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테스 [464284] · MS 2013 (수정됨) · 쪽지

2023-07-08 08: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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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디데이 100여일이 다가오는데 왜 나는 조금 더 치열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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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는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도 치명적이며, 사악의 온상이며, 온갖 재난의 근원이며, 7가지 대죄의 하나이며, 악마가 휴식하는 방석이며, 베개이며, 악마와 한패이다. 게으른 개의 털을 불결하고 피부병투성이가 된다. 나태벽이 있는 인간이 이와 같은 상태를 피할 수가 있을까?

_탐험가 버튼




왜 조금 더 치열할 수 없는가. 왜 치열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것은 수능 130여일을 앞둔 수험생의 심정으로 쓴 글이다. 왜 나는 보다 더 내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혹시 나태로 얼룩진 일상을 보내고 있지는 않았나. 태만으로 범벅인 하루를 살면서 내일부터 잘하면 되겠지라는 비겁한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지는 않았나.


오늘도 공부 외의 시간을 얼마나 허비를 했던가. 스스로 다짐을 했던 그 초심을 내팽기고 수동적으로 오늘 하루을, 나의 소중한 시간을 얼마나 낭비했는가. 


제대로 된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혹시 구경꾼으로 살지를 않았던가?

남의 것에 기웃거리고, 남의 것을 들여다보며 왜 구경꾼으로 나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가. 왜 나의 것을 쫓지 않는가. 왜 내가 추구하는 바를 향해 돌진하지 않는가.


본인 스스로 그러지 말자고 타이르면서도 왜 또다시 그렇게 자기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는가. 이번 한번 뿐이다? 이번 한번은 또 다른 한번으로 이어지고, 수없이 많은 반복으로 재반복될 것이다. 남아있는 기간을 생각해보면 절체절명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가. 나의 모든 것, 나의 미래를 어쭙잖은 대상으로 의해 훼손하고 나의 가능성을 별볼일 없는 것에 잠식당하고 싶은가.


왜 치열하지 못한 채 본인이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결심을 더럽히고 스스로를 방기하는가. 무엇 때문에 의미 없는 그 무엇에 탐닉하고, 그 무의미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가. 그 대상이 내 꿈보다, 내가 품은 희망보다, 내가 간직한 비전보다 더 월등한 존재인가. 


정녕 나 자신을 제어하기 힘든 것인가? 나를 이대로 놔둘 것인가? 변모하고, 더 강인한 존재로 이끌어나갈 생각을 못하는가? 내 의지가 고작 이 정도라고 한탄하고 비관만 할 생각인가? 더 절실해야 한다. 변하고 싶으면 더 절박하고 간절해야 한다. 꿈을 제외한 내 모든 것을 내던질 각오를 하고 다시 도전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한다.


왜 미망의 연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살아있다는 확신은 자기 스스로가 하고자 하는 일에 주체적으로 덤벼들어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내가 공부를 선택했다면 나는 마땅히 공부에 온몸을 던져야 한다. 공부의 주인이 될 수 있는데 왜 나는 노예마냥 공부를 두려워하고 그를 회피하는가. 공부에 끌려가지 말고 공부를 주도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해봤는가. 


일상의 지배자가 되자. 나를 평상시보다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은 내가 품고 있는 꿈과 내가 소망하는 대상으로부터 뿜어져 나온다. 간절하게 갈망하고, 그 갈망으로부터 힘을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내 나약함에 의존하지 말고, 나보다 더 큰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목적의식에 의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정녕 하루를 의미있게 보내고 있는가. 잘 보낸 하루라고 실감하는가. 잘하고 있다고 보람감을 느끼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당당하게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지금부터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봐라. 


왜! 본인의 성장에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으면서, 무가치한 한순간의 쾌락을 얻지 못해 안달하고 있는가. 그동안 자기 자신에게 했던 숱한 다짐을 어디로 가고, 쓸데없는 곳에 나 자신을 갖다 바치고 있는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가. 나는 지금 피눈물을 흘리면서 반성을 하고 있어야 한다. 추후에 나의 과거를 후회할 심산이 아니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어서 구경꾼의 모습에서 탈출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중에 변하겠다? 나중은 없다. 내일부터 하겠다? 내일은 없다. 내일 따위는 없고 언제나 오늘의 연속이다. 행동은 언제나 오늘 이뤄져야 한다. 


왜 그리 유혹에 쉽사리 넘어가는가. 조금 더 깨어있을 수는 없던가. 나 자신을 관찰하고, 내 마음을 관조하면서 나를 조금 더 통제하고 절제하려고 노력을 해봤던가. 변할 수 있다. 더욱 나아질 수 있다. 나의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관찰해봐라. 훌륭하다고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라. 힘들다고? 시험이 끝나는 날까지 그 며칠만이라도 견뎌봐라. 그 보상은 내가 원하는 점수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커다란 만족감과 나에 대한 맹목적인 자기신뢰가 샘솟듯 생길 것이다. 그렇게 얻은 근자감은 살면서 내 존재의 밑바탕이 될 것이다. 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느릿느릿 걸어가는가. 제대로 한번 날아보자. 


내가 보내는 이 하루가 정말 내가 살고자 했던 하루였던가? 몇 번 더 나의 하루를 죽여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더 모질 필요가 있다. 더 독해질 필요가 있다. 치열함으로 더 무장할 수 있다. 내 안에 숨겨져 있는 힘을 왜 더 꺼내 쓰지 않는가.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나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일순간의 쾌락이 아니다. 한순간의 웃음과 잠시 이 고통을 잊게 하는 자기도피적인 행위들이 나에게 본질적으로 무엇을 가져다 주는가.


목숨을 제대로 걸어본 적이 있던가. 제대로 내 몸을 던져본 적이 있던가. 창조적 파괴를 실행해본 적이 있는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더이상 아낄 필요가 없다.


오늘도 나는 나 자신을 아껴썼다. 나는 나의 힘을 쓰지 않았다. 나의 힘은 그대로지만 나는 역으로 녹슬어가고 있다. 차라리 닳을망정 녹슬지 말아야 한다. 쓰지 않으면 비축되는 게 아니라 녹슬어 가고 낡게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차라리 지나치게 써버려 닳는 삶을 살아라. 부식되는 삶은 결국 자기 삶을 질식사시킨다는 사실을 못 깨달았는가. 차라리 마모되는 삶을 선택하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런 말을 남겼다.

“쇠는 쓰지 않으면 녹이 슨다. 물은 고여 있으면 순수함을 잃고, 차가운 날씨에 꽁꽁 얼어붙는다. 마치 게으름이 정신적인 활력을 소멸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녹이 쇠를 부슬부슬하게 만드는 것처럼 태만은 우리 개인을 좀먹는 법이다. 행운을 제외하고 게으른 자가 승리를 거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공한 자의 여유는 그들이 승리를 거두고 나서 부리는 보상이자 사치인 것이다. 

개인의 나태를 극복할 정도의 강력한 동기를 가져라.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나의 존재를 드높여주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직 내 안에 존재할 뿐이다. 그 힘을 발휘시키는 것은 바로 절제란 말이다. 본인의 의지를 얕보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죽을 듯이 살아라. 죽을 각오로 살아라. 


단지 무난하게, 평범하게 보내면 130일의 시간은 결단코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맹세했듯이 죽을 듯이 살고, 미친듯이 공부를 한다면 그 시간은 역전신화를 쌓아올리고, 나만의 기적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제는 방황하지 말고, 집중을 분산하지 말고, 의지를 낭비하지 말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투구를 하자. 괜한 변명과 자기합리화에 넘어가지 말라는 말이다. 이정도면 충분하다? 그 말은 내가 전과목 만점을 찍어야 당당히 외칠 수 있는 발언이다. 더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한계 끝까지 가보지도 않고 스스로를 낮춰 보는 고정관념적인 말에 불과하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낭비할 시간에 왜 공부를 조금 더 하려고 하지 않은가? 공부에 대한 보상이자 휴식이라고? 그 보상은 시험이 끝나고 누리면 그만이다. 휴식은 잠을 잘 때면 충분하다. 정 힘들어서 휴식을 취한다면 인터넷이 아니라 낮잠을 조금 더 자든가, 산책을 하든가, 주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건전한 대상으로 하면 되지 않는가. 휴식을 왜 자극적이거나 소모적인 대상을 통해 채우려고 하는가. 관성대로, 무의식적으로 반사적인 행동을 해왔던 게 아닌가.


더이상의 자기합리화와 비겁한 변명과 타협하지 말자. 130일이면 나만의 신화창조가 가능한 시간이다. 단 보상을 얻기 위해 내가 내놔야 할 것이다. 반문해봐라. 그게 무엇인지는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무엇을 투자하고,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 자기 자신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몸을 던져봐라.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내동댕이친 적이 있는 사람은 위대한 신뢰를 느낀다. 자신을 운명의 손에 내맡긴 사람은  불안으로부터 해방된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 내 온몸을 던져볼 자신이 있는가.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오늘의 고통 뒤에는 웃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그 고통 또한 실은 희열이라는 사실 조차 왜 알지 못하는가. 치열하게 살아라. 그게 남은 기간에 나 자신을 탁월하게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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