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는 근일점에서 가을철이다 [1142247] · MS 2022 · 쪽지

2023-11-23 20: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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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준-잊음을 논함 전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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忘解 ( 망해 )

; 잊어버림에 대하여

 

兪漢雋 ( 유한준 , 1732~1811)

신영산 번역

 

 

 

余有姊之子曰 , 金履弘 .

弘病忘甚 , 對物則九遺 , 遇事則十失 .

朝之所爲夕已迷 , 昨之所行今不記 .

 

내 누님에게 아들이 있는데 , 김이홍이라 한다 .

이홍은 잊어버리는 것이 아주 심하였으니 , 어떤 물건을 대하게 되면 열에 아홉을 잊어버렸고 , 일을 하게 되면 열에 열을 잊어버리곤 하였다 .

아침에 한 일이라도 저녁이면 벌써 혼미해졌고 , 어제 한 일이라도 오늘이면 기억하지 못하였다 .

 

弘之言曰 : “ 吾之忘 , 其殆病矣夫 .

夫使吾小不能以治事 , 而大不能以御物 , 而言有所或失 , 行有所或闕者 .

凡皆以忘爲之祟也 .

苟有能醫吾之忘者 , 吾復何惜千金 ? 吾將千里不遠焉 !”

 

이홍은 내게 하소연하였다 .

“ 제가 잊어버리는 것은 아무래도 병인가 봅니다 .

대개 잊는 것이 , 제게 작게는 어떤 일을 하지도 못하게 하고 , 크게는 벼슬에서도 일을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게 하며 , 말을 하더라도 혹 실수하게 하기도 하고 , 행동을 하더라도 무언가를 빠뜨리곤 합니다 . 이 모두가 잊어버리는 것이 빌미입니다 .

마땅히 제가 잊는 병을 고쳐줄 사람이 있다면 , 어찌 천금인들 아끼겠사옵니까 ? 저는 장차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고 찾아갈 것이옵니다 .”

 

余解之曰 :

“ 女睹忘之能病女而不忘之能益女矣 . 不睹不忘之將爲女患而忘之將爲女福矣 .

吾願女不必醫忘 , 非惟不醫忘 , 又益忘 , 至於遂大忘也 .

苟女以千金求天下之醫忘者而醫之 , 則吾將左掣女肘而右挽女臂 , 令不得醫焉 .”

 

이에 나는 타이르며 말하였다 .

“ 너는 , 잊는 것이 능히 병이 되는 것과 , 잊지 않는 것이 능히 도움을 주는 것만 볼 뿐이다 . 하지만 너는 , 잊지 않는 것이 장차 네게 걱정을 끼치고 , 잊는 것이 장차 네게 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보지 못하고 있도다 .

내 원하거니 너는 잊는 병을 고치지 않기를 바라노라 . 오히려 잊는 병을 고치지 말고 , 또 더 많은 것을 잊어서 , 드디어 크게 잊는 지경에 이르기를 바라노라 .

정녕 네가 천금을 들여 천하의 잊는 병을 치료하는 의원을 구하여 치료하고자 한다면 , 나는 왼손으로는 네 팔꿈치를 잡아당기고 오른손으로는 네 팔뚝을 붙잡아서 , 네가 의원을 구하지 못하게 하겠노라 ."

 

弘瞠而曰 : “ 何謂也 ?”

 

그러자 이홍이 나를 보며 말하였다 .

“ 어찌 그렇게 말씀하나이까 ?”

 

余曰 :“ 女病女之忘乎 ? 夫忘之非病也 .

女求女之不忘乎 ? 夫不忘之非非病也 .

夫不忘之所以爲病而忘之所以爲非病者 .

 

나는 대답하였다 .

“ 너는 , 네가 잊는 것이 병이라고 생각하느냐 ? 무릇 잘 잊는 것은 병이 아니로다 . 너는 , 네가 잊지 않기를 바라느냐 ? 무릇 잊지 않는 것은 병이 아닌 것이 아니로다 .

그러하니 잊지 않는 것이 병이 되는 것이고 , 잘 잊는 것이 도리어 병이 아닌 것이다 .

 

何也 ? 由於可忘而不忘也 .

夫可忘而不忘而謂之忘是病也 .

則是將以不可忘而忘之而謂之忘非病也 , 而可乎 ?

 

왜 그러한가 ? 그것은 잊어도 좋은 것을 잊지 못하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리라 .

무릇 잊어도 좋을 것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 잊는 것이 병이라고 할 것이다 . 마찬가지로 장차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는 사람들은 , 잊는 것이 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가히 그 말이 과연 옳겠는가 ?

 

天下之患何興乎 ?

興於不忘 . 其所可忘而忘其所不可忘 .

目不能忘色 , 耳不能忘聲 , 口不能忘美味 , 居不能忘廣室 .

 

천하의 근심거리는 과연 어디에서 나오겠느냐 ? 잊어도 좋을 것은 잊지 못하고 ,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잊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

눈은 능히 아름다운 여인을 잊지 못하고 , 귀는 능히 좋은 소리를 잊지 못하며 , 입은 능히 맛있는 음식을 잊지 못하고 , 크고도 화려한 집에서 사는 것을 잊지 못한다 .

 

身賤矣 , 不能忘勢 , 家貧矣 , 不能忘利 .

貴不能忘驕 , 富不能忘吝 .

物不能忘非義之取 , 名不能忘無實之獲 .

 

제 몸이 천하면서도 큰 세력을 얻으려는 생각을 잊지 못하고 , 제 집이 가난하면서도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생각을 잊지 못한다 . 고귀한데도 교만한 짓을 잊지 못하고 , 부유한데도 인색한 짓을 잊지 못한다 .

의롭지 않은 물건을 취하려는 마음을 잊지 못하고 , 제 실상과 어긋나는 이름을 얻으려는 마음을 잊지 못한다 .

 

而至於不可忘而忘者 , 則親焉而忘孝 , 君焉而忘忠 .

喪而忘哀 , 祭而忘愨 . 取與忘義 , 進退忘禮 .

處下位忘分 , 臨利害忘守 .

 

그래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는 자가 되면 , 어버이에게는 효도하는 마음을 잊어버리고 , 임금에게는 충성하는 마음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

부모를 잃고서도 슬픔을 잊어버리고 , 제사를 지내면서도 정성스러운 마음을 잊어버린다 . 재물을 받으면서도 의로움을 잊어버리고 , 나아가고 물러날 때도 예의를 잊는다 .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제 분수를 잊는가 하면 , 이해관계에 놓일 때도 지켜야 할 도리를 잊곤 한다 .

 

遠忘近 , 新忘舊 . 言發於口忘可擇 , 行出於身忘可則 .

內之忘 , 故外不能以忘 . 外不能以忘 , 故內以益忘 .

 

먼 것을 보게 되면 가까운 것을 잊고 , 새것을 보고 나면 옛것을 잊는다 . 말이 입에서 나올 때 가려 해야 하는 것을 잊고 , 몸에서 행동이 나올 때 법도에 맞게 해야 하는 것을 잊는다 .

마음에 담아야 할 것을 잊기 때문에 , 겉으로 드러나는 행실을 잊지 않고 , 겉으로 드러난 행실을 잊지 않기 때문에 , 마음에 담아야 할 것을 더더욱 잊게 되는 것이다 .

 

是故天不能忘 , 或降之罰 , 人不能忘 , 或贈之嫉 . 鬼神不能忘 , 或享之孽 .

故夫知可以忘 , 知可以不忘者 , 能易之於內外 .

易之於內外者 , 忘乎在人者之可忘 , 不忘乎在己者之不可忘 .

 

이렇기에 하늘이 잊지 않아 때때로 벌을 내리기도 하고 , 남들이 잊지 않아 때때로 질시의 눈길을 보내기도 하며 , 귀신이 잊지 않아 때때로 재앙을 내리는 것이다 .

그러므로 잊어도 좋을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능히 속마음과 실제 행동을 서로 바꿀 능력이 있다 .

속마음과 실제 행동을 서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 다른 사람이 잊고자 하는 것을 가히 잊을 수 있고 , 자신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가히 잊지 않는다 .

 

弘性狷而心淸 , 志端而行方 . 其不可忘者 , 弘雖寤寐不忘也 .

其可忘者 , 吾願女忘 , 不願女不忘 .

吾恐女所謂病女者之或不深 , 而吾所謂福女者之或不豊也 .

 

이홍이 너는 , 성품이 강직하고 마음이 맑으며 , 뜻이 단정하고 행실이 방정하다 . 그렇기에 잊어서는 안 될 일을 , 이홍이 너는 잠을 자든 깨어있든 잊지 않는다 .

잊어도 좋은 것이라면 나는 네가 잊기를 바랄 뿐이고 , 네가 잊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다 .

나는 , 너를 병들게 한다는 잘 잊어버리는 것이 깊어지게 되지 않을까를 염려한다 . 또 나는 , 네게 복을 가져다준다는 잘 잊어버리는 것이 풍성하게 되지 않을까를 염려한다 .

 

又何必懷千金之寶 , 涉千里之遠而醫忘爲哉 ?

弘乎 ! 其忘之矣 !”

 

이러하니 어찌 천금의 보물을 싸 들고 천 리 먼 곳을 찾아다니며 잊어버림을 치료할 필요가 굳이 있겠느냐 ?

이홍아 ! 차라리 잊어버려라 !”

 

 

『자저 ( 自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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