岳畵殺 [72210] · MS 2004 · 쪽지

2015-05-20 11:52:17
조회수 1,802

나쁜 의사 전성시대 - 왜 과잉 진료가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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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 글도 화제가 되었고,

며칠 전 단골 카페 주인이 동네 의원의 과잉진료 때문에 불편하다고 호소한 적이 있어서

제가 느낀 바를 조금 끄젹여 봅니다.


의사든 치과의사든 한의사든

딱히 집단 내에 도둑놈들이 많아서 과잉진료가 넘쳐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이 과잉 진료를 조장하고

과잉 진료를 하는 사람들이 살아남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의 링크의 치과 의사 선생님처럼 소신껏 진료하는 분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환자



치료 불필요



치료 필요



의사



치료 미시행



1



2



치료 시행



3



4



의사와 환자가 만나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을 위에 처럼 단순하게 도식화해 봅니다.

(현실에서는 의사 실력이 형편 없어서 잘못된 진단으로 

엉뚱한 치료를 했다든지 하는 문제도 있지만 일단 그런 부분은 배제합시다.)


제일 이상적인 경우는 1번과 4번이겠죠.

2번은 과소진료, 3번은 과잉진료로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왜 2,3번 상황 중 2번이 아닌 3번의 상황이 더 빈번하게 일어날까요?


의사의 관점으로 가서, 

적극적으로 치료를 시행한다면 주로 3,4번에 해당하는 경우가 늘어날 겁니다.

3,4번에 해당하는 경우는 치료가 잘못되지 않은 이상 보통 해당 병의원에서 치료가 종결됩니다.

의사는 돈을 벌고, 환자는 치료를 받죠.



반대로 소극적으로 치료를 시행한다면 주로 1,2번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겠죠.

문제는 해당 병의원에서 치료가 종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 본인이 1번에 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의사를 믿고 경과 관찰에 순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2번의 가능성을 생각해서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봐야지.'라고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실력 없는 의사로 인해 2번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당연히 들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의사들의 의견을 물으러 다닐 수 있고,

(심한 경우에는 doctor shopping 현상까지 발생합니다.)

그러다가 이런 환자들이 적극적인 의사를 만나면 1번에서 3번으로, 2번에서 4번으로 이동하게 되겠죠.

(다른 관점에서 doctor shopping을 하면서 시간이 경과해서

예전에는 치료가 필요 없던 것이 치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처럼 의료 소비자의 의료기관 선택이 굉장히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의료 소비자가 여러 병의원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1->3, 2->4번으로 이동하기가 쉽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치료가 종결되니까요.


결국 이상적이지 않은 3번의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다시 의사 관점으로 돌아가서, 

의사가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는 여러 요인에 의해 갈릴 수 있습니다.

의사의 실력에 따라서, 본인의 경험에 따라서 좌우될 수 있고

정말 돈독이 올라서 적극적인 치료를 권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소극적인 의사라면 1번을, 적극적인 의사라면 4번 상황이 더 많기를 바랄 겁니다.

(아무리 돈독이 올랐어도 4번 보다 3번 상황이 더 많기를 기대하진 않을 겁니다.

이땐 자가 최면 같은 것도 동원되긴 하겠지만요.)


문제는 소극적으로 치료해서  1번 상황을 늘리려고 하는 의사는 

행위별 수가를 시행하는 우리나라 특징 상 보상이 적고 

의료기관 선택이 자유롭기 때문에 다른 의료기관에 환자를 뺏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결과적으로 돈을 못 벌게 되죠.


반대로 적극적인 치료를 해서 4번 상황을 늘리려는 의사는

행위별 수가를 많이 하니 보상이 많고

해당 의료기관에서 치료가 종결되기 때문에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환자를 뺏기진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되죠.


문제는 전자의 의사라고 임대료나 인건비, 재료비가 싸지 않고

후자의 의사라고 비싸진 않습니다.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대부분은 사적 자본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하면 유지가 되기 어렵습니다.

위에 치과 의사 선생님도 의원 유지를 위해 간호사도 없이 본인이 모든 것을 다해야 하는 상황인데

비용은 절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체력적으로 장기간 의원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죠.

결과적으로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 의료인이 더 살아남기 쉽고,

그들은 더 큰 병의원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돈독이 오른 일부 의사들은 당연히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 쪽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감은 실제 의사 집단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더 커보이게 되는 겁니다.

예전에 척추 과잉 수술이 문제가 한창 되었을 때,

어떤 척추 수술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차피 내가 수술 안하면 이 환자는 다른 병원에 가서 수술 받는 상황이 생긴다.'고 말입니다.

평범한 의사들도 나쁜 의사들을 흉내내지 않으면 도태되는 환경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거기다가 한가지 더, 

환자의 관점에서 치료미시행/치료시행을 결정할 때는 

1. 비용 (돈과 시간 모두 포함합니다.)

2. 부작용

두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치료를 머뭇거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비교적 치료 비용도 싼 편일 뿐더러

실손보험 등이 발달해서 비용 부담이 적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용 장벽은 낮은 편입니다.

2번의 부작용의 경우에도 소극적인 의사는 부작용을 적극적으로 설명하지만

적극적인 의사는 반대로 부작용을 최대한 적게 설명하려고 하겠죠.

환자의 관점에서 봐도 적극적인 의사를 만났을 때 치료를 받을 확률이 높아지고

비양심적인 의사들은 적극적인 의사에 더 많기 때문에

비양심적인 의사들에게 치료 받을 확률이 높아지겠죠.




이쯤 되면 모든 상황이 1번에서 3번으로 가도록 손짓하고 있습니다.

골치 아프죠?

저도 의사이기도 하지만 의료소비자이기 때문에

2,3번은 적게 일어나고, 1,4번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만...

문제 해결책이라고 나온 것이 몇몇 있으나

이해 관계가 상당히 얽혀 있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고

여기서 언급하면 너무 길어지니 생략하겠습니다.

(위에 doctor shopping 문제만 해도, 

외국처럼 의료기관 선택에 제약을 주면 의료 소비자들의 반발이 커질 수 밖에 없겟죠.)

다만 현재 상황이 왜 나쁜 의사들의 전성시대로 만들었는지

의료인이나 관련학과 학생이든

- 왜 일반인들의 의료인 불신이 이토록 심해졌는지 -

일반인이든

- 왜 의사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

문제 의식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제 인식과 이해가 문제 해결의 첫 단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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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르맹 · 343315 · 15/05/20 12:13 · MS 2010

    혹시 선생님께서 읽어보신지는 모르겠지만 재작년즈음에 나온 책중에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방법이라는 책이 있더라구요. 혹시 읽어보셨다면 책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이 궁금합니다. 제가 의사가 아닌지라 읽으면서도 책내용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상당히 힘들더라구요. 꼭 과잉진료만 찝어서 말한 내용은 아니지만 과잉진료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언급했다는점에서 이글이랑도 상관이 있지 않나싶네요.

  • 岳畵殺 · 72210 · 15/05/20 12:31 · MS 2004

    제가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으나,

    과잉진료를 하는 의사들처럼

    그런 유형의 책을 쓰는 사람들도 '돈'이라는 동기가 있습니다.

    책을 많이 팔아야 돈을 벌기 때문에 될수 있으면 자극적인 내용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과잉진료에 대한 적절한 조언의 선을 넘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책으로 돈을 벌지 않더라도 그런 류의 사람들은 건강식품 사업 등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당뇨에 독한 약 먹지 말고 건강식품 xx로 근본적인 치료를 하세요! 이런 식으로) 결코 의도가 순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과잉진료를 두려워해서 지나치게 치료에 소극적이면 반대로 과소진료의 문제가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이 문제는 간과하더군요.

  • 제르맹 · 343315 · 15/05/20 12:35 · MS 2010

    읽으면서 어느정도 공감가는 내용도 있었지만 본인이 베테랑의사라는 점을 내세워 지나치게 다른의사들(특히나 경험적고 fm대로 하는 의사)의 의견을 무시하는경향이 없지 않더라구요. 책 인세부분은 의료랑 상관 없는 부분인데도 제가 미처 생각을 못했군요. 감사합니다.

  • 岳畵殺 · 72210 · 15/05/20 12:41 · MS 2004

    그런 유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예가

    고혈압 기준을 더욱더 낮게 잡아서 멀쩡한 사람도 고혈압 환자로 만든 뒤 약을 먹게 만들고 여기에 의사와 제약회사가 협잡을 했다는 식의 주장이 있죠.


    문제는 JNC 8 고혈압 가이드라인 같은 경우에는 연령별로 세분화하여 다른 합병증이 없는 60세 이상 고령에서는 기존의 140/90에서 150/90으로 기준을 완화시켰다는 겁니다. 실제로 대규모 연구를 한 결과 고령에서 지나치게 고혈압을 조절하는 게 안 좋다고 밝혀졌거든요.

    그런 음모론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설명할 수는 없겠죠. 의사나 제약회사에 의한 과잉진료를 감시한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사람들의 조언이 종종 적절한 선을 넘는 경우가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합니다.

  • 제르맹 · 343315 · 15/05/20 13:00 · MS 2010

    헛 책을 안읽어보셨는데도 핵심을 정확히 알고계시군요. 역시 일선에 계신분 의견을 들어봐야하는군요.

  • 방향성 · 484880 · 15/10/19 02:32 · MS 2013

    진료 방향이 대부분 과잉진료 쪽으로 흐르니 님께서 하신 말에는 논리가 부족한거같아요.

  • nicewing · 72210 · 15/10/20 15:50 · MS 2004

    반년 전 글에 댓글을 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본인의 주장에는 근거를 붙여주세요.

    그리고 과잉진료 문제가 일방적이지 않다는 거지 과잉진료 문제가 없다고는 안 했습니다만.

  • 언젠가는♪ · 255591 · 15/05/20 12:39 · MS 2008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몇년전에 다리를 크게 다친적이 있었는데 담당 교수님께서 6주간 항생제 치료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ESR과 CRP 수치가 좋지 않았고,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확한 진단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교수님께선 선제적으로 항생제 치료를 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지금은 다행히 뛰어다닙니다.

    지금도 그 당시 염증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차분하고 상세하게 말씀해주셔서 굉장히 신뢰하면서 치료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본문 내용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환자들도 적극적 치료와 과잉 진료를 구분해서 이해하는 것이 서로간의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될 듯 합니다. 물론 '3분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의 개선과, 환자를 납득시킬 수 있는 의사의 충분한 설명이 전제되어야겠지요.

  • 岳畵殺 · 72210 · 15/05/20 12:42 · MS 2004

    네 의사들도 환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어서 환자의 선택권을 충분히 이해시켜주면 불필요한 doctor shopping도 줄어들 거고 의사와 환자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 (위의 예시로 치면 1번과 4번)를 얻는 경우가 많아질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들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닌데, 그 상황을 솔직히 설명하고 환자에게 이해시킨 교수님 같은 의사를 저도 많이 만나면 좋겠습니다.

    3분 진료가 문제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설명 의무도 무시하는 의사들에게 면죄부는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 kiing · 570684 · 15/05/20 12:52 · MS 201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현실이 안타깝네요

  • DoUknow · 552510 · 15/05/20 12:58 · MS 2015

    결국 비싸진단말이죠... 의료의 특성상 경쟁을 하는 민영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사람들은 어쩔수없이 불만이 있죠. 일반 상품이면 안사면 그만이지만 의료는 그게 아니니까요.
    사실 이걸 타개할 방법이 없는실정 아닌가요?

  • 岳畵殺 · 72210 · 15/05/20 13:13 · MS 2004

    사실 그래서 저도 해결책은 딱히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정부-의료공급자-의료소비자 간에 이해 관계가 다르고

    각 집단 안에서도 또 갈리거든요.

    사실 상 모두 만족시켜줄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골치 아픈거죠.

  • 화2타짜 · 561985 · 15/05/20 13:15 · MS 2015

    동문들 중에 용감한기자들에 나오는 신재원 기자처럼 의학부 기자가 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돼요?

  • 岳畵殺 · 72210 · 15/05/20 14:22 · MS 2004

    아직 동기 중에는 기자 되었다는 친구는 없는 것 같으니 흔한 진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한해 의학 전문 기자 되는 M.D. 10명도 안될껄요?

    아직은 굉장히 마이너한 진로라고 봅니다.

  • ghjghjfghdf · 559416 · 15/05/20 22:02 · MS 2015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