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고대 '호랑이/범'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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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를 상징하는 '호랑이'와 '호랑이'의 고유어 '범'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호랑이'의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범을 뜻하는 '호(虎)'에 이리를 뜻하는 '랑(狼)'이 붙고 그 뒤에 접미사 '-이'가 붙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여러 훈민정음 문헌에는 '虎' 또는 '虎狼'이 '범'의 의미로 쓰인 기록이 여러 있으니 한자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자 구조에서 보이듯이 원래는 호랑이와 이리를 두루 부르는 말로 육식 맹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는 한문의 풀이 표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능엄경언해의 "虎狼獅子와"는 "虎와 狼과 師子와"로 표시되었는데 이는 각각이 호랑이, 범, 사자(*추정)를 뜻하는 별개의 단어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구급방언해의 "虎狼"는 "범과 일ㅎㆎ와"로 언해되었다. 즉 원래 '범과 이리'를 뜻하던 말로 '호랑(虎狼)'이 쓰였으나 '호랑'이 굳어져 쓰이며 점점 '범'을 뜻하는 어휘로 그 의미가 좁혀졌다고 할 수 있다.
'호랑'으로 쓰이던 단어가 현재와 같은 어형을 갖게 된 것은 접미사 '-이'가 붙기 시작한 19세기부터다. '-이'라는 접미사는 '고슴도치'나 '원숭이' 등에서 보이는 접미사로 기존 음절로 말할 때보다 의미 전달과 청각적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주로 쓰인다. 이때부더 '범과 이리'라는 원의미는 잃어버리고 '호랑이'만 지칭하게 되어 현재까지 쓰이게 됐다.
다른 설로는
1. 호랑이를 뜻하는 '호(虎)'에 접미사 '-랑이'가 붙었다는 설. 그러나 '-랑이'라는 접미사가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2. 호랑이를 뜻하는 몽고어 'hol'에 접미사 ‘-앙이[aƞi]’가 붙어서 된 것이라는 설. 그러나 15세기부터 [호랑]으로 읽히는 '虎狼'이 쓰였고 19세기에도 한불자전이나 기타 문헌에서 虎狼이란 한자를 쓴 기록이 존재한다. 한자 '虎狼'에 접미사 '-이'가 붙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가 붙은 표기는 근대에 가서나 등장하고 기존에는 '虎狼'이란 말이 쓰였으므로 갑자기 몽골어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현재는 '호랑이'라는 용어가 '범'을 아예 대체했지만 원래는 '범'이라는 말이 훨씬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다. '호랑이'는 앞서 말했듯이 한자어인데 '범'이 바로 '호랑이'의 고유어이다.
'범'은 '호랑이'의 고유어로 15세기부터 '범'으로 쓰였다. 어형의 변화 없이 계속 '범'이 쓰여 왔는데 계림유사에는 "虎日監蒲南切(범은 監蒲南切이라고 읽는다)"라는 문장이 있다. 여기서 아래첨자(가독성을 위해 씀. 원래 문헌에서는 아래첨자로 나타나지 않음)는 반절을 나타내는 것으로 한어병음이 생기기 전 두 한자를 빌려 한 한자의 음을 표현하는 것을 '반절(反切'이라 한다. 예를 들어 '文無分切'은 '文'이란 한자를 '無'의 성모(ㅁ)와 '分'의 운모(ㅜ)을 합쳐 반절(切)하여 발음하란 뜻이다.
따라서 계림유사의 '監(감)'은 '범'의 옛말이 /k/의 음을 가졌다는 걸 나타내는 증거가 아니므로 반절하여 읽는 표기가 맞는 발음이다. 이때는 앞의 성운과 뒤의 성모를 따서 읽으므로 '팜' 또는 '밤'과 비슷하게 발음했을 것이다.
이 '범'이라는 어휘의 어원을 조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고려 이전 문헌에서 '범'이라는 어휘가 보이지 않고 1음절 단일어이기 때문이다. '범'과 '밤'과의 발음상의 유사성으로 어둡다를 뜻하는 어근에서 왔다는 말도 있고 '범'을 아예 동사의 활용형으로 본 글도 보았다. 그러나 아직 근거는 불충분하다.
또 하나 재밌는 표기는 '저우롬/저우룸'이다. 간이벽온방의 "正月初上寅日"라는 부분은 "져ㆁ월 첫 저우름날'로 언해되는데 '寅'은 자축인묘 할 때 그 '인'이다. '日'는 '날'이란 뜻이니 '날' 앞에 붙은 '저우름'이 寅 즉 호랑이를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십구사략언해에는 '寅月'을 '저우롬ㅼᆞㄹ'로 표기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조선관역어에는 12지와 관련된 부분에 '寅 則卜論苔 引'라는 글이 있는데 '즉복론(則卜論)'을 '저ㅸㅡ룸'으로 읽기도 한다.
적어도 12~13세기부터 호랑이의 고유어인 '범'과 '저우룸'이 공존하였다가 18세기 이후 '저우룸'은 서서히 그 쓰임이 줄어들며 언중에게 잊혔을 것이다. '저우룸'과 '범'에는 어떠한 음운론적 유사성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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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뒤에 숨어서 저격하는게 재밌나
언매황 추

언매황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