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cut [1281125] · MS 2023 · 쪽지

2024-01-23 17: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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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국어를 논함.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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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헤겔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정립이 병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반정립은 병이 아니다. 너는 종합을 바라느냐? 종합이 병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경상 수지의 흑자가 병이 되고, 경상 수지의 적자가 도리어 병이 아니라는 말은 무슨 근거로 할까? 차량 주위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보정하지 않는 데서 연유한다. 금 본위 체제에서는 환율이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병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정립-반정립-종합. 변증법의 논리적 구조를 일컫는 말이다. 그 말이 옳을까?"

 천하의 걱정거리는 어디에서 나오겠느냐? 1970년대 초에 미국의 경상 수지 적자가 누적되기 시작하는 데서 나온다. 보정해도 좋을 것은 보정하지 않고 보정해서는 안 될 것은 보정하는 데서 나온다. 예술은 직관을 잊지 못하고, 종교는 표상을 잊지 못하며, 철학은 사유를 잊지 못하고, 렌즈는 왜곡을 잊지 못한다. 기축 통화인데도 구조적 모순을 잊지 못하고, 달러화의 평가 절하를 잊지 못하며, 왜곡 모델인데도 왜곡 보정을 잊지 못하고, 예술인데도 절대정신을 잊지 못한다. 원근 효과가 제거된 영상을 취하려는 마음을 잊지 못하고, 규모의 경제와 어긋난 기축 통화를 얻으려는 마음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는 자가 되면, 예술에게는 직관을 잊어버리고, 종교에게는 표상을 잊지 못하며, 철학을 잃고서는 사유를 잊어버리고, 영상을 보정하면서 정성스런 마음을 잊어버린다. 마르크화와 엔화를 주고받을 때 환율을 잊고, 정립하고 반정립할 때 종합을 잊으며, 차량 주위 바닥에 있으면서 격자판을 잊고, 체제의 갈림길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잊는다.

 브레턴우즈 체제를 보고 나면 달러화의 평가 절상을 잊고, 변증법의 논리적 구조를 보고 나면 수렴적 상향성을 잊는다. 카메라에서 영상이 나올 때 보정할 줄을 잊고, 금 1온스에서 35달러가 나올 때 본받을 것을 잊는다. 직관-표상-사유를 잊기 때문에 예술-종교-철학을 잊을 수 없게 되고, 예술-종교-철학을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직관-표상-사유를 더더욱 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닉슨이 잊지 못해 벌을 내리기도 하고, 왜곡 모델이 잊지 못해 질시의 눈길을 보내며, 트리핀이 잊지 못해 재앙을 내린다. 그러므로 잊어도 좋을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금 본위 체제와 브레턴우즈 체제를 서로 바꿀 능력이 있다. 금 본위 체제와 브레턴우즈 체제를 바꾸는 사람은, 3차원 실세계의 잊어도 좋을 것은 잊고 2차원 영상의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잊지 않는다."


- 유한준, <잊음을 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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