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삼환 [824224]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23-03-23 1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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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철학 전공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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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학기에는 같은 철학과 전공 수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전공 수업을 듣고 있다. 하나는  「심리철학」 이고, 다른 하나는  「대륙합리론」 이다. 두 강의 모두 교수님의 실력과 열정이 대단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수업 진행 방식은 매우 다르다.


 「대륙합리론」 수업에서는 요즘 데카르트의 『성찰』 강독이 이루어진다. 데카르트의 전반적인 주장을 소개해 주신 후, 교수님과 함께 『성찰』을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나간다. 내가 느끼기에 이때는 데카르트의 사고 세계에 푹 빠져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데카르트는 어떤 맥락에서 무슨 이유로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문장을 썼을까?’ ‘데카르트는 왜 이런 문장을 썼을까?’ ‘데카르트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공은 데카르트이다.


 「심리철학」 수업에서도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은 다루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주인공은 심신이원론이지, 데카르트가 아니다. 「심리철학」 수업에서는 데카르트적 심신이원론1)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에 대해 어떤 비판이 가능한지 등을 다룬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전반적인 주장과 그의 주장이 함축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데카르트가 쓴 『성찰』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고 그가 이런 표현을 쓴 의도가 무엇인지까지 고민하면서 그의 사고 세계에 빠져들 필요까지는 없다.


 어느 쪽이 ‘진짜’ 철학 공부인지 판단할 소양이 내게 있지는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어느 쪽이 더 내 취향에 맞는지 가리는 일뿐이다. 내 취향은 단연 「심리철학」 쪽을 향해 있다. 나는 어떤 주제에 대해 제기되는 다양한 논변의 의미를 분석하고 그 논변을 어떻게 반박하거나 방어할 수 있는지 배우는 게 너무 재밌다. 수업 자료로 주어지는 텍스트를 읽거나 수업을 들으며, 이쯤 하면 이제 논란을 종결할 수 있겠다 싶은 논변에 대해 나는 생각지도 못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때마다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끼곤 한다. 세 줄 이상의 글에는 딱 질색을 하던 내게, 어느새 매주 교수님께서 올려주시는 텍스트를 읽는 게 즐거운 일이 되어 있다.


 다음 학기에는 더 많은 영미분석철학 수업을 수강하고 싶다. 물론, 뭐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긴 하지만 이번 학기에 「대륙합리론」 공부도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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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카르트가 명시적으로 주장하지 않았지만 그의 주장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심신이원론 논변을 ‘데카르트적 심신이원론’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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