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는소년 [515854] · MS 2014 · 쪽지

2015-04-24 12:15:16
조회수 968

정석대로 시 읽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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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쓴 글입니다.

지문을 글로, 시를 작품으로 생각하고 정석대로 읽는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시 문제 해결을 위해 시 해석법을 정석대로 공부하면 안될까요?

 

저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배우는 여러분 가운데에는 그리고 가르치는 어떤 분들은 필요한 것만 익히면 된다고 말을 하지만 문제에 직결되는 것만 공부해서 실력이 나아지지 않고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아직 성적이 오를지 안오를지 드러나는 때가 아니라서 마냥 공부하고 있는 분들도 주의깊게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2014학년도 B형 42번 문제(찾아보지 마시고 생각만 해보세요)와 43번 문제는 모두 보기가 있는 문제입니다. 보기가 나오면 보기를 읽고 시를 보라 하지요. 제목을 보라고도 하는데, 시 제목은 사평역입니다. 제목에서 기차역인가보다 외의 것을 얻는 천재라면 이 글을 읽지 않아도 됩니다. 어쨌든 보기가 있는데요, 42번은 보기를 읽으면 선택지가 보기와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43번 문제는 보기 문제면서도 보기를 통해 시를 바라보는 것으로 선택지를 판단하는 것 외에 시 자체만을 읽고서 얻은 감상을 통해 선택지를 판단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42번과 43번 모두 이것 이것만 보면 답이 딱 나온다는 설명이 그럴듯하기도 하지만 나는 다른 문제를 만나서는 도저히 써먹을 수가 없다는 학생이면 이렇게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사실 모두 이렇게 공부하기를 권합니다) 시를 이해하는 바탕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치킨에서 다리만 빼먹듯 문제와 직결된 부분만 보지 말고 시 전체를 해석하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한 마리 통째로 먹고 배부르듯 충분한 시 해석 학습량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표현 하나, 개념 하나만 쫓아다니지 말고 시 해석 원리, 문제 해결 노하우를 익히기 바랍니다.

 

앞에서 말한 문제의 작품 중 한 파트입니다. 이 파트의 모든 행을 분석하는 연습을 합시다. 다만 하나의 일관된 해석 원리를 적용해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시는 <언어해석-현실적 or 맥락적 의미 추론-상황구성-상황으로부터 정서 추론>이런 순서로 해석합니다. 이 과정의 명칭과 단계가 제 나름대로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글을 이해하는 인지과정에 따라 표면구조surface structure-텍스트 구조text structure-상황모델situation model을 구성하는 심리적 과정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는 언어 표현은 해석할 것이 없어보입니다. 바로 이 상황, 막차가 오지 않는 상황임을 기억하면서 다음 두 행의 언어가 말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막차(일반 기차가 아닌)가 오지 않고 있다+눈이 쌓이고=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요? 눈이 오는 겨울 밤(막차이니)에 추우면 어떻겠습니까? 거기서 톱밥난로는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난로야 현실에서는 방을 뎁혀주는 것인데, 앞에서 한 것처럼 막차를 기다리는 밤, 정거장에서의 난로라는 맥락적 의미로는 추위와 함께 답답하거나 우울하거나 지친 기분을 막아주는 것이 되겠지요. 아니나 다를까 앞에서 만들어 놓은 그 분위기처럼 다른 사람은 그믐처럼 어둡게 졸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왜 그리웠던 순간을 생각하겠습니까? 깨어있는 나 역시 막차를 기다리고 밖에는 눈오는 그런 정거장에 있으므로 그 시각 r 그곳에서의 기분을 피하려고 그리웠던 순간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때 난로에 톱밥을 던지는 행위는 무엇입니까? 자연스럽게, 이전에도 그랬듯이 자연스럽게, 나와 다른 사람의 추위와 부정적 기분을 쫓을 수 있는 행동이 됩니다. 그럼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런 내가 저렇게 잠들어 있는 공간을 바라보며 어떤 정서와 정서구조가 떠오릅니까?

 

자 이런 해석이 문제를 풀기에는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먼저 읽고서 알아야 할 것을 간추리고 그것만 파악하려고 시를 들여다보면 된다고 여기저기서 배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방법’을 여러분이 적용 가능하게 되려면 문제에서 간추린, 파악해야 할 최소한의 그것이 시를 보자마자 알아차리게 하는 그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문제 없이, 다른 보조 자료 없이 시 그대로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문제를 먼저 보고 시를 보면 시를 해석하는 능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주 잠깐만 등장하고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다리를 놓아 주어야 선택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에 따라, 43번 문제처럼, 또는 학생에 따라 시를 해석하는 능력을 더 필요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전을 위한 문제해결방법의 리허설이 아니라 평소 학습은 위와 같이 시의 모든 행을, 일관성이 있는 원리에 따라 해석하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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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고리예 · 529930 · 15/04/24 15:15 · MS 2014

    잘 정독했습니다.
    그런데 시 해석 부분에서
    그곳에서의 기분을 피하려고 그리웠던 순간을 생각한다는 것은 자의적이 해석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수능 지문 선지를 보니, 화자는 사람들의 내면에 공감한다는 것이 옳은 선지더라구요.
    즉, 화자가 그리운 순간을 생각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각자 졸거나 하는 등 개인들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본인도 과거로를 회상했다는 것"이 더 개연성 있는 해석이 아닐까요.

    자의적인 해석과, 보기를 이용한 개연성을 활용한 해석은 사소한 차이지만,
    문제를 풀이하는 관점에서는 정말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 글읽는소년 · 515854 · 15/04/24 16:25 · MS 2014
    위에 해석을 한 것은 시의 초반 3분의 1입니다. 전문을 다 하지 않은 것은 시를 해석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시든 비문학이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근거해서 이해하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해석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글이 제시한 근거를 기반으로 그에 상응하는 자신의 경험을 잘 연결한다면 주관적일지라도 의미 해석은 일정 범위 안에 있게 됩니다. 난로를 읽고 '따뜻하다'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겨울'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는데 어떤 경험이 '난로'와 더 강하게 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지만 겨울이 먼저 떠오르든 따뜻함이 떠오르든 다른 표현과 함께 마음속에 맺히는 상은 유사하게 나아갑니다.

    시 해석을 1/3만 했기 때문에 위 부분에서는 화자 가 자신과 동일한 공간에 있는 타인을 인지하면서 '자신의'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정서를 이야기하되 그것이 타인과 이어져 있음을 언급하면서 톱밥을 던지는 어떤 행위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서두와 같습니다. B부터 A(서두라고 말하겠습니다)를 더 풀어 이야기합니다. 타인과 연결됨만을 이야기했던 서두의 시적 상황을 좀 더 상세하게 들어가서 타인들이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짚어간 다음 그런 타인의 마음을 염두에 두고서 자신도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고 있습니다.

    제가 1/3만 해석한 건 수험생들이 이렇게 해석을 시작한 것을 보면서 전체를 해석하면 결국 보기와 같은 해석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3만 해석한 것을 전체 해석과 다르다고 보시면 안됩니다. 위에서 서두라고 표현을 했는데, 서두로부터 파악한 정서의 구조는 뒤로 가면서 다듬어지고 정교해게 됩니다.
    서두의 해석은 표면적인 정보에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동원하여 적절한 추론을 함으로써 가능합니다. 표면적인 정보를 잘못 읽거나 표면적인 정보와 무관한 경험을 연결한다면 '자의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제가 위에 적은 해석은 한 발 내딛고 보폭 범위 안에서 또 한 발 내딛는 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위의 해설은 <사평역에서>를 해석하기 위해 밟아나가야 할 유일무이한 길이 아닙니다. 지리산에서 빨치산이 토벌군을 피해 이동할 때 인원을 감추기 위해 앞 사람의 발자국을 밟아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획일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산길이라고 하는 일정 범위 안에서 근거있는 해석을 해나가는 것이 맞다는 것을 잘 아실겁니다. 산길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편안하게 실족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 이고리예 · 529930 · 15/04/24 16:58 · MS 2014
    수능 시험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수능에서의 시라는 것은 <보기>가 있다면 반드시 먼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출제하시는 분이 이런 식으로 분이 이런 관점으로 시를 해석해봐. 라고 던져놓은 것을 도외시한 해석은 결국 자의성이 가미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개인의 경험, 주관성이 가미된 해석은 문학 평론가의 몫이고, 수험생은 논리적으로 혹은 좀 더 범위를 넓힌다면 논리적인 개연성으로 답을 맞추기 위해 시를 읽어야 하는게 아닐까요.
    계속 딴지걸어서 죄송합니다. ^^;
  • 글읽는소년 · 515854 · 15/04/24 17:25 · MS 2014
    개인의 경험이라는 말에 태한 이해가 저와 다릅니다.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글이든 말이든 유입되었을 때 기억속에 저장해 두었던 바를 가져옵니다 1차적으로는 단어지식이지만 그 다음으로는 난로에 관한 느낌이 오지요 그것이 없다면 낙엽이라는 시어를 보고 쓸쓸하다는 분위기를 파악하겠습니까. 제가 말하는 경험이란 자의적으로 독자 맘대로가 아니라 보편적인 사람이 무엇을 읽었을 때 언어이해 과정에서 연상하는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보기에서 시를 해석하는 방향을 주고 있더라도 실전이 아닌 공부할 때에는 스스로 보기의 해석까지 도달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해석력이 약하게 됩니다 100m선수가 트랙에서만 연습하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연습은 확실하게 하고 실전에서 사용할 기술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도로 연습하면 됩니다
    그리고 난로를 보고 난로의 의미를 연상하고 다음 추위를 막아주는 것에서 현 상황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 난로에 톱밥을 던지는 것은 난로의 기능을 강화시키니까 어려움을 버텨내는 행위 등으로 추상화해 가는 것은 문학 해석에서의 논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글읽는소년 · 515854 · 15/04/24 17:36 · MS 2014
    방금 말씀드린 추상화 과정을 보시면 난로가 따뜻하다거나 따뜻하게 하는 것은 주변에 위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거나 추울때 식어가는 난로에 연료를 넣는 것은 제멋대로의 행동이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다 이런 판단이 되어야 시 해석이 잘못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지식과 경험이 직간접적으로 뒷받침되어야 가능합니다 심리적으로 짧은 순간에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가운데 일어나지만 실험을 통해 밝혀냈기에 이쪽에서는 지식을 일반인과는 다른 엄격하고 협소한 의미로 사용합니다
  • 이고리예 · 529930 · 15/04/24 22:40 · MS 2014
    시 해석에 대한 부분은 용어의 차이만 있을 뿐, 글쓴님과의 생각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추상적이였던 제 생각이, 말로써 정리된 부분을 보니 많은 배움을 얻은 것 같습니다.
    다만 학습에서는,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입장에서는 굳이 보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시 해석력을 높이고자 다르게 해석해 보겠다.'라는 것은 '과유불급'입니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미분을 로피탈의 정리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기>가 주어지지 않은 시는 사실 <보기>가 주어진 시보다 더 많습니다. 시 해석력 연습은 <보기>가 주어지지 않은 시로 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물론 국어에 할애할 시간이 많다면 해도 되지만, 문송한 문과생도 대부분 하루에 2시간 할애하는게 쉽지 않은데 이과는 이마저도 하기 힘듭니다. 근데, 하루에 2시간 해도 굳이 이상론적으로 공부하지 않더라도 점수가 나오더라구요.

    전역하고 나이들어서 수능 공부하는데, 3월 30일 작년수능 셀프테스트가 원점수 83점이었는데, 이번 주 종로 모의고사 및 마닳을 보면 대체로 0~2개 정도 틀리더군요.

    수험생 입장에서 국어는 '수능 국어영역의 문제를 출제자가 의도한 대로 올바로 사고하는 능력'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지(돈오점수죠. 다른 말 필요없이), 출제자가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공부하면

    '수능이라는 승부'에서 결과가 참 비참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게 메인이 아니지만, 메인처럼 되었네요.

    무튼 결론은, '시를 해석하면서 여러 방향성들을 사고하고, 이를 문제를 통해 좁힌다.'라는 제 문학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의 사고회로가 댓글들을 통해서 좀 더
    발전된 것을 느낍니다. 긴 댓글 감사드리고,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 포미니 · 562441 · 15/04/24 18:44 · MS 2015
    어..어렵다
  • 글읽는소년 · 515854 · 15/04/25 01:29 · MS 2014
    원 글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쓴 글입니다. 원 글과 댓글을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한 마디 더 남깁니다. 읽으시는 분들은 각자 판단하셔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시 해석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며 보기가 있는 문제라도 보기를 보지 않고서 해석하는 연습을 하라고 권했고 위의 이고리에 님은 그것은 불필요하다고 의견을 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상이한 의견을 보면서 누가 이겼느니, 누가 옳다고 생각하기 보다 '자신에게' 누구의 의견이 맞을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의견을 받아들일까 판단할 때 이과/문과의 학습목표가 다름을 고려할 필요도 있고,(이고리에님은 이과) 현재 자신의 성적 수준을 고려하여 판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이고리예 · 529930 · 15/04/25 06:01 · MS 2014
    문과생입니다, 저.
  • 아이로봇 · 557331 · 15/04/26 15:13 · MS 2015
    평소 연습할 때에는 보기 안 보고 시해석능력 기르고 시험 볼 땐 보기 먼저 읽고 푸는 게 좋은 거 같네요.
    보기먼저 읽고 푸는 건 기술일 뿐인데 기술이 주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