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의 마찰음화와 ㅎ 말음 체언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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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션 국국원의 로마자 표기법이 아니라 예일식 표기를 썼습니다. 헷갈리지 마시길
중세 국어는 특이한 형태로 쓰이던 단어들이 꽤 있었다. 저번에 얘기했던 ㄱ 덧생김 체언이라든가 그것과 함께 다뤘던 소위 ‘특수 어간 교체 체언’이라 불리는 체언 등등. 이와 비슷하게 ㅎ 말음 체언 또는 ㅎ 종성 체언이라 불리는 체언도 있었다. 아마 언매를 하면서 들어 봤을 것이다.
말음으로 ‘ㅎ’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ㅎ 말음 체언이라 하는데, 단독형이나 관형격 조사 ㅅ 앞에서는 ‘ㅎ’이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외의 평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나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할 때는 어간 말음 ‘ㅎ’이 덧나는 양상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땅(<ᄯᅡᇂ ), 칼(<갏), 돌(<돓), 등이 있으니 어떻게 쓰였는지 보자.
鹿野苑은 ᄯᅡᆺ 일후미라 (1459 월인석보)
ᄯᅡ토(ᄯᅡᇂ+도) 뮈더니 (1447 월인천강지곡)
갈 ᄲᅡᅘᅧ 들어 (1447 석보상절)
갈해(갏+애) 주그니 (1447 용비어천가)
石 돌 셕(1527 훈몽자회)
ᄒᆞᆰ과 돌콰(돓+과) 뫼콰 더러ᄫᅳᆫ (1447 석보상절)
15세기부터 ㅎ이 쓰일 환경에도 아예 ㅎ이 탈락한 단어도 있고 근대 국어 시기까지 ㅎ이 유지된 단어도 있었는데 20세기에 들어서며 음운론적 환경에 따라 ㅎ이 덧나는 현상은 사라지게 된다. ‘돌’처럼 아예 ㅎ이 탈락하거나 ‘땅’처럼 종성이 ㅇ이 되기도 하고, ‘넷’처럼 종성이 ㅅ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암탉’, ‘수캐’, ‘안팎’ 등 일부 어휘에서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중세국어에 ㅎ이 덧나는 ㅎ 말음 체언들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고대국어에서도 ㅎ이 덧났을까? 우선 방언형부터 보자.
돌: 돌게, 돍, 둑, 등
겨울: 겨욹, 겨슭, 즑, 등
수-: 숙, 등
위: 욱, 우그, 등
그루: 글그, 글게, 등
길: 짉, 질걸, 등
그늘: 그늙, 그능기, 등
바다: 바닥, 바당 등
나좋(저녁의 옛말): 나주악, 나주왁, 등
여러 방언형 중 일부러 이것들만 골라서 가져오긴 했지만 공통점은 바로 ‘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ㅎ 말음 체언과 ㄱ 간의 모종의 관계가 있었음을 시사하고 방언이 표준어에 비해 보수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ㅎ은 과거에 ㄱ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가능하다. 실제로 ㄱ과 ㅎ은 쉽게 바뀐다.
이번엔 중세 국어에서 ㄱ에서 왔단 걸 보여주는 단어를 보자. ㅎ 말음 체언은 고유어만 있었던 게 아니라 한자어도 있었다. 현재는 고유어로 처리되지만(귀화어) 한자어에서 유래한 단어들로는
尺 > 잫 > 자(ruler)
笛 > 뎧 > 뎌 > 져 > 저(관악기)
褥 > ᅀᅭᇂ > ᅀᅭ > 요
가 있다. 저 한자들의 공통점은 바로 ㄱ 입성자 즉 말음이 불파음 ㄱ이었단 거다. 현대국어 한자음으로도 ㄱ이 있지만 중세 국어 시기에서도 한자음 끝에 ㄱ이 있었다. 따라서 한자음의 말음 ‘ㄱ’이 약화되어 ‘ㅎ’이 됐다고 볼 수 있다.
한자어 말고 고유어의 변화도 알 수 있다. 고대 국어 기록으로 가 보자.
1. 나라(<나랗)
“後句 君如臣多支民隱如爲內尸等焉 國惡太平恨音叱如”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하거든 나라가 태평할 것이다.
《삼국유사(1281)》 2권 기이 中 〈안민가(765)〉
삼국유사에서 ‘나라’를 ‘國惡’로 표기했는데 國은 뜻이고 惡은 음이다. 뭔 소리냐면 ‘國’로만 쓰면 음독인지 훈독인지 확실하지 않으니 뒤에 惡을 붙여 훈독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惡은 상고음에서나 중고음에서나 어말에 ㄱ 소리가 있다. 따라서 ‘國’은 한자음이 아니라 우리말로 읽었어야 하고 뒤에 惡이 있으니 말음 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nalak’ 즉 ‘나락’ 정도로 재구된다
2. 돌(<돓)
“石山縣 本百濟珍惡山縣 景德王改名”
석산현(石山縣)은 본래 백제의 진악산현(珍惡山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삼국사기(1145)》 〈지리지〉 3권
이 기록은 ‘石’과 ‘珍惡’이 대응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珍’은 고유어 표기에서 ‘tor’을 나타낸다. 뒤에 ㄱ을 나타내는 ‘惡’도 있으니 珍惡은 음차자라는 것을 알 수 있고 石의 뜻인 ‘돌’과 ‘珍惡’의 음이 맞는 것을 알 수 있다.
‘*twolak’ 즉 ‘도락’ 정도로 재구된다.
3. 암(<암ㅎ)
“王出兵, 圍新羅阿莫山城 【一名母山城.】”
왕이 군사를 내어 신라의 아막산성(阿莫山城)을 포위하였다. 【모산성(母山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1145)》 〈백제본기〉 4권 무왕 3년(602년) 8월조
“雲峯縣, 本母山縣 【或云阿英城, 或云阿莫城.】, 景德王改名”.
운봉현(雲峯縣)은 본래 모산현(母山縣)【아영성(阿英城), 아막성(阿莫城)이라고도 한다.】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삼국사기(1145)》 〈지리지〉 1권
두 기록에서 ‘阿莫’이라는 공통되는 표기가 보인다. 母와 대응하는 표기로 莫라는 음차자 덕에 역시 ㄱ이 말음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amak’ 즉 ‘아막’ 정도로 재구된다.
4. 위(<웋)
“安羅下旱岐大不孫·久取柔利, 加羅上首位古殿奚, ... 仍赴百濟”.
안라의 아로시칸키(下旱岐; アロシカンキ) 대불손과 구취유리, 가라의 오코시슈이(上首位; ヲコシシュイ) 고전해 ... 등이 백제에 이르렀다.
《일본서기(720)》 흠명 5년(544년) 11월조
“一切 有情是隱 乃沙 至是隱 上只 第一有良中 生爲飛叱 者是隱 [於]彼”
일체 유정인, 위로 제일유에서 태어나는 것에 이르기까지인”
《유가사지론(~1250)》 20권
上이 ヲコ과 대응하는데 コ는 일본어를 공부해 봤으면 알겠지만 ㄱ 소리이다. 그리고 上只라는 표기는 앞서 언급한 말음 첨기의 경우로 只은 말음 ㄱ을 나타낼 때 쓰인다.
‘*wuk’ 즉 ‘욱’으로 재구된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ㅎ 말음 체언의 형성 과정을 알아보자. 이를 위해선 ㄱ>ㅎ의 변화를 설명해야 하는데 ㄱ의 마찰음화가 그 이유로 지적된다. ‘*도락’으로 재구한다면 ‘도락+이’나 ‘도락+도’는 각각 ‘도라기’와 ‘도락도’가 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대 국어에서는 받침의 발음이 외파됐다고 봐서 전기 고대 한국어의 체계에서 ‘CVC(자음+모음+자음)’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도락’은 [도락]이 아니라 [도라ㄱ]처럼 발음됐을 것이다. 여기서 ㄱ을 따로 떼어놓아서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는데 전자는 한국어 ‘독’을, 후자는 영어 dog를 생각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락’은 더 이전에는 ‘도라ㄱV(V는 모종의 모음)’였을 것이고 ㄱ의 마찰음화를 거쳐 ㅎ이 된 게 ‘*도라히’, ‘*도라흐도’ 정도가 됐다고 볼 수 있다(편의상 V를 ㅡ로 잡음). 기저형에서 모음 탈락이 일어나면 ‘돌히’가 될 것이고 ‘*돌흐도’ 정도가 될 것이며, ㅎ+평음(ㅅ 제외) 구조는 격음의 기원이므로, ‘돌히’는 중세 때 그대로 ‘돌히’로 남고, ‘*돌흐도’는 ㅎ의 영향으로 ㄷ이 ㅌ이 되며 ‘돌토’가 됐을 것이다.
따라서 ‘*도라ㄱV>*도락>*도랗>돓’과 같은 변화를 상정할 수 있다. ㄱ이 문증되는 것들은 아마 다들 이러한 재구 공식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지만 문제는 ㄱ이 문증되지 않은 ㅎ 말음 체언들이다. ㅎ 말음이 ㄱ으로 소급된다고 쳐도 이 ‘-ㄱ’ 혹은 ‘-ㅎ’이 이차적인 요소 그러니까 접미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ㄱ>ㅎ 약화가 이미 진행되어 고대 국어 표기에서도 반영이 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ㄱ 덧생김의 재구처럼 공통된 부류로 묶이는 ㅎ 말음 체언은 그 기원이 같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문증되지 않더라도 말음 ㄱ을 재구하는 것이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내(川)’를 일반적으로 ‘*nalih(나리ㅎ)’로 재구하지만 ‘*nalik(나릭)’으로 재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사의 경우 ‘하나’, ‘둘’, ‘셋’, ‘넷’ 모두 중세 때 ㅎ 말음 체언이었는데 이들은 ‘-ㅎ’이 이차적인 요소로 분석되므로 이들에 한해서는 최고형에서 ㄱ을 제외해야 할 것이다. 이런 예들을 뺀다면, 아마 ㄱ을 말음으로 가지고 있던 단독형이 ㄱ의 마찰음화로 ㅎ 말음 체언이라는 이형태 교체형을 보이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도락>*도랗>돓>돌
*나락>나랗>나라
*아막>*아맣>암ㅎ>암
*욱>웋>위
*갉>갏>칼
*그륵>그릏>그루
*나족>나좋>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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