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만하네요 [1245407] · MS 2023 (수정됨) · 쪽지

2023-10-12 22:02:19
조회수 1,732

'가로'와 '세로'란 말이 관련 있어 보이나요?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64711934

사실 둘은 딱히 연관성이 없습니다. 


'가로'의 옛말은 'ᄀᆞᄅᆞ'이고 '세로'의 옛말은 '셰'입니다. 현대 국어에서야 둘 다 '로'로 끝나지만 중세 때만 하더라도 연관성이 하나도 없는 단어였습니다. 


'ᄀᆞᄅᆞ'는 현재 '가로 놓여 있다'를 뜻하는 사어 'ᄀᆞᄅᆞ다'의 어간과 같은 것으로, '비릇/비릇다'의 관계처럼 어간 자체가 부사로 쓰인 경우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형태소 없이 품사가 바뀌었다 하여 이를 영파생(또는 영변화)이라고 합니다. 16세기 후반에 아래아 제1 차 소실이 일어나 2음절 이하의 아래아가 ㅡ로 변해 'ᄀᆞ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18세에는 'ᄀᆞ로'라는 기록이 등장하는데 '바투/도로'에서 보이는 부파접 '-우/오'에 유추된 결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다만 아래아가 ㅗ로 변한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어 부파접에 유추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음운 변화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아 제2 차 음가 소실로 '가로'가 형성되며 현대 국어로 이어집니다.


'세로'의 옛말 '셰'는 금강경삼가해(15C)에서 처음 문증됩니다. "ᄒᆞ녁 셰브터 프ᄅᆞᆯ 다 뷔여 어드니라"는 "한쪽의 (세로)줄부터 풀을 다 베어 얻으니라"를 뜻하며 '셰'라는 형태는 일반적으로 '서다(stand)'의 옛말 '셔다'에 접미사 '-이'가 붙은 꼴로 여겨집니다. 다만 이 당시는 '세로'라는 뜻보다는 '서 있는 것'이라는 뜻이 더 강했습니다.


18세기까지 쭉 '셰'로 쓰이다 20세기 기록에는 갑자기 '세로'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ᄀᆞ로'의 등장 이후입니다. 아마 '셰'의 의미가 18세기쯤 '서 있는 것'에서 '위에서 아래로 나 있는 것' 쪽으로 의미가 변함에 따라 '가로'와 의미적으로 반의 관계를 이루게 됐을 것입니다. 이를 의식한 언중이 부사격 조사 '로'가 결합한 형태인 '세로'를 기본형으로 인식하여 '세로'가 쓰이게 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가로'와 '세로'는 어원적으로 '로'를 공유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