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다가 [1240071] · MS 2023 · 쪽지

2023-07-28 13: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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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학벌 사회에 대한 교육자로서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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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초엘리트의 산실인 ENA를 폐교했습니다. 자신도 ENA 출신임에도 말입니다. 프랑스 안에서 그들의 위상은 대단했으며 그 이너써클 안에 들면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부작용이 많았던 것입니다. 프랑스 지도자의 엘리트주의 타파의 신호탄인 셈입니다. 


성장기 기본 교육 과정의 성과를 측정하여 대학을 들어갑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다르게 유독 그 시간에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한국인에게는 인생이 걸린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진맥진한 상태로 대학에 들어가면 이제 놀아보자 하며 공부 안하도 노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저 대학 다닐 때를 되돌아보면 사교육 받지 않고 독하게 공부한 학생들이 대학 와서도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학습할 줄 알고, 그것에 재미를 느끼는 학생들인 것입니다. 떠 먹여주는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았기에 자기 주도적인 학습이 가능한 것입니다. 자기 주도적인 학습은 중등교육에서 함양해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기도 합니다. 


SKY 출신 제 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초중고에서 모든 것을 배우지 않나?'... '법조인, 의사, 교수와 같은 전문직 아니면 대학이 최종 관문 아닌가?'... 회사와 교직 모두 경험해 본 저에게는 어처구니없는 말입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의 중등교육은 기본 소양을 익히는 기초적인 과정이며 실패도 용인되어야 할 시간입니다. 대학은 전공 분야의 지식을 배우는 과정이고, 대학원은 전공을 심화하여 학문적으로 깊이 있게 전공을 다루는 과정입니다.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고급 인재 양성을 위해 고등교육이 더 중요합니다.


바야흐로 평생 교육의 시대입니다. 초중고에서 기초 학습 능력을 익히고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 이후에는 전문적인 교육이 이어집니다. 그럼 배우고 간판 따는 것이 전부 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교육의 목적은 사회에 필요한 무언가를 창출하기 위함입니다. 사회 생활에 있어 다양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스스로 목표와 계획을 설정하고 추진하고 창조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합니다. 사회에 무언가 가치있는 것을 만들지 못하고 배우기만 하고 학위만 받는다면 그것은 명백한 자원 소모적인 지적 자위행위입니다. 


드라마 'SKY 캐슬'에서와 같이 우리 사회는 현재 SKY 캐슬로 대변되는 상위 대학을 가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청소년기에는 공부 이외에 배양해야 할 덕목이 많습니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입시 제도는 실패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좋은 대학의 간판은 이제 필요없다던 한 입시학원 강사가 '서연고 중경외시 건동홍'이라는 서열시를 만드는 이율 배반적인 행위를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한국의 대학 서열은 더욱 수직적 계급으로 고착화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SKY 캐슬 학벌 계급 체계' 혹은 '수직적 학벌 계급 체계'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이 체계에서는 기본 소양 측정하는 대학 입시가 인생을 결정짓는 한번의 시험이 됩니다. 학벌이 전부라고 하는 사람들, 중등교육에 모든 것이 있다는 자들은 대학 입시가 가장 변별력 있으므로 그것을 평생의 계급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 폐해는 열심히 일한자가 일한 만큼 결실을 누리지 못하는 불공정 사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과연 대학 간판이 전부일까요? 상위권 대학 나온 이들은 남은 인생 동안 늘 우월한 능력을 발휘할까요? 그럼 이전의 사법 고시 체제에서 최상위 대학이 사법 고시 합격을 휩쓸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주변에 일어난 불공정 사례 몇 가지만 제시해 보겠습니다.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미국 대학원에서 수학했던 저는 처음에 깔봤던 그저 그런 대학 출신 학생들이 상위 대학 학생들을 압도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일단 같은 대학원에 들어왔으면 지도교수는 그들의 학부는 관심도 없습니다. 얼마나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고 수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느냐가 중요합니다. 미국 대학원의 박사과정 중에 반 정도가 탈락을 합니다. 한국의 나쁜 대학 출신들이 주로 탈락할까요?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그런 대학 출신들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 믿고 사력을 다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제가 있던 대학원에서 낙제하여 다른 대학으로 옮긴 Y대 출신이 있었습니다. 그 학과에 중위권 대학 출신도 있었는데 매우 영민한 후배였고 그는 우수한 성과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와서 그들의 운명은 역전했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에 지원했는데 Y대 출신이 임용되었습니다. 중위권 대학 후배와 술 한잔 하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당 학과는 Y대 출신과 그 후배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결국 지금 회사에 있습니다.


제가 아는 동생은 오래전 S대 사범대 대학원에 지원했습니다. 두 명만 최종 면접에 올라갔습니다. 시험 성적에서 그는 경쟁자인 자대 학부 출신을 압도했습니다. 하지만 자대 출신이 뽑혔습니다. 심사위원은 면접 때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면 난리 날 일이지만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일입니다. 결국 그는 교사의 꿈을 접었고 지금 LH 공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현재 사범대가 몰락하고 교권이 추락하는 것을 보면 어찌 보면 잘 된 셈입니다. 


인맥도 실력입니다. 하지만 과도한 이너써클이 공정한 경쟁과 인사 시스템을 압도하여 사회를 왜곡시킨다면, 그것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비일비재합니다. 사실 예전에는 더 심했습니다. 


가정에서는 어떤가요? 자녀를 학력으로 차별하는 부모님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제 주변에는 S대 출신 동생을 둔 어떤 분께서 부모님이 동생만 챙겨서 열받아서 이민 갔습니다. 제가 아는 586 교수님의 형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전형적인 586 교수님을 봬면 형이 왜 열받아 이민 갔을지 눈에 훤히 보입니다. 그는 공부 안 하고 지도교수에게 아부 잘하고 한국에서 눈치 보고 줄 잘 서서 교수된, 정치성으로 똘똘 뭉친 남을 잘 이용하는 분입니다. 연구 성과는 많으나 정말 실력 없습니다. 


상위권 대학 출신이 하위권 대학 출신과 비슷하거나 후자가 전자를 늘 역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상위권 대학에는 성실하고 똑똑한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상위권 대학 출신 학생들 일수록 평균적으로 우수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 개인이 나온 대학의 이름이 인생을 결정짓는 계급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선진국을 보면 학부에 대한 맹신이나 집착이 한국만큼 유별난 나라는 없습니다. 이것이 정상일까요?


'SKY 캐슬 학벌 계급 체계'는 당연하고 앞으로 영원할 것이라는 분들은 아마도 그것을 통해 유익을 얻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의식 있는 교육계 및 정치 인사들은 서열을 완화하고 다양한 대학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벌 계급은 이제 사회 곳곳에서 균열이 가고 있지만 여전히 완강한 곳도 많습니다. 저도 어찌 보면 수혜를 받은 입장이지만, 제 자녀에게는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은 풍토입니다. 제 자녀가 SKY 나왔다고 떵떵 거리는 것도 싫고, SKY 안 나와서 평생 주눅 드는 것도 싫습니다. 


한국은 자원이 없어 머리로 먹고사는 나라입니다. 교육 시스템을 고도화하여 돈 많은 해외 유학생을 유치해야 할 나라입니다. 그런데 자녀는 교육은 해외기관에 많이 의존합니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 못 보내면 집안 재산을 털어 유학 보냅니다. 세상에 이런 낭비가 어디 있을까요? 


결론입니다.


예전과 달리 현재 한국의 초중고 학력은 꽤 상향 평준화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기상천외한 문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변별력을 위해서 쓸데없는 문제 풀이에 인생을 겁니다. 사실 성장기에는 그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은데, 학생들은 그 소모적인 경쟁에서 이겨 상아탑의 꼭대기에 가기 위해 많은 스트레스 겪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너무 많은 자원과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습니다. '인생이 걸린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캐슬과 하나의 정상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좋은 대학입니다. 대학 평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열을 완화하고 여러 다양한 좋은 대학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생태학적 측면에서도 이것이 훨씬 건강합니다. 


대학 입학이 절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초중고 교육은 지식의 극히 일부입니다. 그 시기는 기초학습능력과 인간의 기본적인 요소를 배양하는 시간입니다. 대학과 사회에서도 계속해서 배우고 경쟁을 통해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배운 것은 반드시 사회에서의 가치 창출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것이 교육의 목적임을 반드시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바는 교육계에서는 매우 원론적이고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교육 정책도 이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고요. 그런데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SKY 주도 사회 변화에 관한 어떤 글을 리멤버에서 읽다가 하도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그냥 그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두서없이 올렸습니다. 아직도 'SKY 캐슬 학벌 계급 체계'에 대한 망령을 가진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들은 학부 학력으로 인생이 결정되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자신보다 나쁜 학교 나온 이들에게 익명성 뒤에 숨어 거의 쌍욕에 버금가는 언어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러려고 좋은 대학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나 싶습니다. 


제 글의 댓글을 보면 원문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댓글만 보고 저를 비방하고 공격하신 분들도 꽤 많습니다. 제가 일일이 답글 달고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바쁜 시간 틈 내어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이들은 교수가 시간이 많네 어쩌네 비꼬십니다. 어떤 분들은 구체적인 수치를 요구하고 실행을 위한 정책 방안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핸드폰으로 끄적인 글에 국회 청문회에서 정부 보고에나 요구하는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저로서는 넌센스입니다. 합리적으로 대응하면 교수의 권위주의 꼰대 의식이라고 합니다. 저도 실수한 부분이 있으니 그러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좀 지나치십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온라인 활동 거의 안 하는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익명이라고 함부로 말씀하시는 문화가 근절되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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