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공부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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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에 도움이 되는 글은 아니지만
오르비에서 '철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제가 그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만큼 철학을 잘 아는 것은 아니나,
철학을 공부하려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싶어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본인은 연세대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하여 전공 수료에 필요한 학점을 전부 이수했습니다.
왜 철학을 공부하려 하는가?
대학에서 내가 공부한 분야는 철학으로, 당시 나는 철학이 삶의 의미를 알려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었을까. 철학이 얼마간은 유용하리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것이 결국엔 착오였던 셈이다.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31쪽에서 발췌
철학을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에게 그 동기를 물어보면
상당 비율로 '삶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와 같은 이유를 댑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철학은 삶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있는 학문이 아니며,
철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삶의 의미'와 같은 주제는
논리적이거나 실증적인 방법으로 논하기 어려운 것이고,
따라서 이를 다루는 것은 학문의 영역에 포함하기 곤란한 측면이 큽니다.
물론 철학자들도 종종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철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알아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삶의 의미'와 같은 것은
철학이 아닌 다른 것들로부터도 (어쩌면 더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도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고,
사회학을 공부하면서도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으며 삶의 의미를 깨닫고,
어떤 사람은 마라톤을 뛰며 삶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앤드류 테이트의 영상을 보며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도 있고
김제동의 강연을 보며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아마 두 가지의 질문을 떠올렸을 겁니다.
1. 그럼 철학은 뭘 배우는 학문인데?
2. 그럼 철학은 왜 공부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철학은 크게 세 주제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무엇이 존재하는가? (존재론, 형이상학)
-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인식론)
-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윤리학)
비록 칸트는 저 분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긴 했지만,
저는 저것보다 쉽게 철학의 주제를 나타내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공부하려는 목적 역시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합니다.
- 교양을 쌓고 싶어서
- 특정한 철학적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우고 싶어서
-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너무 좋아서
각각의 목적에 따라 철학을 공부하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교양을 쌓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실 철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철학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대부분이 알지도 못하고
실생활에서 인용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커서
차라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과 같은 책을 읽거나
교양 유튜브를 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겁니다.
특정한 철학적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그 주제를 다루는 철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주제들은 철학을 공부하면서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우리의 행동은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외부 환경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인가?
(현대 형이상학, 분석철학에서 다루는 주제)
-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지식이 있을 수 있을까?
(로크의 <인간지성론>과 라이프니츠의 <신인간지성론> 사이의 논쟁)
- '도덕적 행동'의 기준은 무엇인가? 시대나 장소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성립하는 기준이 있는가?
(윤리학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
- 물리적인 몸과 완전히 구분되는 정신적 실체가 존재하는가?
(형이상학, 심리철학, 분석철학에서 다루는 주제)
이러한 주제들이 철학이 주로 다루는 문제인데,
철학을 공부하다보면 저러한 주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답을 내려볼 수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저 네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철학과에 진학했고
결과적으로 철학과에서 공부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런 주제들에 대한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수학의 증명 과정을 따라가듯 고도의 논리적 추론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누적하다보면 논리적 사고력이나, 이해력도 크게 상승할 수 있습니다.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이 다른 분야의 학문을 공부할 때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를 파악하고,
그 주제를 다룬 책이나 논문을 찾고,
그 문헌들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찾아 공부하는 식으로 사유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실 위의 네 주제 같은 경우는 너무 유명한 주제들이라
교양 서적들에서도 다루는 것들이 많습니다.
(구글링만 잘 해도 효율적인 탐구가 가능합니다)
만약에 특정한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철학 자체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라면
저는 가급적 다음의 순서대로 공부할 것을 권합니다.
0. 논리학
1. 대륙합리론 (데카르트-스피노자-라이프니츠)
2. 영국경험론 (로크-버클리-흄)
3. 칸트
일단 논리학을 알아야 대부분의 철학적 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알겠지만,
철학과 교수님들 역시 학생들이 기본적인 논리학 지식은 안다고 가정하고 수업합니다.
논리학은 독학할 수 있는 좋은 교재도 많고,
특히 요즘에는 수능 국어, PSAT, LEET와 같은 시험을 위한 실전적인 논리학 도서도 많아
비교적 순탄하게 공부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는데도
제가 데카르트부터 칸트까지의 철학을 먼저 공부하길 권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등장부터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크게 변한 것도 있고,
데카르트부터 칸트까지의 철학사를 모르면 그 이후의 철학을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저때 나타난 철학들을 계승하거나, 비판하는 식이라서 그렇습니다.
가령 들뢰즈를 이해하려면 그가 비판한 헤겔을 알아야 하는데
헤겔을 이해하려면 헤겔에게 영향을 준 칸트를 알아야 하고
칸트를 알려면 그가 종합하고자 했던 대륙합리론과 영국경험론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시간이 아주 많다면 고대 그리스부터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수 있으나
실제로 그렇게 공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데카르트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데카르트도 모르면서 하이데거, 들뢰즈, 데리다 같은 어려운 철학자를 공부하는 것은
무지와 독단으로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권하고 싶지 않은 공부 방법은, 철학적 기본기가 없는 상태에서
<순수이성비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현상학> 같은 원전을 읽는 것입니다.
읽다가 포기할 가능성이 높고, 읽더라도 잘못 읽을 겁니다.
그러면, 저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요?
당연하게도 대학교 수업을 듣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철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결국 원전을 읽긴 해야 하는데,
교수님의 도움 없이 원전을 올바르게 독해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경제학과를 가서 공부해야 하고
공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공학계열로 진학해야 하는 것처럼
철학도 제대로 공부하려면 사실 대학에서 배우는 편이 제일 좋습니다.
그럼에도 혼자 힘으로 원전을 읽어야 한다면,
데카르트의 <성찰>부터 시작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철학 원전 치고는 어렵지 않은 편이고, 이 책을 읽으며 철학이 다루는 주제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주제에 관심있는지를 알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외에도 저명한 교수님들의 인터넷 무료 강의나,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 '전기가오리' 등의 좋은 매체들이 많으니
이를 충분히 활용하여 공부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박사도 석사도 심지어 아직 학사도 아니지만
그래도 철학을 열심히 공부했었고,
철학 공부를 시작하려는 다른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적어봤습니다. ㅎㅎ
댓글로 질문 주시면 답변 드릴 수 있는 내용은 답변드리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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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좀
그런건 없어용~
이거보고 이재명 뽑기로 결정했다
윤리라는 수능 과목을 위해서 요즘은 칸트 원전과 백종현 교수님 논문등을 계속 탐독중에 있는데 대학 교양 수업을 수강신청해서 들어보는것도 좋을까요?
음... 추천하지 않습니다 ㅎㅎ
수능 생윤, 윤사의 내용이 대학 철학에서 배우는 내용과 거의 안 겹치기도 하고
조금 투머치가 아닐까 싶네요.
생윤 선택자라면 현자의돌이라는 우월한 선택지가 있기도 합니다...^^
아하 제가 수험생은 아니고 현자의돌 연구원이라서 읽고 있는거 입니다!
아 ㅋㅋㅋ 그럼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철학을 너무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런 전공자의 생각 써주시는 거 너무 좋은 거 같네요
닉네임부터 …. 철학도의 냄새가철학 교수가 되기 위해선 국내로서는 서울대 철학과만이 유일한 것일까요?
국내에서 아주 저명한 철학자이신 이병덕 교수님(성균관대학교)은 서강대 학부를 졸업하셨습니다!
다른 학부 출신에서도 정교수 되신 분들 많고 석박사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만 애초에 철학과 교수 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은 감안해야 하고(티오가 다른 과에 비해 유의미하게 적습니다)
그 적은 풀 안에서 서울대와 비서울대의 차이가 작용하지 않을 수는 없긴 합니다
결론: 서울대 가는 게 좋다(사실 서울대 가면 학벌 걱정은 더는 셈이니 마음이 상당히 편할 수밖에 없음)
철학 복전 하려고 하는데, 분석철학 수업만 들어도 학점 다 채울 수 있나요…?

헉 선생님 혹시 회계 잘하시나요아뇨… 하나도 못 알아듣겠던데요? 그래서 인강 끊으려구요
선생님 ifrs 회계원리 하셨나요?
네… 이번 학기에 그 수업 들어요
헉 저희는 이건데…. 학교마다 다른가바요
복전하시면 일단 서양철학의이해랑 동양의가치와철학은 필수로 들으셔야 하고
분석철학쪽 교수님은 선우환 교수님, 이선형 교수님, 이승종 교수님 등이 있는데 그분들 수업만 들어도 복전 학점은 얼추 채울 것 같기는 합니다. 다만 다른 교수님들도 좋은 분들 많아서 ㅎㅎ 이것저것 들어보셔요
아 근데 생각해보니까 전공필수에서 몇 학점 채워야 하는게 있어서 다른 것도 강제로 몇개 듣긴 해야되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ㅎㅎ
니체 철학에 대해 깊게 파고 싶은데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볼려면 어려울거 같아서 홀링테일의 니체 해제서? 니체의 삶과 철학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들어갈려고 하는데 무엇부터 공부해보는 것이 좋을까요? / 니체 철학을 이해하는데 선수로 쇼펜하우어에 대해도 공부해보는 것도 좋을까요? 니체는 한때 쇼펜하우어 추종자였지만 나중에 쇼펜하우어와 학문적으로 결별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음 저도 잘 알지는 못하는데, 그래도 <도덕의 계보학>이랑 <비극의 탄생>이 가장 읽을만하긴 했습니다...ㅋㅋ 니체 다루는 수업들에서도 그 둘을 자주 다루는 것 같고요. 2차 서적은 제가 읽어본 것이 없어서 추천이 어렵네용
저 두 책은 쇼펜하우어 잘 몰라도 이해할 만하긴 했습니다
글 작성자는 아니지만 dc 독서갤러리 가면 관련해서 유용한 정보 많이 얻을 수 있음
흔히 삶의 의미를 찾으러 철학꽈에 간다고 하지만
요즘 느끼는 게 삶의 의미는 어떤 논리나 책 속에 들어있는 게 아니라 삶 그 자체에 있는 것 같아요
괜히 책 읽고 생각하다 보면 결국 발견하게 되는 것은 허무주의일 뿐이죠
삶의 본질은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가 아니라 그저 맛있는 거 먹고 좋아하는 노래 실컷 듣고 땀 흘려 노동할 때에야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다는 그 유명한 구절처럼..
님
철학은 너무나 재밌지만 동시에 스스로가 멍청함을 깨닫기도 하는 학문인 것 같습니다 ㅋㅋ ㅠㅠ
덧붙여 철학에 쉽게 입문하고 싶다면 유튜브 채널 <정진우의 철학교실> 추천합니다
세후 오까네 실수령액이 젤 궁금하긴헤여.....
저도 뭐 해먹고 살지가 가장 중요한 주제이긴 합니다ㅎ
심지어 누군가는 앤드류 테이트의 영상을 보며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도 있고
오이오이.. 유튜브 좀 보셨구만 기래
글 자체가 왤케 예술같다 느껴지지..
바로 복사해서 메모장에 때려박기on
사족으로.. 철학을 배우는 것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익히기에 몹시 훌륭하기에 적극 장려해야겠지만,
철학’만‘ 배우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만의 사고에 매몰되어 외골수가 되면 해괴한 사고를 설파하느라 주변 사람들 피곤하게 만들기 쉬워서요 ㅎㅎ
저도 철학을 사랑하지만, 철학을 통해 기를 수 있는 분석적 & 비판적 사고는 말 그대로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해요. 기하학이나 물리학처럼 기본적인 공리 체계 하에 발달한 학문을 같이 배우면 금상첨화 아닐까 싶습니다.
철학과는 아니지만 나름 공감하는...
원전은 항상 오독의 위험성이 차고 넘치기에 조심 또 조심
올해 만점의생각 출판되나용??
유익한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실천이성비판 강의" 읽는데 힘들더라고요ㅠ 왜 의대에게 그런 걸..
철학과 준비하는 학생인데 세특용으로 쓸만한 주제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어느정도로 심화된 내용을 써야할지 고민입니다ㅜㅜ 책도 괜찮고 주제 방향 정도만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직도 답변해주실지 잘 모르겠지만 몇 자 적어봅니다. 학교에서 하는 인문학 세미나 활동을 <동물 해방>의 책을 탐독하는 것으로 참여했습니다. 싱어의 저작을 읽으며 실천 윤리학에 대해 관심이 생겼어요. 세미나 활동을 하면서 동물 윤리를 넘어서는 생태 윤리란 게 있다는 걸 학습했습니다. 동물 윤리와 생태 윤리는 서로 많이 다르더라고요. 이 분야에 대해서 철학적인 호기심이 생겨 더욱 탐구하고 싶은데 독서할 만한 서적을 알고 계신다면 몇 권 추천하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