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속미분가능 [1007587] · MS 2020 · 쪽지

2022-07-07 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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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해피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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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해피 엔딩

하시즈메 슌키 


    But This is a happy ending

 그래도, 해피엔딩




셋, 둘, 하나⋯⋯ .


0이 되면, 너에게서 전화가 온다. 그렇게 기대하며 카운트다운. 벌써 몇 백 번이나 계속 센 거지. 애들처럼 주책이야.


환풍기 아래에서, 센치한 기분에 취해, 네가 피웠던 것과 똑같은 상표의 담배에 불을 붙여본다.


역시나일까, 익숙해지지 못하고, 기침을 했다.


폐가 화끈거린다.


그런 나에게 짜증이 난다. 


내 침이 필터를 적신다.


연기의 하얀 선이 환풍기에 삼켜져 사라진다.


마치, 너와의 관계처럼.



        *



태양은 중천에 떠 있었다.


투명도가 높은, 하늘의 푸름에 눈이 시렸다. 그래도 지지 않고, 나는 턱을 들었다. 비행운의 선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벚꽃길에는 축복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잔뜩 피었다. 나풀나풀  흩날리는 꽃잎 속에서, 모두 사진을 찍고, 하이파이브하며, 들떠 있었다.


일찍 기상해 미용실에서 땋은 검은 앞머리. 사실은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렌트한 기모노. 어떤 사람이 「인생의 여름방학 종료!」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소리치고 있다.


우리는 아름다웠다.


확실히, 미래는 이 손에 있었다.


왜냐하면, 너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줬으니까.


「졸업해도, 우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거야」


그 말을 나는 믿었다.



네 두피 냄새. 조금 길게 자란 손톱. 혀의 감촉. 아침놀에 물든 시트에는, 두사람의 모습이 주름으로 남아 있었다. 확실히 나는, 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날들은 어떻게 해도 지나간다.


비참할 정도로, 나와 너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움직여간다.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지금이다.



다니던 미대를 졸업하고, 너는 유명한 광고 대행사에, 나는 그 하청에 하청을 하는, 일러스트가 주력인 제작회사에 들어갔다.


4월을 넘으니 앞에 있었던 현실은, 단순한 조기 기상. 단순한 만원 지하철. 단순한 상사의 잔소리. 단순한 잔업. 그 「단순한」이, 너와의 시간을 부수고 갔다. 그리고 싶지도 않은 그림을 그리고, 갑작스러운 수정에 대응하고, 그렇게 해도 결국은 쓸모 없어지고, 아ー, 아마도 나는 지금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하니, 집에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주로 편의점 봉투나, 마시다 만 페트병, 국물이 눌어붙은 컵라면 같은 것들로 널브러진 어두운 방에서,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화면에 비치는 나, 자신이, 비웃으며 이쪽을 보고 있다.


바보 같아.


브이를 하고, 이상한 얼굴을 하고, 너에게 안겨서. 바보처럼.


이제 그런 얼굴은 할 수 없어.


그런 얼굴로 웃을 수 없어.



      *


가랑비가 내리던 그날, 너는 말했다.



 「왜, 이렇게 되버린 걸까」

 

「그걸 알았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우습지도 않은 주제에 웃었다. 그렇지 않으면, 울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웃어넘겼다.  콧물까지 흘리면서, 미친 사람처럼 웃는 나를, 너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말하지 않는. 그런 얼굴.로, 너는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너는 약삭빠르고, 교활해서. 만나는 빈도로, 대화의 조그마한 간격으로, 나에 대한 마음의 정도를 나타냈었지.


그래서 결국, 마지막 말마저, 내가 말하게 했고.


그래, 우리들은 「단순한」 전 애인 사이.


알고있어.


알고있어.


그런데,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그렇게나 너와 함께 있었는데, 방 어디를 둘러봐도 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입술에 일어난 각질이 시트에 스쳤다. 언제나 같이 있었던 침대에서도, 너의 냄새는 찾을 수 없었다. 눈물이 나지 않아서, 어쩔 줄 몰라서, 마냥, 코를 책상에 박고 있었다. 헤어지던 날, 자기 짐만 깔끔하게 챙겨갔던, 꼼꼼한 너를 원망했다.


너는 도망친 거야.


나에게서.


이런 몹쓸 나에게서.



        *




도망쳐 나온 회사에서 오는 전화도 더는 오지 않았다.


해가 저무는 동시에 눈을 뜨고, 해가 뜰 때 잠에 드는 생활. 그건 이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의지할 것은, 일단 들어온 지난달의 적은 월급. 과수면과, 운동 부족으로 아프게 된 허리를 어루만지면서 겨우 몸을 일으킨다. 오늘도 방은 어둡다. 탄산 빠진 콜라로 목을 적시고, 너무 자라버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추락. 학생일 때가 훨씬 나았다.


THE・폐인 그 자체. 지구상에서에 무의미한 생물 랭킹이 있다면, 분명 나는 꽤 상위권에 안착할 것이다. 이런, 무의미한 망상에 빠져들며, 절반뿐인 기대를 하며 카운트다운을 했다.


셋, 둘, 하나⋯⋯ .


영이 되기 직전, 전화가 울렸다. 너ーーーー인줄 알았지만, 대학 동기인 유리였다. 네가 아니야... 스마트폰을 벽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일단은 전화를 받았다. 유리는 일본화를, 나는 유화를 했다. 전공은 달랐지만, 동아리는 같아서 학생 때는 가끔 같이 술을 마셨다.


유리는 대학 졸업 후에도 취직을 하지 않고,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런 유리를 내심 바보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한치 앞을 모르는 시대에, 

재능만 믿고, 꿈을 쫓고. 어차피 필 수 없는 꽃인 주제에.


『너, 일 그만뒀다면서?』


다시 한번 말로 때리니, 꽤나 충격이 온다. 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은 거야? 아직 부모님한테도 말 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억지로 참으며 「뭐야, 놀리려고 전화한거야? 정말 못됐네」라고 대답했다.


『미안미안. 그런게 아니고, 이번에 개인전 하니까 오지않을래 하고 권유 전화한 거야.』


「개인전이라니, 그 개인 전시회?」


달리 뭐가 있을까, 웃으면서, 장소와 시간을 들었다.


『어차피 계속 집에 틀어박혀 있을 거잖아. 가끔씩은 외출이라도 하고 그러면 어때?』


시끄러워, 라고 내뱉어버리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



화장 같은거 해본 거, 얼마 만인걸까.


전에는 비교적, 꾸미는 걸 좋아하는 편이였다. 하지만, 일러스트 제작 회사에 들어간 후부터는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 거기에 기계처럼 계속 일하는 기분 나쁜 동료들과 매일 얽히며, 얼굴은 대충 마스크로 가리면 된다고 말하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당연히 집에 틀어박히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남에게 보여줄 일도 없으니 민낯. 나가려고 할 때, 거울에 비친 나는 조금 너무 기합이 들어가 버린 것을 느끼고, 화장을 조금 고쳤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조차도 짜증이 났다.


거리의 활기에 위축된 채로, 무거운 발을 질질 끌며 역으로 향했다.


자동개찰구의 삑ー소리마저 나를 위협해 오는 것 같았다.


지하철을 몇번이나 갈아타고 겨우 도착한 곳은, 다이자와의 어느 갤러리. 밖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 틈을 빠져나와, 조금 무거운 문을 열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하얀색을 베이스로 한 심플함이 가득한 내부로 청결함이 있는 공간.


그 벽 세 면이, 사계절마다의 꽃 그림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직 꽃이 피기 전인, 벚꽃. 가늘지만 단단히 지탱하는 가지에, 아직 피지 않았기에, 미래의 생명력으로 넘치는 여러 꽃봉오리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짙은 청색 꽃잎을 피운 수국이, 빗방울에 젖은 채로, 다소곳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여름날의, 해바라기. 향기조차 감돌 것 같은 늦가을의 금목서. 겨울의 혹독함을 견뎌내고 핀, 매화.


모두 생기가 돌았다. 상당히 섬세한 암석 가루와 물과 아교의 밸런스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색채.


「왔구나.」


말을 걸어올 때 까지, 스스로 매료된 것조차 몰랐다. 뒤돌아보니 진남색 원피스를 입은 유리가 히죽거리며 서 있었다.


「대단한데」 내가 말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마음속에서 나온 감상이 말로 흘러 나왔다.


「히히, 그런가」


「그런가라니, 이거, 계속 그렸던 거야?」


「응」


유리는 덧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화창하다고 말할 만한 그 미소가, 반대로 이 작품들에게 얼마나 혼을 쏟았는지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다른 관람객들이 이름을 부르자, 유리는 「네~」라고 활기찬 목소리로 답했다. 바빠 보였다. 화집이라도 사주면 좋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런 여유는 없다. 그럼 가볼게, 라고  말하며, 나는 유리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출구로 가려고 했다. 그 때, 팔을 붙잡혔다.


「너도 그려보면 어때」


유리는 웃지도 않고, 나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나 말이야, 네가 그린 그림, 꽤 좋아했어.」


들어본 적이 있는 대사였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너였다.


너는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의 첫 감상자였다.


「나, 네가 그린 그림, 좋아해」


지금 생각하면 조금 거만한듯한 감상이였지만,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별로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였으니까, 솔직히 기뻤다.

 

돌아오는 길에, 신주쿠에 있는 세카이도에서 20호 캔버스를 샀다.


저물어가는 석양이 내 볼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



사 온 캔버스를, 이젤에 세웠다.


마주 봤다. 새하얀, 아직 아무것도 없는 캔버스를.


이건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이 새하얀 세상에, 나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의 내가, 그릴 것. 그려야만 하는 것.


「알겠어?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반대로로 거기로 뛰어 들어야 하는거야」


예전에, 오카모토 타로는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네가 자랑스럽게 가르쳐 준 것이, 뭔가 그립다.


한참이나 서랍에서 잠들어 있었던, 붓의 감촉.


가볍게, 물통을 든다.


팔레트에 펼쳐진 열두 색의 그림 물감.


기름 종지에서 퍼지는 기름 개인 냄새.


천천히 숨을 내쉰다.


눈을 감는다. 붓 끝이 몸의 일부가 되어 간다.



나는, 너의 마을에 있다.


무인 코인 세탁소가 밤거리 속에서 빛나고 있다.



고쳐달라고 부탁해도, 완고하게 수리해 주지 않던 세탁기. 벗어놓은 두 사람의 옷을 비닐봉지에 집어넣고, 일부러 여기까지 세탁하러 다녔다.


「이쪽이, 더 깨끗하게 되는 느낌이잖아」라고 말하는, 너의 이상한 변명이 떠올랐다.


상점가엔, 사람의 기척이 없다.


고양이가 어딘선가 울고 있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야-, 야-, 야-, 라는 기이한 소리를 내며, 너의 자전거 뒤에 탔던 여름도 있었다. 정육점 고로케를 반으로 나눠 먹었던 겨울도 있었다. 운동회 밑창을 일부러 벗겨진 아스팔트에 긁어 대기도 했다.


어떤 가게든 셔터는 내려져 있고, 차디찬 달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맞잡고 걸었던 너의 손. 그 감촉. 그 온도. 계속,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아.


골목을 돌아. 좁은 길 양옆에 공동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선 길. 언제나, 비와 비슷한 냄새가, 이 골목에는 자욱했다.


너와 처음으로 키스한 곳이라서?


눈을 감고, 더듬더듬 입술을 갖다댄 너. 를, 사실 나는, 계속 보고 있었어. 가슴이 튀어오를 것 같았다.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의 나는 아직, 머리카락이 길었다.


만남은, 동아리 회식에서. 돈이 없으니, 집에서 마셨다. 장소는 너의 집이었다.


실컷 마시고 모두들 조용히 자고있던 늦은 밤중에 바닥에서 눈을 떴다. 


너는 옆에서 자고 있고, 잠결에 몸을 뒤척이던 찰나에, 발이 닿았다. 발뒤꿈치는 건조해서 바짝 말라있었다.


그, 두근거림.


너의 부드러운 자는 숨결에라도 닿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가 술에 취해 쓰러뜨린 창가의 꽃병에서, 물이 떨어졌다. 바닥에 생긴 물웅덩이. 반사된, 청명한 달빛이 예뻤다.


그리운 거리에서, 나는 소리쳤다.


너의 이름을 큰 소리로 소리치고, 대답이 들렸다.


아아, 이런 목소리였구나.


 그 목소리를 쫓듯이, 발길을 서둘렀다. 아니, 달렸다. 무릎을 높게 들고, 온 힘을 다해 달렸다. 관절이 닳아 떨어지더라도 지금 달리지 않으면, 계속 후회할거야.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나지막한 언덕에 있는 공원이 보였다. 예전에 놀았던 정글짐은, 모래사장에 조각그림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너는, 그네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긴 속눈썹을 깜빡이며, 「안녕」이라고 말했다.


나도 「안녕」이라고 말했다.


다음 순간, 언덕 너머로 펼쳐진 거리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사람의 삶은 빛이 되어 나와 너를 비춘다ーーーー .



방에 세운 캔버스에는, 너와 있던 거리가 있었다.


이제 곧 밤이 끝난다.


정신을 차려보니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기분 나쁜 땀은 아니였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붓을 팔레트에 놓았다.


실은쭉 함께 있으면서, 내 전부를 알아주길 바랐어.


약점, 못하는 일, 너에게 좀 더 많이 받아들여지길 원했어. 그래도 이십수 년간 계속 나를 살게 한 나조차도 나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니, 뭐... 무리인가.


희망이 없고, 네가 없어도, 나는 앞으로도 나를 살게 해야 돼. 너랑 함께 했던, 그리운 날들을 가슴에 꼭 껴안은 채로.


이제 나는, 절대로 카운트다운 따위 세지 않을 거야.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주문따위에 기댈 일은 없겠지.


적어도, 캔버스 안에 있는 두 사람의 풍경은, 해피 엔딩.


그걸로 난 만족해. 너에게서 오는 전화 대신에, 배의 알람시계가 울렸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엔, 가끔씩은 아침밥이라도 만들자.


그리고, 배부르게 먹자.


응.


그러자.


rare-billboard rare-여긴어디 나는누구 rare-U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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