 초인적인 힘이라고 해야 할까? 각성의 힘이 드러날 것이다. 단 하루 동안의 초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시험이다 보니 부지불식 간에 그대의 밑천을 다 드러내 보이게 된다.
즉 잠을 적게 자더라도,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더라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오히려 평상시보다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마인드 컨트롤 잘하고, 평상심을 유지한다면 평상시 80% 실력을 발휘하던 이가 실전에는 120%의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6.제발, 쉬는 시간마다 시험 이야기와 정답 이야기를 하지 말라.
재밌는 것은 그렇게 서로 몇 번이 정답이라고 주장했지만 둘 다 틀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지나간 결과에 무심해져라. 서로 난이도가 어떻다, 정답이 몇 번이다, 이런 잡담은 하지 말자.

7.하루 전 날 본 게, 쉬는 시간에 공부한 게 나올 수 있다.
짧은 시간 대충 훑어본 작품이나 지문이 운 좋게도 나올 수 있기에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자.
더구나 요새는 출제가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으며 공인적으로 EBS에 많은 작품과 지문이 반영된다. 그동안 틀렸거나 어려웠던 것 위주로 쭉 살펴봐라. 아무래도 바로 전에 본 내용의 지식은 적어도 몇 시간 동안 큰 힘을 발휘한다.

8.과거 신문에서 2010수능 만점자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운이 좋게도, 전과목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답을 고친 8개의 문제가 다 맞았다고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채점을 하기 직전까지 이러한 운을 기대하라.

더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쯤에서 줄이기로 하겠습니다.
먹먹한 심정으로 D-1를 보내고 있을 많은 수험생분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면 분명 생각보단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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