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맥주 [1088100]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2-03-06 01: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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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정시? ... 둘 다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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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이 글은 3월 24일 모의고사를 앞둔 고3 수험생분들을 주로 생각하면서 쓴 글이지만,

빠르면 11월부터 +1을 준비하면서 이미 심적, 신체적으로 지쳐 있을 재수생/N수생분들

(또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올 가을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무거운 예비 반수생분들),

내가 선택한 학교가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아직도 고민되는 두근두근 고1들,

그리고 분명 먼 길을 걸어온 것 같은데 더 먼 길이 남아 있는 고2들을 위한 글이기도 해요


수능 이틀 전, 오르비에 첫 응원글을 남기고 나서

정말 많은 분들께서 쪽지와 댓글로 물어봐주신 내용 중 하나가

"수시/정시 어느 것을 고를까요?"였는데요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 있지만 

감히 제가 어느 쪽이든 자신있게 이쪽으로 가시면 성공이에요! 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안 돼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어느 쪽도 잘 되지는 않았거든요.


저번에 올렸던 지균면접 후기글에서 밝혔던 것처럼, 

내신은 1.5배수 합격권/1배수 탈락권이었지만 구술고사에서 뒤집은 것이었고

수능은... 이번에 살펴보니 표준점수 1점 차이로 정시 2배수 컷에 간신히 올라서는 정도였어요.

(저희 때 정시는 1단계 수능 100%로 2배수 선발 -> 2단계 학생부 50 + 논술 30 + 면접 20)


저를 더 난처하게 했던 것은, 

지역균형선발에서 저를 탈락권으로 밀어넣은 물리 2등급이

하필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에 생겨 버려서, 이미 정시파이터로 돌리기엔 다소 늦은 시기였고


아래 수능성적 인증을 보면 아시겠지만, 수능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음에도

표준점수는 3월 -> 6월 -> 9월 -> 수능으로 갈수록 꾸준히 떨어져요.

(이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재수생/N수생 분들이 편입되고, 현역 친구들이 무섭게 쫓아오니까요...!)


하지만, 저뿐만 아니라 많은 합격생들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것은

처음부터 나는 수시충이다! 나는 특기자(요즘으로 따지면 학종 일반전형이라고 보시면 돼요)다! 

나는 정시파이터다! 라고 한 우물만 판 경우보다


(일반고의 경우) 나는 일단 교과를 최대한 가꿔 보다가, 혹시 잘 안 되면 수능공부해서 정시로 돌려야지~

(과고 조졸의 경우) 나는 학종/특기자로 될 것 같기는 한데, 안 되면 1년 바싹 수능공부해서 정시 보면 되지~

(갓반고/자사고의 경우) 우리 학교는 면학분위기니까, 수능+논술 준비해서 정시로 승부 봐야지. 혹시 잘 돼서 고2-3때 늦게나마 상 타면 특기자도 한번 찔러 볼까?


이렇게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해 놓았던 학생들이, 시험장에서 더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혹시나 재수, 삼수... 수험생활이 길어지면서 정시밖에 길이 남지 않더라도,

내신, 논술, 경시를 준비하며 쌓인 잡지식들이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 준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이 내용이 모든 고등학교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요

(이 글의 초점은 수시/정시가 공정하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려요!

그것은 정치의 영역이고, 더더구나 저의 능력을 많이 벗어나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제가 졸업한 소위 'ㅈ반고'의 경우 내신 관리를 통한 교과 준비가 유리하다면

반대로 과고/영재고의 경우에는 특기자 전형이, 

자사고 등 면학분위기가 잘 조성된 학교의 경우에는 면접 준비를 통한 학종 일반이나 논술고사, 또는 정시 준비가 유리할 수 있겠지요.

'아 잘못된 선택을 했어, 더 낮은 고등학교를 갈걸[또는 더 인지도 있는 고등학교를 갈걸]'이라고 후회하기보다는

선배들이 주로 어떤 전형으로 합격했는지를 보고, 본인의 선택지를 2개 이상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기억에 남는 선생님 중에 한 분이 제 고3때 담임선생님이신데요.

사실 멋은 정말 없으셨어요. 헤헤... 죄송...

50대 초반의 남자 영어선생님이셨는데요. 머리카락은 거의 다 벗겨지시고, 금테 안경에, 본인 조회/종례 때 반 친구들이 자리에 딱 정좌해 있지 않으면 꼭 한 마디씩 잔소리하셨던, 진짜 딱 전형적인 꼰대 느낌ㅎㅎㅎㅎ

그치만 정말 해 주시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틀린 말이 없으셔서 

반 친구들이 감히 대들거나 하지 못했어요.


그때 그 담임선생님이 처음 우리 고3 아침조회를 들어와서 

저희한테 못생긴 귤을 하나씩 나눠주시면서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솔직히 말한다. 난 좀 괴짜 같은 선생님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학생들을 키우고, 겨울방학에는 고향에 내려가서 귤을 키운다.

귤만 키웠으면 내 머리숱이 아직 남아 있었을 텐데, 학생들을 키우느라 내 머리카락이 다 빠져 버렸다.

그런데도 나한테 몇 년째 고3 담임을 맡기는 걸 보면 그래도 내가 못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자, 이제 내가 직접 키운 귤을 나눠 줄 테니 먹어 보아라."


다들 웃으면서 귤을 먹었어요. 귤은 좀 많이 신맛이 났던 것 같아요.


"어때, 맛있지? 사실 마트에서 파는 귤만 먹어 봤으면 좀 많이 실 거다.

하지만 유기농 귤에 익숙한 친구들이라면 제법 달다고 느낄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중에서 귤을 먹을 때

목을 촉촉하게 적시는 것은 수분이요, 단 것은 포도당과 과당이고,

신 것은 비타민 C이다, 이렇게 나눠서 먹는 친구는 없을 거다.

그저 손으로 덥석 집어서 '꿀꺽' 씹어 삼킬 따름이다. 그리고 그 향을, 맛을 즐기는 거다.


너희의 남은 1년도 이와 같다. 너무 복잡하고 디테일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아침에 눈을 뜨면, 그저 손에 잡히는 문제집 두세 권만 가방에 넣고 문을 나서라.

내 수업 때 국어, 수학 푼다고 맴매 안 한다. 쉬는 게 계획이라면, 쉬어도 된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허송세월하지만 마라. 

손에 잡히는 지식을 읽고, 감사한 마음으로 배우고, 문제를 풀어라.

어제 안 풀렸던 문제 하나가 오늘 풀린다면, 그날 하루는 웃으면서 집에 가라!

왜냐고? 수능 문제가 대략 200개, 수능까지 남은 날짜가 250일이다. 

모르던 문제가 하나씩 하나씩 풀려 나가면, 너희들이 수능 만점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또 하나. 1년을 너무 길게 보고 괴로워하지 마라.

달리 생각해 보면, 얼마나 좋으냐? 너희의 괴로운 1년이 금방 지나갈 수 있도록 선생님들이 미리 일정을 다 짜 두었다.

자, 봐라. 이제 이번 달 말이면 3월 모의고사다.

다음 달이면 4월 모의고사, 그리고 1학기 중간고사, 6월 평가원, 이제 재수생들한테 얻어맞고 울지 마라.

그리고 1학기 기말고사, 7월에도 모의고사 있으니까 공부 열심히 해라.

그러면 여름방학이지. 하루라도 놀기만 해 봐라. 집에 쫓아간다.

개학하면 곧바로 9월 평가원, 이때 또 재수생한테 얻어맞으면 이젠 니가 내년에 고3들 때리러 가는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다음에는 맥주도 공부 안 할 것 같은(제 얼굴이 빨개졌었어요) 하등 쓸데없는 2학기 중간고사, 그리고 10월 모의고사, 그리고 나면 수능이다.

그저 앞에 다가온 시험에 최선을 다해라. 난 수시니까 모의고사는 최저등급만 대충 맞춰야지,

난 정시 볼 거니까 내신은 그냥 버려야지... 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수시 떨어지면 그 해 정시 응시해야 할 거 아니냐?

또, 정시는 내년에도 볼 수 있는데, 올해 볼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수시 넣어 보기는 해야 할 거 아니냐?


하여튼, 잔소리가 길었다. 이제 너희들 노는 모습 보일 때마다 이럴 테니까 각오해라.

조회나 종례 시간에 다들 자습하고 있으면, 선생님은 보통 차렷, 경례만 하고 나간다. 알아 두도록.

올 한 해, 모두 건승을 기원한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어요(중간에 제가 하고 싶은 얘기도 막 끼워넣은 것 같긴 하지만요).





그냥 오늘 공부하다가 문득 선생님이 그리워져서,

그리고 3월의 첫 주를 무사히 보낸 수험생 여러분들을 응원해 주고 싶어서... 두서없이 적어보았습니다 ㅎㅎㅎ


추운 겨울, 외로운 공부를 끝내고 봄을 맞이한 여러분들을 위해

시 하나로 글을 마무리지으려고 해요


아이들아
아이들아
저 빈 들판
캄캄한 땅을 뚫고
찬 서리 찬 이슬에 반짝이며
세상에 눈을 뜨는
파란 보릿잎을
가을 벌판에서 보았느냐 아이들아
눈보라치는 허허벌판
언 몸으로 언 땅을 딛고
눈보라를 이겨 가는
저 작은 보릿잎과
하얀 잔뿌리를 보았느냐
아이들아
내 사랑하는 아이들아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새봄이 오면
저 빈 들판에
함께 푸르러지며
푸른 물결 치는
보리밭을 보았느냐
아이들아
겨울보리 같은 이 땅의 아이들아 


- 김용택 선생님, <보리 같은 아이들아>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3줄 요약


1. 수시/정시도

2. 자동차 고를때도

3. "HYBRID" 합시다




(그리고 쪽지로 인증 요청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서, 학생부/평가원 모의고사 성적 간단히 올려봐요.

보시다시피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답니다. 내신은 고2 2학기 때 2등급이 하나 떠 버리고...

수능은 수능대로 열심히 준비하는데, 표준점수는 점점 떨어지고... 정말 악으로 깡으로 밀고 들어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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