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부엉이 [1038032]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3-01-31 14: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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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전공이랑 현실적인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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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안 나는 사람보다 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 같긴 한데 당연히 ㅋㅋㅋ

현역 수능이 끝나고, 당일 사고로 어쩔수 없이 강제적 재수를 마음 먹게 되고

한달 반 가량을 쉬고 지금은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공부하다 보니 잡생각이 많이 나서 적어보는...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이런 것들을 수능 보기 전 현역시절에는 마음껏 집중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그 분야에 진심인지 알 기회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국어국문학, 문학사, 사학 등의 분야이다.

원래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고 성격이 바뀌면서 단순히 책이나 문학이 아니라 그걸 역사적 사회적으로 접목시킨 문학사, 역사 등의 인간이 살아온 흔적을 되짚어보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고전시가, 동양고전, 고전산문, 이런 거 특히 좋아한다. 번역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읽어낼 수 있는 고전들에 환장한다. 흔히 사서삼경이라고 하는 동양 경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내가 따로 찾아서 필사하고 암기했다. 용비어천가같은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가에 어느날 관심이 생겨서, 한문에 번역까지 전부 다 손으로 필사하고,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사실이며 설화며 직접 찾아서 정리했다. (이번 수특에 나오더라 나름 ㄱㅇㄷ) 고전시가같은 거, 내신 문학 배울 때 거의 외우다시피 하면서 공부했다. 그냥 좋아서. 물론 외워야 되는 것도 맞았지만, 내 손으로 몇 번이고 쓰고 쓰고 또 쓰면서 몇백 년 전에 이 작품을 썼을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상해 보는게 그렇게 재밌었다. 


어쩌다 보니 한국어학에도 관심이 생겼다. 언매 공부를 하는 김에 무슨 한국어 맞춤법? 문법? 그런 거 정리해둔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파일이 있길래, 전부 정독했다. 고3시절까지는 이렇게 그냥 공부 사이사이에 취미 개념으로, 그나마도 고3 1년동안은 거의 즐기지도 못 했다.


수능을 장렬하게 망치고 한 한 달은 멀쩡하게 일상생활 하는 데에 집중하느라 힘들었고 그 사이에 혼자 도 많이 쓰고 책도 많이 읽고, 보고 싶었던 사학 다큐 보고 싶었던 전시회 박물관 많이 돌아다녔다. 필사도 더 많이 했고 요즘은 <대학> 필사하는 중이다. 대학가고 싶어서 ㅋㅋ.


 반짝 하고 말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것은 또 다르다, 그 전공 해서 나중에 뭘 하고 살아갈 거냐, 좋아서 선택했다가도 잘 풀리지 않으면 그 전공이 미워질 수도 있는데, 내가 사랑하고 안식처로 느꼈던 나의 취미이자 마음의 쉼터를 잃게 된다면 더 슬프지 않겠냐.

 더더욱 마지막 이유 때문에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전공 삼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남들 가는 길, 큰 성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전문적인 자격증이 보장된 의대를 꿈꾸게 되었다. 아버지가 의사시고, 그 중에서도 빡세고 힘든 과를 하셔서 난 6살 때까지 우리 아빠 얼굴도 잘 몰랐다. 너무 바빠서 주말 하루 집에 들어오시고 그나마도 지쳐 쓰러지셔서 하루종일 주무시다 나가셨으니까. 쉬워 보여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중에 커서 혼자 살아가야 하고 만약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게 된다면 최소한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돈 때문에 못 하는 일은 없게 해 주고 싶은데, 그렇게 고르다 보니 적어도 일정 하한선 이상의 수입이 보장된 그 직업을 고르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전공,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 전공만으로는 취업하기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정말 오래 알고 지낸 언니 중에 그 전공을 간 사람이 있다. 나처럼 열렬한 편은 아니었는데 문과였고, 어느정도 관심이 있어서 갔다고 했다. 그렇지만 대학교 3학년이 된 지금, 많이 막막하고 힘들다고 한다. 서울 안에 있는 유수의 대학인데도 그렇다고 한다.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특히 전공을 살리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나는 그래서 분명 현역 수능을 치기 전까지는 그 분야를 내 전공으로 삼을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 너무 힘든 길이라는 걸 알고 있고 나는 그 길을 갈 만큼 관심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반짝 하는 관심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무슨. 난 아니야. 이렇게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막상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니 생각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분야에 진심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보통 아무 생각 없이 쉬게 된다고 하는데, 그게 맞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제일 편한 일을 하게 된다.

나는 그 시간동안 책상 앞에 앉아서 수능에 출제될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공부해 보지 못했던 고전시가와 시조들을 공부했다. 대학 입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한국사와 한문을 공부했다. 그것이 내 즐거움이었고 행복이었다. 그래서 다시 달려야 하는 기간을 앞둔 지금 고민이 깊다.


 머리가 어느 정도 식고 나니 이런 저런 생각이 참 많이 드는 것 같다. 전공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라, 교과서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난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그러기를 포기했다. 20살이 되어서야 그 꿈을 다시 꾸기 시작한다는게 무섭다. 아는 것도 너무 없고 안정적인 길을 내팽겨치기 두렵다. 


사실 하고픈건 대학 가서 메디컬 성공해서 복전하는거. 안정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겟... 그렇지만 메디컬은 복전 자체가 빡세다거 해서...

마음이 혼란한데 부모님께도 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라 오르비에라도 적어봣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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