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해력이란 곧 뇌피셜 - 대화와 독해의 차이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64136421
글을 잘 읽는다는건 무엇일까? 글 또한 인간 사이의 소통방식이기에,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소통인 대화와의 비교 속에서 그 핵심을 찾을 수 있다.
대화는 일반적으로 즉각적이다. 상대방의 말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얼마나 명료하고도 순발력있게 전달하는 지가 대화의 흐름을 좌우하는 것이다. 명료함과 순발력. 이 두 요소가 원할하게 기능하기 위해선, 생각은 결코 유예되거나 축적되어서는 안된다. 상대방에 말에 대한 과다하게 깊은 생각은 외려 대화의 흐름을 전복시키고 만다. 대화에 놓인 인간은, 따라서 드러난 상대의 말의 표층만을 빠르게 간파함으로서 핵심을 간결하게 파악한 뒤, 이를 바탕으로 명료한 대답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때의 파악이란, 빠른 시간내에 대답을 해야한다는 시간적 제한 탓에 언어만으론 그 정확성을 담보할 수가 없다. 이는 대화에 있어 말보다도 비언어적, 반언어적 표현들에 크게 의지해야만 할 필요성을 의미한다. 이때 필요해지는 것이 '눈치'다. 즉 대화가 표층적 의도의 층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입밖으로 표현된 언어를 넘어 밖으로 삐저니오는 감정, 다시말해 상대의 말을 둘러싼 감정과 기분을 바탕으로 그에 눈치있게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대화의 기작인 것이다. 결국 대화란, 그 형식상 '눈치'를 바탕으로한 감정의 공유가 그 핵심이며, 따라서 근본적 목적 또한 서로의 감정에 대한 (즉각스럽기에)자연스러운 교감에 있다.
반면 독해는 이러한 기작에 근간을 두지 않는다. 대회와는 달리, 글은 읽는 이에게도 쓰는 이에게도 시간적 자유를 허락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이는 눈치에 의거한 감정적 표현들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기에, 오로지 자신의 말의 논리와 형태를 다듬는 데에 열중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읽는 이 또한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말의 표층 밑을 흐르는 흐름에 맞춰 생각을 흘려보낼 넉넉한 시간을 가지게 된다.
대다수 경우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너무도 대화에 익숙해저 있음을 뜻한다. 즉 오로지 눈에 들어오는 표층적 의미만을 바탕으로 빠르게 나의 대답(이해)을 도출해야만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익숙함이 글의 이해를 막고 있는 것이다. 이 익숙함은, 독해에 있어서는 결국 조급함에 다름 아니다.
독해의 핵심은 '뇌피셜'이다. 첫문단 혹은 첫문장을 읽음과 동시에 시작되어 글의 마지막을 읽을 때까지 끊임없이 뇌피셜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것이야말로 독해의 전부이다. 글의 처음 부분을 이해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글의 첫부분은 결국 글의 마지막을 상정함에서야 비로소 하나의 의미단위를 지니게 되기에, 진정한 의미의 이해란, 글의 마지막을 읽음에서야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이런 첫문장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뇌피셜로서 만들어가고, 그 정확도를 점차로 높여나가, 마침내 글의 끝부분에 다가가서는 글쓴이의 의미와 거의 부합하는 뇌피셜임을 스스로 확인함으로서 글의 독해가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글을 정확하게 읽어나간다는 것은, 읽는이 스스로가 만들어낸 뇌피셜의 흐름을 끊임없이 글의 내용과 대조해나가는 지긋한 과정을 의미한다. 특정한 단어가 어떤 식으로 바뀌어 표현되어지고 있는지를 바탕으로 그 의도에 대한 뇌피셜을 만들고 이를 그 다음 문장을 바탕으로 그 경우의 수를 줄이고 늘려가는 과정, '즉' '그러나'라는 단서가 담보하는 의도의 정제 속에서 읽는 이의 뇌피셜을 차근히 갈무리해나가는 추측의 과정등은 결국 모두 뇌피셜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테크닉에 해당한다.
이 과정을 성실하게, 한 단어 단어의 의도를 추측해가며 지긋하게 수행해나가는 노력의 결과끝에 찾아오는 뇌피셜에 대한 직관적 확신이야말로 독해력이다. 첫문장만으로도 해당 문단이 어떤 의도로 쓰여진 것임을 높은 정확도로 추측할 수 있는 능력, 나아가 해당 문단을 읽는 것을 곧 자신의 뇌피셜에 대한 검증과 동치시킬수 있는 능력. 그러한 과정에 대한 숙달을 바탕으로, 글들의 일반적인 형식들을 유추하고 익힐 수 있는 능력. 그로부터 무엇이 좋은 글이며, 나쁜 글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잣대가 탄생하며, 그렇게 마침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얻게되는 것이 독해력의 진정한 가치인 셈이다.
--------
과외하러 가는 와중에 왜 학생들이 독해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가 너무 대화에 익숙해서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버스에서 쓰게 되었네요. 국어 영어 수능 지문들 또한 보다 더 올바른 독해를 할 수 있는지에 많이 집중하고 있는 것 같구요. 제가 수능칠때는(17수능...) 사실 암기의 스킬을 묻는 것에 가까웠던 것에 반해서, 요즘 수능문제들이 훨씬 좋게 느껴지는거 같네요..ㅎㅎ..... 반응이 있으면 계속 써보겠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학원가의 기준점 0
대치동 학원가는 보통 은마아파트에서 한티역까지 대략 1.5km 구간을 대치동...
-
1학년부터 학점이 1후반에서 2 초반 나올거같은데 2학년때부터 열심히 하면 되겠죠??
-
너무 힘드네요.. 3점짜리도 잘 못푸는데
-
사회(기업)는 아직 네가 어떤 능력을 가진 상태인지 모른다. 2
그렇기에 아직 못 믿겠으니 능력을 발휘하여 성과를 보여준 후 권리를 요구하라는...
-
미적분 n제 0
미적분 그래프연습하는엔제랑 강의 추천해주세요
-
벼락치기를 하지
-
3평 국수 백분위 99 4덮 국어 역대급 설사 84 기하 88 물리 48 지2...
-
눈치게임 실패한건가 혼자 제적당한 한 명은 어쩌냐
-
미적이랑 대우 똑같고 난이도 양 적인 측면에서 훨씬 떨어지는데 기하쎈이 확통쌘보다 얇음
-
예를 들어서 도형 문제면 일단 처음에 이 길이랑 이 길이 구하고 그다음에 이 각...
-
어지럽네.. 배고플때 자서 그런가
-
김준t 커리 타시는분들 모고, 엔제도 가시나요??? 0
퀄 어떤가요???
-
식을 너무 번거롭게 써서 고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 너무 저능함으으ㅡ으으 으아ㅏ
-
아니 나 뭐함? 3
4덮 국어 2개틀려서 94인데 독서론 3번 틀림
-
수능 영어 보카 1
수능 영어 고정만점 만들기 위해서 이 단어장만 다 외우면 어휘는 문제 없다 하는 어휘책 있을까요?
-
이미 입영통지서 나옴 ㅋㅋ 어차피 될 가능성 없으니까 그냥 빨리갔다오는게 답임
-
해설지를 의인화한거같네 로봇인가
-
생윤 윤사 재밌다고 철학과 오는 것이 맞는가 - 눈덩이의 중간고사 준비 서양근대철학 데카르트편 0
*이 글은 필자의 뇌피셜과 드립이 난무하는 글입니다. 설명을 위해서라면 교육 과정의...
-
수학은 상식으로 쌉가능 지구는 ㄱㄴ?
-
23수능 미적 2 나온 군수생인데 이번 3모 수학 15 21 22 26 27 28...
-
GG 3
반차씀 ㅎㅎ 도저히 못버티겠어
-
설자전이랑 삐까치는가
-
있을까요? 영어를 하루에 2시간씩 때려박는데도 안 올라서 일단 영어 2 고정 두고...
-
케이스 분류 개어렵네요 이거 사람이 풀 수 있는게 맞나요?
-
오늘 제 생일 4
은 아니고 여동생 생일입니다!
-
6모는 신청해놨는데 풀모고 한번도 안보고 6모보긴 좀 그렇단말이지
-
이해원 꼴받는점 1
좀 빨리 풀어서 기분좋다싶으면 코멘트에 “easy" 박혀있음 ㅋㅋ
-
젠장 또 김승리야.이 영상만 보고 공부하려고 했는데, 또 김승리를 보고 말았어....
-
무한도전급임
-
아 감기 걸렸네 5
ㅋㅋ
-
볼드 처리된 단어의 옳은 뜻을 고르시오. (댓글에 정답) "A specter is...
-
갑자기 존나 물기있는 이대녀 된것 같은데 우짜노;
-
츄하이 까야지 0
나를 말리지마~ 원래 화요일은 강제로 오프데이나 마찬가지란 말씀. 암암
-
콘서트 가고싶다 2
7월 25일에 콘서트 하는데 갈까요 말까요 ㄹㅇ 가고싶은데.. 하루 안한다고...
-
인종차별이야
-
발에 물 다 튀었네
-
현역 때 지구 사문 하고 재수 때 9모 전에 사탐런 했는데 삼반수 논술 최저 맞춰야...
-
오랜만이에요 5
신체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많이 힘드네요 결국 잘 될거라 믿어요
-
나트륨 크래프랑 칼륨 크래프랑 교차하는 부분까진 막전위가 증가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
카페에서 7
커어어어어어어 하면서 잔것 같은데 어쩌지..음료 시켜놓은거 다녹앗네 이제 돌어가야하는데
-
솔플하기에 ㄱㅊ? 분위기 안좋다는 얘기 있는데 혼자 다니면 신경쓸 정도는 아님?...
-
한우 듬뿍 국밥 13
맛있어요우
-
24시간의전사 9
화하하하하학 렛츠고
-
다 까먹음 걍 해설보고 발상정리하다보니까 원래 실전개념 뭐 배웠는지도 모르겠음
-
지방 일반곤데 애들 김범준 왜이리 좋아하냐? (무슨 비하의 의도 그런게 아니라 그냥...
-
놀아줘 6
-
그래
-
근데 그거 먹으면 당이 많아서 그런지 오히려 졸림.. 그래서 노랑으로 갈아탔음
-
생윤 동사 같이 듣는애한테 멘티 제안했다가 개까임 ㅋㅋ 3
두구보자 ㅡㅡ 성적 어떻게 나오는지
7년전 ㄷㄷ
시간 빨리 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