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불살조 [1127098] · MS 2022 (수정됨) · 쪽지

2022-02-25 00: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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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에 의대를 안 갔어도

또는 뭐 유명한 프로게이머가 돼서 이름을 알리고 성공하지 못했어도


멋있는 자기 자신을 만들어나갈 길은 수없이 많음.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않았으면 함.


객관적인 지표로 볼 때 여기서 나보다 더 병신인 수험생 출신이 누가 있겠냐?


4수까지 박아놓고도 수학 4등급에 결국 망해서 군대 와있잖아


국가공인병신이 한 마디 해보겠음.




보통 사람은 중고등학생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어느정도 자아라는 게 완성되고,


그렇게 20살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머릿속에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자신의 이미지라는 게 생겨있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갓 20살들은 실제 사회 현실에 부딪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부딪히는 일이 생길 때마다 매우 혼란스러워 함.


왜? 소년 시절 완성해온 자아는 이렇게 나약해서는 안 되는데,


이렇게 쉽게 힘들어하면 안되는 거 같은데,


겨우 이 좆만한 수능같은 걸로 힘들어하고 질질 짜면 안되는 거 같은데,


근데 실제로 해보면 좆나 힘들단 말임.


또 근데 그렇게 살면서 뭔가 도전하고 깨져보고 그러면서 경험을 얻고 자아의 내실을 다지는 건 누구나 겪는 거고 누구나 힘든 거임.




근데 그 과정 속에서 자꾸 마음 속에 열등감이 생겨나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수능이라는 시험이 다른 고시류랑 다르게 등급이 나오고 석차가 나오고 백분위가 나오다보니까


내가 전국에서 몇 등이고, 내 위에 누구 있고 내 아래에 누구 있는지가 너무 명확하게 보이는 시험이다보니까


내 위에 있는 사람 상대로는 열등감을 느끼고


내 밑에 있는 사람 상대로는 우월감을 느끼면서


그렇게 사람이 망가져가는 경우가 되게 많음. 특히 3수이상일수록, 나도 그랬고.




근데 핵심은, 자기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건


어떤 특정한 지표에 달려있는 게 아니라는 거임.


수능 전국 수석하면 내가 정말 나를 멋있게 여기게 되고 그게 평생 "완성된 나"를 만들어줄까? 절대 아니지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중간 목표로서 어떤 걸 상정하고 그걸 위해 노력하고 쟁취하는 건 멋있는 일이지만


그 지표 하나에 집착하고, 거기에 매달려서 살다간

점점 건강한 자기자신과 멀어지게 돼있음.




이건 비단 수능성적표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님.


외모, 성적, 심지어 SNS팔로워 수 등등


당연히 1등을 목표로 하고 열심히 노력해볼 수는 있는 거지.


근데 진짜 자기자신을 스스로가 멋있게 여기고,


다른 누구랑도 인생 바꿔준다해도 안 바꾸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 즉 자존감이라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그냥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 전체에 대해서

자기 자신 스스로가 존중할 수 있는가?

나 진짜 그래도 존나 멋있게 살았다고 스스로만큼은 확신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는 거지


실제로 니가 외모가 어떻고 대학이 어디고 롤 티어가 어디고 그런 건 매우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생각함.



나도 그랬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트레이트 4수까지 쳐망한 거 실시간으로 알려지고


진짜 조롱도 존나 받았고


그 과정 속에서 진짜 잃어버려서는 안 됐을 인연들과도 연이 끊어지게 되고


진짜 21수능 끝나고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왔는데



좀 시간 지나고 나니까


이젠 그냥 스스로가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건 그냥 다른 사람들한테 인정받고말고에도 별 상관이 없음.


그냥 누가 뭐라해도,


저새끼 실은 공부 제대로 안 한 거 아니냐


대충 편하게 수험생인척만 해서 망한 거 아니냐 등등


그 어떤 소리를 들어도


나 스스로만큼은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그 시간들을 버텨서 지금에 이른 내 삶 자체를 스스로 존경함.



누가 알아주든 말든 그것도 물론 어느정도는 신경도 쓰이고 기분좋고나쁘고 하겠지만


진짜 중요한 건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느냐의 여부이지




다시 돌아와서


07년생 의대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 사람이랑 인생 바꿔준다하면 바꿀 거냐?


라는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NO라고 할 수 있을,


"아니? 비록 의대를 들어간 건 아니지만 씨발 내 인생이 얼마나 멋있는데?" 라고 할 수 있을,


그런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일분일초를 살아보셈.


그게 수능이 되었건, 운동이 되었건 무언가 하나에 목표를 세우고 노력도 해보고..


그러다보면 문득 너도 모르는 사이에 멋있는 너 자신이 되어있을 것임. 





당연히 근데 수험생이면 이딴 병신같은 생각을 할 시간이 없이 공부만 해야되고


걍 공부를 제외한 생각은 최대한 배제시키고 없애는 게 정답임.


뭐 07년생 의대가 어쩌고 걍 그런 걸 아예 모를 정도로 공부만 하는 게 정상




더복서라는 웹툰에 보면 


"노력이라는 키워드는 보통 되게 열정적이고 뜨겁고 동적인 것으로 포장되게 마련인데,


실제로는 노력의 그 과정은 극도로 차갑고 정적이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토나올 정도로 질리고 차갑고 음울한 하루하루가 노력이라는 단어의 99%를 차지하고 있을 것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99%에 해당하는 좆같은 하루하루를 버티다보면


1%의 마지막 결실을 채울 수 있는 순간이 올 거다


그게 수능 성적표든 뭐든 간에








이만 똥글 줄이고 간다 ㅂㅂ -자이하르-





나도 이렇게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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