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5 [911567]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3-07-05 15:52:29
조회수 3,300

98년생 고졸입니다. 조언 부탁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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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대 초반을 통째로 방황하고 의지가 꺾이며 살아오다가 얽매임으로부터 비로소 벗어난 98년생입니다. 이야기를 꺼내기도 부끄럽지만 아직도 저는 제 알을 깨지 못하고 갇혀 있는 듯하여 도움을 요청해봅니다.


어린 시절 ADHD진단을 받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4년간 복용하다가 중학교 올라오며 복용을 중단했습니다. 고2정도까지는 스스로 ADHD임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성격이 개선되었었거든요. 적어도 저와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현역때 일반 인문계 이과 내신 3.1에 수능은 성적표를 가지고 있진 않으나 수학4등급 수준이었습니다. 영어는 1등급이었고(상대평가 시절) 국어 2등급 탐구는 물1생1 3등급이었네요.

고1때까지는 내신에만 몰두했죠. 학생시절 외부로부터 정보를 얻고 발품을 팔며 공부에 매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여 고2때부터는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2학년 때 동네 수학학원 다닐 돈 정도밖에 없어 정시준비를 사실상 놓았죠. 그렇게 고3이 되니 내신도 망가지고 정시도 답이 없어 자연스럽게 재수의 길로 빠졌어요.


제 모교는 서울에 있었지만 학생 많고 체육으로 진로 잡아주는 전형적인 일반계 사립고등학교였습니다. 인구가 많으니 내신 따려고 자사고에서 전학 많이들 왔죠. 공부는 결국 환경과 면학분위기가 결정한다고 하던가요. 사실상 저도 생각없이 고등학교 생활을 해서 생각없는 결과를 맞았습니다.


그렇게 재수는 하는데 돈이 없죠. 저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이후로 할 수 있는 것이 알바밖에 없더군요.

겨울에 돈을 모아요. 알바만으로는 재종이란 선택지를 고를 수가 없어 인강 프리패스를 구입하니 4월이 끝나가더군요. 올해도 망했다. 그나마 본인 의지로 처음 공부를 선택한건데 벌써부터 의지가 꺾이더군요. 스스로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삼수를 했는데 실모성적은 오릅니다. 오르긴 올라요. 문제는 스스로가 고갈된다는 겁니다. 대충 이때쯤부터 성인ADHD증상이 나타남을 스스로 느낀 것 같아요. 21살이 되니 주변 친구들은 대학에 가던가 일을 하고, 친햇던 사람들도 연락이 조금씩 끊겨 이제는 정말 인생친구들만 몇 명 남았네요. 키가 169고 내세울 외모도 없어 활발했던 학생 때에도 어느 정도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그나마의 장점인 대화능력마저도 대화상대가 없어지니 인격? 이 붕괴됨을 스스로 느꼈네요. 자아분열 이런거 말고 주변인이 '나'라는 존재를 점점 잊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엄청 외로웠어요. 10년전 어릴 때 풀배터리 검사를 받으며 제 행동에 대해 기록한 병원기록지가 정신과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더군요. 거기에 적힌 ADHD 진단, 학습장애 가능성 있음, 불안장애 위험군.. 스스로를 가두니 사람이 밀칠 것 같더군요. 결국 삼수 후 그 결과에 맞춰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알바를 뛰었습니다. 수도권 중하위 대학을 삼수해서 가자니 학비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고, 저는 제 앞에 놓인 문제를 회피했던 것 같습니다.


1년 알바를 뛰고 공군에 입대하였으며, 개인시간이 많이 나오는 바 적어도 국어/영어 독서랑 단어암기는 꾸준히 해서 뇌를 완전히 굳게 만들진 않았습니다. 다만 직접적인 수능공부를 하지는 않았고요. 수학 개념서를 끝내고 기출을 돌리려 하니 이미 병장이었습니다.. 과탐은 2년이라는 공백이 생겼는데 군대에서 수능을 준비하는 것은 적어도 개념공부에 투자할 여유까진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전역하니 22년 6월이었네요. 적금 800만원을 모으고 나와 부모님께 400을 드리고, 남은 돈 400으로 제일 먼저 한 일은 제 소유의 컴퓨터를 장만한 것이었네요. 이건 제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였어요.

두 번째로 한 일은 정신과에 다시 가서 ADHD검사를 받은 것이었고, 성인 ADHD진단을 받았습니다. 약을 먹으면서 치료하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저는 또다시 회피하였습니다. '스스로 극복해 보겠다' 하며 병원을 나왔으나 22년에 공부한 시간은 사실상 0이었어요. 스스로 무섭더군요. '25살에 수능 시작? 전문직이 아니면 의미가 있나...'라는 불안감과 다시 이 지옥같은 수험생활을 해야 한다는 공포감이, '그래도 졸업을 해야 30대에 생존할 수 있잖아!'라는 마음 속 정론을 뒤집어버리고 저는 공부를 놓았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알바를 해서 천만원을 모았어요. 편의점 알바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노가다를 뛰어서라도 더 돈을 벌어냈어야 했습니다. 스스로 고졸 상태이다 보니 천만원이란 돈조차  적다고 느껴지더군요. 인생에서 번 돈 중 가장 많은 액수을 쥐었는데...


알바를 그만둔 5월 이후,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얽매임 없는 시간을 보냈네요. 좋게 말하면 온갖 불안한 감정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음으로써 상태가 호전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가장 중요한 시간을 낭비한 겁니다. 벌어놓은 것으로 배달음식을 먹고 게임이나 하고 영화를 보고 아무튼 생각나는게 있으면 다 해봤어요. 마음이 공허함을 느낄 때까지요.  배달음식이 질리고 게임이 질리니 내 현재 상태가 보이더군요. 몸무게는 98 내 출생년도만큼 찍어버렸고 뭐 외모관리라도 한 번 했겠습니까... 타인이 보는 나를 상상해보자니 범죄만 안 했을 뿐 이런 잉여인간도 없을 겁니다.


병원에서 약(콘X타)를 먹기로 결정했습니다. 실제로 호전이 되는 것일지 플라시보 효과를 믿고 부딪혀보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제는 스스로 방향만 결정하면 내 전부를 바쳐서라도 20대의 열정을 바칠수 있다 느낍니다. 


오르비에 계신 분들 중 상위권 대학 재학생, 졸업생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26살.. 많이 늦은 나이이고 정상적인 취업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 정도는 저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마지막 갈등이지만, 그래도 대학 졸업장은 따는 것이 청춘의 방황에 대해 끝맺음을 할 유일할 방법이라 생각하여 수능준비를 해볼까 합니다. 현실적인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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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귀해버렸으니 다시 수험합니다 · 1141710 · 23/07/05 16:00 · MS 2022

    목표가 대학에가서 정상적인(평범한) 곳에 취직을해서 살고싶다 라는것이라면 딱히 어려워 보이진 않습니다. 아마 이런글을 올리신다는건 “아직 늦지않았다” 라는 말을 듣고싶으신것 같은데 남성 첫취업이 30대 초반이라면 늦은편은 아닙니다. 다만 그렇다고 빠른편도 아니죠. 글쓴이님 진도를 봤을때 제가 가장 추천드리는것은 문과로 남은기간 국어는 적어도 3등급, 수학 적어도 4등급, 영어 탐구 1등급을 목표로 해서 부산대나 경북대같은 지거국에 가시는것을 추천드립니다. 이것이 정답이라고는 할수 없겠지만 위대학들은 입학난이도가 크게 어렵지 않고 본인 역량에따라 대기업에 가기에 크게 불리하지도 않은 대학입니다.

  • Accelerator · 996585 · 23/07/05 16:03 · MS 2020

    저도 이분 말씀에 동의합니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시는것 같아서 응원합니다 형님

  • 엑스트라5 · 911567 · 23/07/05 16:05 · MS 2019

    응원 감사합니다. 저도 앞날에 행복 가득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ㅎㅎ

  • 회귀해버렸으니 다시 수험합니다 · 1141710 · 23/07/05 16:03 · MS 2022 (수정됨)

    또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전문직이니 대기업이니 요즘 메타가 되어버린 것들에 속지마시고 단순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중소기업을가든 대기업을 가든 그냥 열심히 보람느끼면서 살고 가족들이랑 단란하게 사는 삶이 행복하지 않을까요? 열정이니 뭐니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일단 앉아서 인강부터 들으시고 결과를 보고 어느대학이든 가서 생각하십쇼. 다들 어떻게든 살아갑니다

  • 엑스트라5 · 911567 · 23/07/05 16:07 · MS 2019

    제가 수능 응시 자체를 고민했던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었어요. 4년동안의 학비+a에 해당하는 비용이 내 생존을 보장할 수 있을까? 라는 답없는 고민을 계속했었어요.. 마지막 줄에는 진심으로 동의합니다. 공부에 몰두하겠습니다.

  • 회귀해버렸으니 다시 수험합니다 · 1141710 · 23/07/05 16:10 · MS 2022

    부산대,경북대를 비롯한 지거국들은 등록금이 150만원 안밖으로 상당이 싼편입니다. 이마저도 각종 장학금 혜택으로 거의 공짜로 다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죠. 제가 추천드리는것은 모아둔돈은 내년을 위해 아껴두시고 올해는 일단 메가패스부터 끊는걸 추천드립니다. 아니면 내신이 3점대라고 하셨으니 부산/경북대 위주로 수시 알아보시는것도 방법입니다. 전남대 경우는 3점대면 공대 대부분 갈수있었던걸로 압니다.

  • 엑스트라5 · 911567 · 23/07/05 16:04 · MS 2019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과 전향이군요... 그동안 전과를 생각해본 적은 없어 고려하지 않았으나 지방 국립대에 입학하여 노력해보는 것도 생각해보겠습니다.

  • 푸른 하늘과 이상 · 1187425 · 23/07/05 16:03 · MS 2022

    닉네임부터 바꿔주세요 무슨 엑스트라에요 분명 주인공일겁니다

  • 비상식량 · 1158171 · 23/07/05 16:10 · MS 2022

    화이팅
  • 엑스트라5 · 911567 · 23/07/05 16:10 · MS 2019

    내 인생의 주인공임을 스스로가 인정할때까지 노력해보겠습니다!

  • 흩날리는꽃 · 1220946 · 23/07/15 11:44 · MS 2023

    30초반도 공대면 대기업가긴 합니다 20후반입학해도 공대면 길은 있어요 문과는 잘 모르겠네요..

  • 수면에 지는 꽃 · 918085 · 23/07/22 19:26 · MS 2019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랑 동갑이시네요. 저는 대학을 현역으로 입학해서 다니다가 군대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다니던 대학은 제 길이 아닌 거 같아 전역 후 다시 수능공부를 시작해서 2트만에 교대 붙었는데요, 아무래도 26살이시면 또래들은 이제 4학년이고 취준할 나이기도 하니.. 걱정이 많으실 거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전문직, 예를 들면 메디컬 계열이나 교대, 간호대 정도가 안정적이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아니면 공시 준비를 하실수도 있죠. 제가 교대를 다녀보니 나이 많은사람이 의외로 정말 많습니다. 이번에 입학한 동기들 중 저랑 같은 26살인 친구들도 20명 넘게 있고, 30대 형님들도 제가 본 분들만 5분이 넘습니다. 교대는 입학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장점도 있죠. 절대 늦은 나이 아니고 충분히 대학 다니고 취업 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교대나 간호대는 뜻이 없다면 적응이 쉽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 경우엔 공무원 중 소방 추천드립니다. 제가 의무소방이라고 군대를 소방으로 다녀왔는데, 현직 직원분들을 바로 옆에서 보며 같이 일하고(의무소방은 현장일은 모두 똑같이 합니다)친해져서 들어본 바로는 대외적 인식과 다르게 일이 그렇게 고되지 않고, 야간근무를 하기에 수당이 커 급여도 공무원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 합니다. 소방도 정말 괜찮은 직업이니 전문직 자격증을 주는 대학, 혹은 소방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