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속미분가능 [1007587] · MS 2020 · 쪽지

2022-06-25 22: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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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토스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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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토스의 유혹


8월 15일. 해는 벌써 졌는데도 주변에는 무더운 공기가 남아있다.


아파트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내 몸에서는 땀이 끝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잘 있어"


그녀에게서 온 세 글자의 문자.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난 바로 알아챘다.


추석임에도 직장에서 일을 하던 나는 돌아갈 채비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파트 옥상, 울타리 밖에 초점 없는 눈을 한 그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투신자살을 시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이번으로 네 번째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한다.

삶에 대한 본능――"에로스"의 지배를 받는 인간과,

죽음에 대한 본능――"타나토스"의 지배를 받는 인간.


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전자지만, 그녀는 영락없이 후자였다.


그녀가 "타나토스"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라는 것은 그녀와 사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만난 건 지금처럼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그녀를 내가 도와준 것이 계기였다.


같은 아파트에 최근 이사 왔다는 여자. 동그랗고 귀여운 눈동자에 통통한 입술과 귀여운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어딘가 덧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는 한순간에 내 마음을 빼앗았다. 분명 첫눈에 반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고, 금세 친해졌다.

악덕 기업에서 근무하며 혼자서 외롭게 살던 나에게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자살을 시도할 때, 나에게 꼭 연락을 한다. 내가 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는 편이 확실하지 않나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만났을 때처럼 내게 자살을 막아주면 좋겠다고, 도와달라고 마음 어딘가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맘대로 해석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번에도 이렇게 아파트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하아, 하아…"


아파트 옥상에 도착했다.


울타리 너머에 서 있는 그녀의 등을 발견했다.


"기다려…!!"


울타리를 뛰어넘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무더운 공기와는 반대로 차가웠다.


"놔"


종소리를 닮고, 덧없이 귀여운 목소리. 난 그녀의 목소리도 좋아했다.



"왜, 그렇게, 너는…!"


"빨리, 죽고 싶어"


"대체 왜…!"


"사신이 부르고 있으니까"



그녀는 "사신"을 볼 수 있다. "타나토스"의 지배를 받는 인간 중에서도 흔치 않은 증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신"은 "타나토스"의 지배를 받는 인간만 볼 수 있다.



"사신 같은 건 없어"


"왜 몰라주는 거야…!"



내가 사신을 부정하면, 그녀는 늘 울부짖었다.


사신은 그걸 보는 자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모습을 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상형의 모습인 것이다.


사신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에게는 허공을 보는 거로밖에 안 보이지만) 그녀는 마치 사랑에 빠진 여자아이 같다. 그에 반한듯한 표정.


나는 그녀의 그 표정이 싫었다.



"사신 말고, 나를 봐"


"싫어…!"



그녀가 내 손을 뿌리치려 해서 나도 모르게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파…!"



"!미안해…"



하지만, 네가 잘못한 거 아닐까. 내 손을 뿌리치려 했으니까. 나를 봐주지 않았으니까.



"사신은 이렇게 안 해…!"



내 마음에 거무칙칙한 것이 몰려온다.



"어째서…!"



어째서, 나는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넌 나를 봐주지 않는 거야.


사신에게 질투하다니,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



"정말 싫어"



나도 싫어.



"이제 지쳤어"



나도 지쳤어.



"빨리 죽고 싶어"



"나도 죽고 싶어!!"



그때, 그녀가 얼굴을 들었다.



방긋 웃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를 보자마자 갑자기 거무칙칙한 것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라, 이거 혹시.



"드디어… 알아챈 거야?"



"응… 드디어 알았어"



"정말…? 다행이야"



아, 그런 거였어.

네가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나를 불렀던 건 내게 도움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어.

너는, 나를 데려가고 싶었던 거야.



내게 "사신"은 그녀였다.


서늘한 바람이 지나간다. 어느새 무더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갈까"



"그래, 가자"




손을 붙잡은 너와 나.



이 세상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초조함에서 벗어나듯이



밤하늘을 향해 달려나갔다. 




- <타나토스의 유혹>, 호시노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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