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 변화의 보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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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제란?
시제는 한국어에서 어떤 상황/사건/사태가 실현되는 시간적 위치를 표현하는 문법 범주이다.
그런데 어떤 것의 위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절대 시제와 상대 시제는 각각 '발화시를 기준으로 사건시의 위치를 판단'하고, '주절의 상황시와 종속절의 상황시'를 비교하여 그 상대적 위치를 판단하는 것이다.
한국어의 절대 시제는 흔히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뉜다고 본다. 이는 3원 체계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어말어미 '었'과 '겠'은 각각 과거와 미래를 나타낸다.
그런데 한국어의 시제 체계를 2원 체계로 보는 입장도 있다.
이는 언어의 실제 사용을 강조하는 관점으로, '-겠-'이 꼭 과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점, '-는/-ㄴ' 역시 미래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점들을 든다.
ex) 어제 비가 왔겠다(과거추측) - 만약 '겠'이 미래만을 의미한다면 과거 시제 선어말어미 '왔'과 같이 공기할 수 없을 것이다. '겠'의 기능을 추측으로만 한정한다하여도 이는 양태(modality)의 측면만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어의 미래 시제(tense)를 나타내는 전용 선어말 어미는 없다고 보아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즉, 이러한 2원 체계의 관점에서는 한국어의 시제 대립을 '과거/비과거'의 대립으로 본다.
2. 사실 이러한 '과거/비과거'의 시제 대립은 중세국어부터 존재했었다.
중세국어의 시제 체계는 현대 한국어의 시제 체계와 유사하면서도 달랐다.
먼저 현대 국어의 동사는 원형(∅)으로 사용하면 현재이고, 과거/미래를 표현하기 위해선 특정한 선어말어미가 결합해야 한다. 형용사도 마찬가지이다. 원형(∅)으로 사용하면 현재 시제를 나타낸다.
그러나 중세국어의 시제 체계에서는 동사를 원형(∅)으로 사용하는 것은 '과거'를 의미한다. 즉, 중세국어에서 오히려 현재 시제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현재 시제 선어말어미 ‘느/ᄂᆞ'가 결합해야만 했다는 것.
반면에 형용사는 현대 국어와 마찬가지로 원형(∅) 그대로 사용하면 현재 시제를 나타냈고, 과거/미래를 표현하기 위해 특정 선어말어미가 결합하였다.
3. 그런데 이러한 시제 체계는 한국어의 관형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먹은 밥 (과거)
먹던 밥 (과거)
먹을 밥 (미래)
먹는 밥 (현재)
예쁜 아이(현재)
한국어 관형절의 대표적인 유형들을 살펴보면 위와 같다. 이를 중세국어의 시제 체계가 여전히 관형절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관형형 어미 '은'은 '∅+ㄴ'으로 분석될 수 있다. 따라서 동사에 결합한 경우 과거를 나타내고, 형용사에 결합한 경우 현재를 나타낸다.
관형형 어미 '던'은 '더+ㄴ'으로 분석할 수 있다. 중세국어에서 '더'는 과거(시제) 비완망상(imperfect aspect)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요소였기 때문에 '던'은 과거로 보는 것이다.
관형형 어미 '을'은 중세국어의 미래 선어말어미 '-(으)리-'에서 기원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는'은 앞서 말한 중세국어의 현재시제 선어말어미 '느/ᄂᆞ+ㄴ'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동사로 만들어진 관형절의 경우 '는'은 현재 시제를 나타내는 것이다.
즉, 한국어 관형절의 시제 체계는 중세국어의 시제 체계와 굉장히 유사한 것이다.
4. 그렇다면 왜 관형절에만 이러한 중세국어의 시제 체계가 남아 있는 것일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안은 문장(모절)과 안긴 문장(내포절)이 존재할 때, 문법 변화의 영향이 더 보수적인 것은 내포절이다. 즉, 내포절의 문법 체계는 잘 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주절의 경우 다양한 언어 변화를 직면하는 위치에 있어 문법 변화에 취약하지만, 내포절은 모절에 안겨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문법 변화의 보수성이라고 하며, 이러한 변화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유형론적으로 독일어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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