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블루칼라 비하하는거 보면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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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거의 모든 학부모님들이 자식에게 엄청난 교육비를 투자하고, 많은 학생들이 대학교에 진학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전공과 상관 없는 일에 종사하는 비율은 OECD 최고인 현실은 참 씁쓸합니다.
그 마음 저 또한 잘 압니다. 자식이 공부를 잘 해서 편안한 사무직, 화이트칼라로 사무실에서 에어컨이나 난방기를 빠방하게 틀고 편하게 일하길 바라는 그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블루칼라는 공부 못한 열등한 사람들이 가는 직종이 아닙니다. 당장 서울대 대학원 고고학 교수는 열심히 장갑끼고 유물 발굴 하는데, 지나가던 어머님이 아들한테 "너 공부 안하면 나중에 저렇게 되" 라는 웃픈 사연은 한국의 기술자와 현장 근로자에 대한 열등과 비하가 듬뿍 담긴 적절한 예시입니다.
공부 잘 하고 서울대 대학원 석박사 다 따고 외국에서 교수하다 온 사람들이라고 무조건 책상에 앉아서 서류만 보고 있겠습니까? 역설적으로 최고 등급의 고부가가치 화이트 칼라 직종은 현장과 이론을 모두 섭렵한 그야말로 문무겸비의 인재입니다. 대표적으로 당장 의사가 그렇습니다. 의사는 방대한 의학 지식을 갖추면서도 동시에 사람도 상대하며, 외과의 경우에는 좀 농담을 섞어서 '목수'라고 부르는 분야도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도 보면 블루칼라의 노동과, 그들이 직접 생산하는 물건에 대한 가치와 비용을 지나치게 평가절하 한다는 느낌을 정말 심하게 받습니다. 사실 좀 극단적으로 말해서, 당장 블루칼라 인력이 증발하느냐와 화이트 칼라 인력이 증발하느냐를 비교하면, 블루칼라 인력이 증발할 때 곧장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옵니다.
쓰레기를 주기적으로 수거하고 정리해서 매립, 소각하는 사람들. 공사장에서 포크레인이나 중장비를 운전하는 사람들. 거대한 유조선이나 화물선을 지휘하는 선장. CNC 밀링 선반 도구를 활용하여 복잡한 부품을 생사하는 사람들. 소위 장인들이 없어지는 순간 당장의 경제 지탱은 물론이요 하드웨어적인 기술력 발전이 멈춰섭니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블루칼라를 숭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화이트칼라로 분류되지만, 에어소프트건이라는 취미를 하면서 블루칼라의 이야기나 실제 가공, 웨더링, 화학 약품 처리 블루잉, 샌딩, 파카라이징, 코팅, 제조 조립 등등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에 기름때 묻어보면서 취미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피오소라는 브랜드에서 내놓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브라우닝 하이파워'라는 권총의 스틸 컨버전 킷입니다. 이게 얼마인줄 아세요? 188만원 ㅋㅋㅋ
지난번 일본과 한국, 대만의 기술력 차이에서 말씀드렸듯이, 당장 장난감 하나 만드는 것만 봐도 그 나라의 산업 수준과 QC 기준, 소비자의 눈높이 등이 한눈에 보입니다. 0.04 mm의 오차는 기계로 극복을 할 수 없어서 직접 장인이 현미경 수준의 광학 장비로 살살살 떼어내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당장 일본은 프라모델만 해도 접착제가 필요 없는 수준으로, 부품 간의 유격이나 오차가 발생하지 않고도 조립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소비자의 눈높이는 경제 수준을 따라가는 듯한데, 일본 한국 대만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일본 > 한국 > 대만입니다. 대만에서 물건을 샀는데 뭔가 추가적인 가공이나 공임이 필요하다? 대만 사람들은 그걸 당연히 여깁니다. 근데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내가 188만원짜리를 구매했는데 따로 돈을 더 들여서 제대로 작업을 더 추가해야지 작동한다? 당장 소비자들이 뒤집어집니다.
아직도 정밀 부품 산업은 독일 일본 미국이 세계를 쥐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산이 점유율이 매우 높습니다. 또한 삼성이 일본을 따라가기 전만 해도 일본은 반도체 분야 등에서도 세계적으로 선도하던 국가입니다. 그것을 기술 협찬(이라 쓰고 표절, 베끼기 라고 한다)을 받아서 한국이 성장했고, 결국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은 것은 수많은 시행 착오와 실험 덕분이었습니다.
당장 우리가 쓰는 각종 볼펜, 샤프, 컴퓨터 등등 모두 제조업이 발전해야만 누릴 수 있는 물질적 풍요이며, 화이트칼라들이 대부분 포진한 서비스업, 3차 산업은 1,2차 산업을 기반이 되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미국과 일본은 간단하게 왜 그렇게 강력한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일본은 1차 산업이 미국보다는 약하지만 2차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해 있습니다. 미국은 광활한 영토에서 대규모 공장과 농장에서 생산물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1차 산업이 밑거름이 튼튼합니다. 세계적으로 식량난이 도래하는 와중에 선진국의 식량 회사들이 세계 식량을 대부분을 차지하고, 사재기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 고려, 조선은 뛰어난 도자기 기술을 바탕으로 고려청자를 생산하던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그 기술을 탐내서, 임진왜란때 도공들을 왕창 납치해서 데려갔습니다. 그들의 기반으로 일본의 도자기 산업은 엄청나게 발전했고, 서구화 중에 유럽에 뛰어난 상품으로서 일본산 도자기가 각광받았습니다. 결국 그런 블루칼라, 장인들의 기술력이 일본의 서구화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너무나 탄탄하고 막강한 1,2차 산업 덕분에 3차 산업도 발달해서 구글, 페이스북 등 국제적인 인터넷 서비스, sns 기업이 많이 포진해 있습니다. 결국 그 바탕에는 무겁고 광대한 소프트웨어를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하드웨어, 즉 2차 산업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요새 전기차니 친환경차니 하면서 스타크래프트의 SCV 마냥 자동차를 조립하는 저 장비들을 보십시오. 일단 하드웨어가 받쳐줘야 거기에 컴퓨터든 인공지능 들어가는 법입니다.
저도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직 공대생이며 학문을 하고, 화이트 칼라로서 진로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자를 무시하거나, 블루칼라를 전혀 등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장 제 취미를 영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강철과 알류미늄 등 소재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며 다양한 화학 약품으로 처리하고, 뛰어난 기술력으로 녹이 슬지 않게 가공하는 제조업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블루칼라가 처해진 환경, 예컨데 당장 에어컨이나 난방기 없이 춥고 힘든 환경, 과거 삼성 반도체에서 백혈병 환자가 나왔던 것처럼 인체에 매우 유해한 독극물, 유증기, 유기화합물 가스 등에 노출된 기술자들을 천시하면서, 어렵고 힘든 일을 소위 공부 못한 무식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듯이 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역사를 봐도 비슷한 느낌이 들어 씁쓸합니다. 청나라의 뛰어난 제조업과 실용적 기술들을 보고 감탄한 박지원은, 당장 바늘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드는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였습니다. 결국 정조 대왕이 요절 뒤 실학파들이 대거 숙청 당하거나 귀양을 가면서 조선의 마지막 전성기라 볼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1백년 뒤 맞이한 것은 뛰어난 하드웨어, 무기와 현대적인 상품을 앞세운 제국주의 군인들이었습니다.
저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정말 1차원 적으로 모두 똑같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직업이든 천시하지 말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간단하게 애국이란 각자 맡은 바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이트 칼라의 진로를 가면서도, 화이트 칼라로서도 최상위권에 가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블루칼라의 기술력과 장점을 배우고 있습니다. 1차원 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된 일을 천시하지 마십시오. 그런 고통 덕분에 우리가 편안히 삶을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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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입니다.저는 저러는 부모들 보면 그 애들이 불쌍합니다. 똑같은 천박한 사고방식을 갖게되니까요.
그냥 필요하니까 그 직업이 존재하는건데. 무시하는거보면 ㅈ같음.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게 다똑같다는게 아니라 남 무시하지 말라는건데. 에휴 그리고 인스타같은 ㅈ같은 sns가 무의식적으로 우월감 같은거 갖게 만듬.
중간에 ’‘그것을 기술 협찬(이라 쓰고 표절, 베끼기 라고 한다)‘’ 이 부분을 ’그만큼의 격차가 났었고,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방법마저 자국의 오리지널 기술이 아니었다‘를 내포하기 위해 쓴 것 같은데, 애당초 우리나라는 일본, 북한때문에 진짜 최하위국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을 뿐더러(반대로 일본은 우리나라를 밟고 생활), 일본도 조선시대 때까지 거의 천 년간 우리와 중국의 기술들을 들여오기 바빴고 그 이후엔 외국의 기술들을 들여왔음. 그런 상황 속에서 기초적인 기술적 지원을 받은 걸 내려치기 당하는 건 많이 억울한 상황 아님?
더더군다나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좋던 북한과 맞닿고 있었으니 미국의 지원을 받을 만했고.(지정학으로 보면 그냥 한반도 vs 일본의 대립도 괜찮다고 볼 수 있지만 남북 전쟁 때 일본에 세워둔 기지들을 매번 이용하고 소련 n 중국 n 북한과 바로 대치하는 것보단 남한의 영해와 영지를 이용해 일차적 레이더 + 관문의 역할을 하고 그렇게 벌어둔 시간으로 세운 작전과 갖춘 준비 태세로 대치하는 게 훨씬 좋기 때문에 즉,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흡수통일되지 않도록 함)
이것 말고는 글 내용에 어느 정도 동의함.
우리나라가 뒤쳐진 데에는 중국이 당한 것을 보고도 학습하지 못하고 외국과의 교류를 하지 않음 + 그 이전까지 제대로 백성들을 살피지 않아 경제적 성장 속도가 더뎌지던 우리나라 수뇌부의 영향도 있으나 일본, 북한, 중국이 결정타를 날렸고, 이게 없었다면 6-70년 간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는 점이 있어도, 현실적으론 결국 일본이 고도의 성장을 이룩했고 이젠 그런 일본과 싸워야하는 입장에서 우리나라 전체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이용해 처음부터 공정한 체제를 갖추고, 서둘러 모든 분야에서 효율적이고 양심적인 발전을 했다면 지금보다도 더 많은 성장을 했을 거임.(현실은 그렇지 않고 다수가 친일파였던 그 당시 기업들과 수뇌부들만 배를 불렸고 여전히 사람들은 소시민이었으며, 이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정상적인 소비와 생산의 순환이 더뎌지고, 제대로 된 정치 체제 등의 구축을 위해 쓸 데없는 시간적.인력적 손실이 발생했고, 친일 반일의 감정과 이를 이용한 프로파간다 정치가 생기는 계기가 됐으며, 나아가 블루 컬러 직업들에 대한 천하다는 인식과 이를 벗어나 화이트 컬러 직업들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내림)
앞으로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선, 국가가 나서서 다방면에 공정한 체제들을 세워야 하고(특히 교육 체제), 이를 바탕으로 계몽을 통해 다시 한 번 이런 말도 안 되는 인식들을 없애야 함.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로 보면 여타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창의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기술을 발전시켜 블루 컬러 직업군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의 환경이 좋아짐을 꾀해야 함
블루칼라가 망하면 나라도 흔들림
인식도 고쳐야 하고 대우도 시류에 적절하게 좋아져야함 뭣보다 나라에서 놓으면 안됨
그 미국이 제조업 망하고 러스트 벨트 지옥도 열려서 휘청거린거 생각하면
내수 체급도 훨씬 낮고 이래저래 부족한 한국이 그런 상황 닥치면
훨씬 후유증 심각하게 겪을듯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개인 측면에서는 본문에 언급된 학부모 예시처럼 자식을 교육하는 데에 있어 일부 부모들의 관점이 달라질 필요가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는 1, 2차 산업에 적극 투자하는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겠군요
형님 죄송합니다 블루칼라를 블루클럽으로보고 이발소 직원을 비하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로 이해했었습니다
블루칼라도 직군에 따라 완전 다른게 내가 직접 본 경우를 말하자면 대기업에서 하청받아서 설비나 시설 관련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면 돈도 잘 벎 ㅋㅋㅋ 그렇다고 일이 막 엄청나게 힘들고 근무시간이 기냐고하면 또 그것도 아님 ㅋㅋㅋ 근데 직접 보기 전까지는 대부분 "아 그래?" 수준이고 와닿지는 않는거 같더라 ㅋㅋㅋ 남자들 중에 군대 전역하고 20줄 초반에 이쪽 관련 현장에 뛰어드는 사람들보면 30대 초반만 되도 명문대 출신 전혀 안부럽게 돈 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