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구닌이 [961028] · MS 2020 · 쪽지

2023-05-19 19: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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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로 연대들어가서 CFA 공부하다가 현타와서 쓰는 푸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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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수할때 여기 몇번 들어오다가 연대 붙고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 어쩌다 여길 또 오게 되었네요. 저는 이전에 명지대를 다니다가 군대에서 다시 수능을 준비하여 21년 수능에서 연세대에 합격하였습니다. 남들이 쉬고 놀때 묵묵히 공부하며 들어온 그토록 바라던 대학이었지만, 대학 이후의 세상은 참 바라는대로 흘러가지 않더라고요. 새로운 대학에 왔고, 원래 목표는 사라졌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점점 현실과 타협해가는 스스로를 보았습니다. 학점은 생각처럼 나오지 않아서 그토록 바라던 복수전공은 포기해버렸고, 인간관계는 차라리 전적대가 나았다 싶을 정도로 모든게 차갑고 계산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래도 나름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공부하는건 자신있었기에 어떻게든 취업시장에서 살아남고, 제가 바라는 삶을 살고자 CFA라는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공부가 예전처럼 쉽지가 않네요. 군수를 하던 시절에는 대학만 가면 잘 되겠지라는 막연한 희망만을 품고 하루하루를 버텨왔지만, 지금은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모든게 불확실하고 막연하게만 느껴졌고, 오늘 유달리 그런 기분이 강하게 드는 것 같습니다.


 대학에와서 어쩌다보니 만들어버린 얇고 넓은 관계는 공부를 시작한지 몇달도 채 안되어 대부분 끊겨버렸고 평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 탓인지 고작 하루에 4시간을 공부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쉽게 지쳐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에서는 쉬면서 하라고들 하지만 쉴 상황도, 쉴 시간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달래며 나아가려고 하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감정을 여러번 겪어온 터라 스스로 잘 버틸 수 있을거라 오만하게 생각하였지만 결국 이런 외로움과 답답함이라는 감정은 몇번을 경험하든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내가 이 공부를 하고 있고, 과연 이 공부가 이런 외로움을 감내해야할 정도로 가치가 있을까? 이렇게 괴로워하면서까지 공부를 해야할까?라는 생각이 간간히 들지만 잠깐일뿐, 다시 마저 인강 듣고 복습하고 문제 풀어야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그렇게 억누른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가끔 이렇게 외로워지는 순간에 펑 터져버리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나만 남겨진 것 같은 기분, 앞으로 나아갈 수도 도망칠 수도 없을 것 같다는 기분, 그런 기분들이 몇시간이고 머릿속을 지배하다가 나도 모르게 사라집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괴로움도 결국엔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괴로움은 갑작스레 사라지기 마련이고, 이런 순간이 닥칠때마다 스스로를 잘 어르고 달래어 망가지지 않도록 붙잡아주고, 다시 기분이 괜찮아지면 해야할 공부를 하는게 수험생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이니, 고진감래이니 이런 상투적인 말들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힘든거에요 공부는. 고통스럽고, 짜증나고 매 순간마다 스스로를 시험에 빠뜨리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존재로 만들지만, 억지로 다시 일어서서 지친 몸과 마음을 가끔 달래주며 책상으로 돌아오는 그런게 공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그렇게 견뎌낸 시간들은 아마도... 확실히 그 값어치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군수를 준비해서 이곳에 온 저의 노력이 아무런 값어치가 없었다고 생각을 하지만, 다르게 본다면 이곳에 왔기 때문에 더 높은 목표를 가지게 되었고, 남들이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하던 시험이나 진로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지쳐서 쓰러질 것 같지만 포기하기보다는 다시 일어서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제가 이런 것들을 느끼고 인정하려 들지 않아서 문제지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불확실한 미래를 최대한 좋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로이킴의 노래가사마냥 결국 이 모든 시간들이 끝나고 나면 더 나은 내가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요. 그게 진짜일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생각하는게 이런 어두운 시간을 견뎌내는 건강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으레 말하는 "그런거 해봤자 소용없어"같은 패배주의보다야 이렇게 생각하는게 더 낫지 않겠어요? 그냥 이렇게 믿고 하루하루를 나아가고 또 가끔은 또 오늘밤처럼 무너져내려도 다시 일어나고 또 무너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며 버텨나가는게 수험생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마 오늘은 이렇게 서러움에 사무쳤어도 내일은 똑같이 7시에 일어나서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다시 책상에 앉아 인강을 계속 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무너졌더라도 내일은 일어날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걸 처음 쓰는 당시 감정이 너무 북받쳐올랐기에 문단 구분도 없고 두서도 없는, 연대생이 썼다고 하면 믿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글이지만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쓴거니까 그렇게 생각해주세요. 마지막 부분은 절망적으로 끝내면 아쉬울 것 같기도 하고, 또 괴로운 감정들을 글로서 어떻게든 토로하다보니 나름 기분이 풀린 것 같아서 희망적으로 적게 되었네요. 지금 식단이랑 운동을 함께 하고 있기에 맛난걸 많이 먹을 순 없지만, 대신 기분 조금 풀린 기념으로 자취방 앞의 편의점에 가서 닭꼬치라도 하나 사서 제로콜라랑 같이 먹어야겠습니다. 두서 없는 글 읽는다고 고생많으셨고 다들 좋은 밤 보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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