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의 수비벽이 견고하다 [1265571] · MS 2023 · 쪽지

2023-11-15 08: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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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어렵다.


그런걸 꽤 오래 느꼈고, 어느 순간 아 이렇게 사는 건 정말 아닌데… 이렇게 살다간 일이십 년 후 틀림없이 자살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 일단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쉬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나는 비교적 열심히 살았던 편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긴 했으나 이 때까지 내가 했던 것들은 정말 나에게 별 의미도 없는 짓들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면 어찌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주변 사람 말,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만 쫓아왔던 게 문제였다.


그동안 인정욕구에만 목매느라 내가 누군지도 파악 못한 채로 그저 남들이 좋다는 길을 왔다가 뒤늦게 엄청 후회하고 있다. 공부도 재미 없고, 나에게 아무런 효용도 보람도 못주는 공부하면서.. 기껏해야 그 대가가 ‘오 성공했네’ ‘잘나가나보네‘ ’우와 대단하네요’라는, 정말 하찮고 하찮은 몇 마디 사탕발림에 불과하다는 것.. 그 달콤한 사탕맛에 인생의 길을 틀어버렸으니 이거야말로 마시멜로 실험과 다를게 뭐가 있을까.. 내가 한심해서 그랬던 걸 누굴 탓하겠느냐마는.


남은 인생이라도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여러가지로 알아보고 있는데 쉽지 않다. 가물가물하지만 잡히는 것이 좀 있긴 한데, 어떤 결과나 성과, 자리에 대한 생각을 아예 버려야만 가능한 것 같다. 어쩌면 이제까지 해왔던 것을 모두 버리게 되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고...


지금 쉰 지 몇 달 지나고 있다. 짧은 시간이기는 해도 나에 대해 꽤 많이 느끼고, 알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왜 내가 괴로울 수밖에 없고, 공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진짜 나의 모습,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방식을 추구하며 사는 것은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하나 쓸모 없는 잉여 인간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였다. 직감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을 늘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괜찮다는 길을 선택하고 다른 사람이 가치를 두는 것들을 추구하려 애쓰며 살아왔던 거다. 거기서 바로 나는 내 존재에 대한 한없는 공허감과 허무감을 느껴왔던 것 같다.


나는 다양한 생각과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뭔가 삘받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글로 옮겨 적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쓸 때가 가장 즐거웠다. 글을 쓰고 있으면 나 스스로 내가 마치 뭐라도 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고, 내 속의 아이디어를 끄집어내 표현해 냈다는 것 자체에서 어떤 기묘한 뿌듯함도 많이 느꼈다. 그런데 알고보면 나는 무슨 책이나 논문을 낼 정도로까지 괜찮은 글을 쓰진 못한다. 말 그대로 방구석에서 일기장에 글을 끄적이는 정도 수준일 뿐이다. 바로 여기서 그동안 큰 괴리감을 느껴왔던 셈이다.


글쓰기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추구하는 것들은 뭔가 지금의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많다. 나는 그저 맘에 맞는 사람들과 정말 하나 쓸 데 없는 잡담이나 지껄이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사람들과 말하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게 되는데, 그 중에 현실적으로 도움 되는 것들은 정말 1도 없지만... 그냥 그 자체로 즐겁다. 그런데 의학을 공부하고자 하니 너무 숨이 막힌다. 대체 왜 이런 것에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그냥 그 자체로 공허감을 느낀다. 솔직히 그냥 바로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갑갑해졌다.


그냥 다니던 대학 마저 다니고 대학원 가서 공부나 계속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 후회를 많이 한다. 그 길을 가지 않았던 것도 실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대로 영영 현실과 동떨어진 길을 갔다가 되돌아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면 어쩌지, 현실에서 낙오자가 되거나 이탈자가 되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 그리고 불안…


쉬고 있다보니 너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냥 하루하루가 그저 좋을 뿐이다. 정말로 늦게라도 졸업하고 대학원 갈까 진지하게 고민도 하며 이런저런 다양한 분야 책을 읽고 각 연구실 홈페이지도 들어가보고. 하나같이 ‘돈버는 길‘과는 하등 무관한 것들이다.


그러니까, 내 삶이 공허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사는 것은 그냥 날백수처럼 사는 것이고, 그 어떤 생산적인 것도 그 속에 없을 거라는 데서 오는 자괴감.. 그게 계속 내 정신을 괴롭혀왔던 거다. 그러니 어떻게든 맘에 안들어도 현실과의 접점을 찾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박증을 갖고 살았던 거고.


’자살‘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되니 어느 정도 답이 찾아진 것 같다. 뭘 하더라도 자살보단 낫지 않을까? 날백수로 공부나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나 하며 사는 것이 자살보다도 더 최악일까? 자살은,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다. 결국 어떻게 살더라도 자살보다 낫다고 생각하니 뭔가 든든해졌다. 아주 조금씩, 이렇게 내 멋대로 살며 삶의 공허함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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