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리에 [1172061] · MS 2022 · 쪽지

2023-11-16 22:59:46
조회수 14,208

미필 5수를 끝내며...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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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진 그냥 웃긴 글이나 뻘글만 싸질렀지만...

오랜만이 진지하게 5수를 끝내며 수능생활을 반추해본다..



1.

우선,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현역때는 지치지않고 공부를 달렸다.

매일 7시에 일어나서 저녁 11~12시에 하교해도,

힘들었지만 할만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8시에 기상하는 것조차 버겁다.

하루 종일 앉아있어서일까, 엉덩이 근육이 아프고 치열에 걸렸다.

하루 종일 숙이고 있어 거북목은 심해졌고,

긴장한 몸으로 인해 두통과 근육통으로 아픈 날도 많아졌다.

운동은 늘 부족하며, 밥은 공부하느라 늦게 먹거나,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2.

사회 경험이 부족하며 자신의 틀 안에 갇힌다.

주변 친구들은 운전 면허도 따고, 주식을 하기도 하고,

취업을 하는 친구까지도 생기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면 할 수록 

경제관념, 사회경험에서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그들끼리는 대화가 통하지만, 난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거라곤 MMw=10%d 니까.


3.

신경이 과민해진다.

내 공부에 나와 방향이 맞지 않은 훈수를 두는 누군가에게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난다.

실모를 풀 때 늘 긴장해있고, 푼 이후엔 정신이 멍해진다.


4.

가족과 소원해진다.

나의 입시 실패는 가족의 갈등으로 번진다.

내가 꾸는 꿈을 그들도 함께 꾸며,

내가 한 실패는 결국 가족 전체의 실패로 다가온다.


5.

경제적으로 힘들다.

집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은 이해 못 하겠지만,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지금 모두

힘든 시기라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특히나 그랬다.

오래 다녔던 직장을 그만둔 부모님 두 분은

전재산과 대출까지 영끌해서 창업을 하셨다.

창업 초기이기에 수익은 거의 나지 않지만,

우리 가족은 일곱 식구이기에 매달 나가는 지출은 매우 많다.

사실상 몇 년째 적자다.


그런 환경이라 재수때까진 학원을 다녔지만,

삼수부턴 스터디카페에서 독재를 했다.

책을 시킬 때, 스터디카페를 연장할 때,

집안 형편을 알기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작년과 올해 초엔 학원알바와 과외를 했지만,

하반기에 공부를 위해 스톱하고

모아둔 돈은 다 공부에 탕진했다.


그리고 수능을 보고 온 오늘,

논술 단과를 맞춰달라고 했다가 또 다시 큰 말다툼을 했다.

조심스럽게 단과 얘기를 꺼냈지만,

부모님은 논술은 안된다, 가능성에 비해 돈이 아깝다며

부정적인 얘기만 했고, 이는 큰 다툼으로 번졌다.


6. 

외롭다.

꼭 연애가 아니라도, 그냥 외롭다.


늘 실모를 풀고 피드백하며 자신을 갉아먹는다.

내 잘못을 찾는게 공부의 주된 과정이니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나는

실수투성이에 허점많은 인간으로 느껴진다.


하루종일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

친구가 없는게 아님에도 말을 할 사람이 없다.

오늘 공부한 내용들, 잘 본 시험들 못 본 시험들,

친구에게 말해봐야 영혼없는 반응뿐이고,

(그야 그들은 수능판을 떴으니)

가족들에게 말하면,

잘 보면 마음만 앞선다고,

못 보면 그래선 부족하다고 핀잔만 듣고

난 또 신경이 곤두서서 화를 내고 공부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공감이 필요했을 뿐이었을텐데.


7.

앞으로 수능을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다.

보더라도 지금처럼 빡세게 준비하진 못하겠다.


선천적으로 행동도 느릿느릿하고,

글도 차근차근 읽어야 이해가 되는 나에게,

텍스트 범벅의 타임어택 국어는 노력부족이 아닌

재능 부족, 즉, 재능이라는 벽에 막힌 기분이 든다.


나에겐 아직 큰 산이 남았다.

대학교도 몇 년 남았고, 군대도 남았다.

이 큰 산들을 해결하고 나면, 30을 바라보기 시작할거고,

또 다른 큰 산들이 나타나겠지.


8.

선천적으로 글 읽는 능력도, 글 쓰는 능력도 부족한

내 글을 읽어줘서 고맙다.

수능 보느라 수고했다.


9.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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