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랑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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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연
너는 인간이라는 말과 사랑이라는 말을 사랑한다 너는 차별이라는 단어를 케케묵은 양말만큼이나 싫어하고 미니멀리즘을 좋아한다 너는 도래하지 않은 평등이라는 말을 굳게 신뢰한다 설령 그것이 영영 오지 않더라도 너는 침착함을 유지하는 법을 안다 날을 세울 곳에 적확히 비판하는 법을 안다 유행하는 사상과 철학과 시와 소설 목록은 눈 감고도 읊을 수 있다 뒤떨어진 것을 적당히 무시하는 법도 안다 너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인권선언문을 외운다 외우다 보면 정말로 눈물이 나서 가끔 그런 네가 너무나 마음에 들고 밥을 먹는 것도 잊고 과제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밤이면 스스로가 달콤한 체리나무가 된 것만 같다 너는 아이돌 가수의 곡만큼 슈베르트 바흐 베르너 모차르트 거슈윈을 즐길 줄 아는 예민한 청력을 지녔고 연필과 붓을 더듬는 섬세한 손가락을 가졌다 너는 너보다 약한 것을 사랑한다 소수라는 단어는 네가 가장 아끼는 것이고, 폭력이라는 단어는 네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다 너는 만인을 사랑한다 하지만 한 인간에 대해서라면 세련되게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단칼에 잘라버릴 수 있다 가끔 비난할 수 있고 비난하다 보면 그 인간은 비난 받아 마땅한 인간인 것 같아 화가 난다 해쳐버리고 싶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자주 있지 않으므로 너는 꽤나 괜찮은 사람이다 너는 찻잔에 담긴 차처럼 여유롭게 식어가고 천천히 맛을 음미한다 탐하지 않고 먹는 법을 안다 유명세나 명예에 힙하게 거리 유지하는 법을 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너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 같다 언젠가 아무도 모르게 음지에서 자라나 세상을 놀래줄 유명 배우나 예술가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릴 수 있을 것도 같다 너는 도시의 쇼윈도를 지나며 인간 사랑 평화를 되뇌인다 창이 비친 네 얼굴을 보면 약간 서글프지만 인간 사랑 평화는 너의 얼굴이고 현현이고 미래이므로 이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 스칠 수 있다 너는 네가 사랑하지 않는 단어에 대해 안전하게 성찰한다 반성적이지 않은 인간은 후지니까 너는 네가 깡그리 무시해버린 반대자의 말을 한 번쯤은 생각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인간은 정말이지 멍청한 것에 불과해서 코웃음이 난다 너는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닌 것에 안심한다 너와 내가 애정하는 친구들이 그 정도로 빻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신호등 앞에서 정치 현황에 대한 날카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인간 사랑 평화가 그러하듯, 때때로 너 자신이 역에 버려진 일회용 커피 잔보다 못하게 느껴진다 그럴 때면 너는 네가 결코 사랑하지 않는 단어들에 대해 생각한다 구름이나 비가 아닌 시대착오적인 문구들과 법 조항에는 끼지도 못할, 도무지 왜 사람들이 목매는지 알 수 없는 시시한 것들에 대해 저게 시시한 걸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두뇌들에 대해 죄인 줄 모르고 눈치 없이 명랑해지고 시시때때로 순진해져서 상처 입은 눈망울을 하고 있는 불편한 것들에 대해 그러자 구체적인 얼굴과 이름 몇몇이 스쳐 지나가고 어쩌면 너도 네가 혐오하고 있는 단어와 점점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지만 아무리 봐도 르몽드를 구독하고 이 도시를 걸어가는 너는 반대편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저 인간들과 영 딴판인 것 같다 난 저들과 달라, 이 말이 왜 이렇게 외롭고 사랑스러운지 너는 때때로 비에 대해 말하지만 조금도 젖지 않은 채 모든 빗방울을 피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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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혹시 불교 직번역한거임?
파파고로 직역하면 이렇게 쓰일듯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