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3남 [517993] · MS 2014 · 쪽지

2014-11-26 17:13:33
조회수 3,499

2015 수능 D-1+ 수능당일 문과 현역 후기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120193

D-1


 


수능 전날에도 우리 학교는 여느 때처럼 떠들썩했다.


 


수험표를 받아들고 사진이 못생겼느니 짝수형이 홀수형보다 구리니 등등의 잡담을 뒤로한채 고사장을 방문하기 위해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운이 정말정말정말 좋았던지, 우리 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선택한 친구들과 같은 고사장에 배치되었고 정말 친한친구와는


 


같은 고사실을 쓰게되는 행운을 얻게되었다.


 


친한친구들과 같은 고사장과 고사실에 배치되었다는 안정감이 정말 사소해보이지만 큰 위안감을 주었던 것같다.


 


고사장과 고사실을 확인한 뒤에는 학교 근처에 있는 놀부 부대찌게에 가서 배터지도록 먹었다. 그리고 밥 그릇을 비울 때 쯤에


 


다시한번 오늘이 D-1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왔을 때 시간은 1시 쯤이였던 것 같다. 책 가방에 책을 부리부리 싸들고 오긴했는데 딱히 보고 싶은게 없었고, 봐도 더이상


 


소용이 없을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 난 TV를 키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마침 경기중인 NBA를 생방송으로 보는 여유(?)를


 


누리고, 농구 경기가 끝난 뒤에는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6시 쯤이었고, 어머니가 직장에서 돌아오셔서 밥을 해주셨다. 부대찌게가 미처 소화되지 않은 상태여서 밥은 제대로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모닝똥을 위해서 꾸역꾸역 먹었던 것 같다. 밥을 먹은 뒤에는 다시 TV를 켜서 보다가 어머니가


 


공부가 안되면 드라이브나 가자고 하셔서 따라 나섰다. 확실히 집에만 박혀서 우울하게 수능을 기다리는 것 보다는 드라이브를


 


하면서 어머니와 이야기도 하고 바깥공기도 쐬니 기분전환도 되고 좋았던 것 같다. 예비 고3들 수능 전날 약간의 드라이브 강추한다.


 


집에 돌아오니 약 9시 30분. 어머니와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긴장감도 어느정도 가셨고, 나는 샤워를 한 뒤 다시 한번 모닝똥을 위해
고구마를 먹고(고구마는 사랑입니다.) 사탐마무리 노트를 보며 나의 딜레마인 경제와 윤리와사상을 마무리했다.


 


침대에 누울때는 약 11시 10분 쯤이였던 것 같다. 난 평소에는 12시 전후로 잠을 잤지만 수능 1달전부터는 11시 30분 전후로 잠에
들려고 했고, 2주전부터는 11시 전후로 잠에 들기위해 노력했다.


 


낮잠을 잔 것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을 까 걱정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였던 것 같다. 난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면서 나름 편안하게 잠이 들었고,
일어날때 까지는 한번도 깨지않는 꿀 수면을 취했다.


 


D-day


 


6시쯤에 기상했다. 아침밥은 멸치볶음과 된장국, 계란 후라이 였던 것 같다. 평소에 아침을 잘 먹지 않는 스타일이였기때문에


 


아침밥은 정말 먹기 싫었지만, 그래도 국에 밥말아서 꾸역꾸역 먹었고, 모닝똥까지 깨끗하게 비워내면서 산뜻한 스타트를 느꼈다.


 


7시쯤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고사장으로 향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능 당일 내내 가장 긴장되었던 순간은


 


바로 차를 타고 고사장으로 향하는 순간이였던 것 같다. 머릿속에는 정말 이 순간이 온건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7시 20분쯤에 고사장에 도착해서 부모님의 최선을 다하고만 오라는 말을 새기며 고사장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선생님들이


 


응원을 하기위해 서계셨다. 평소에는 그렇게 밉던 일본어 선생님이 그날 따라 천사같이 보였다. 정말 익숙한 선생님들의 얼굴을 보고 응원을
들으니 힘이 솟았던 것 같다.(경찰 아저씨도 내게 사탕등을 주셨는데 붙어있는 스티커가 학교폭력 예방... 내 인상이 험악했나보다)


 


고사실에 들어가니 나보다 먼저와있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 고사실에서의 나의 자리는 전날에 이미 자리표를 통해 확인했기 때문에 익숙하게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좌석 앞뒤간의 거리가 생각보다 좁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자를 바꾸고 책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쌩쇼는 할 필요 없이


 


책걸상의 상태는 나에게 완벽했다.


 


자리에 앉아서 9평 국어 문제를 훑던 중에 나와 같은 고사실에 배치된 친구가 입장했다. 눈빛만으로 모든 걸 교감하고


 


아무말 없이 다시 9평 문제를 복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8시 10분 경에 안내 방송이 있고, 난 내 책을 포함한 가방을 교실 앞으로 제출하고 자리에 앉아 잠시 멍을
때렸다.(추천하건데 핸드폰은 안가져가는 게 좋은것같다. 당사자 뿐만이 아니라 그 고사실안에있는 모두를 위해)


 


8시 20분 예비령, 8시 30분 준비령 종이 치고 문제지가 배부되고 답안지에 이름과 필적확인란을 작성하였다.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B형 짝수형.


 


이 문구를 본 뒤에야 나는 비로소 수능임을 실감했다. 항상 9월, 6월 모의라는 단어가 들어있었는데....


 


문제지 인쇄상태를 위해 문제지를 확인하라는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나는 천천히 살며시 시험지를 넘겼다.


 


살며시 넘기다가 슈퍼문이라는 단어가 살며시 눈에 들어오고 그에 딸린 딱봐도 어려워보이는 활용문제가 있었다.


 


한 번 살며시 지렸다.


 


넘기다 보니 봐도봐도 어려웠던 관동별곡이 있었고(ㅅㅂ 이건 왜 계속 나오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만 봐도 지릴 것


 


같은 무영탑이 있었다. 쫄 필요없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시험지를 덮고 시작령을 기다렸다.


 


그리고 8시 40분 시험 시작.


 


예전에는 화법문제가 3문제+2문제 였는데 9평부터 이상하게 2문제+3문제로 배치했다. 정말 마음에 안든 배치였는데 수능에 또


 


등장했다. 기분이 별로 안좋았다. 


 


내 기억으로는 화법 문제중에서 4번? 5번? 이 두문제 정도가 옛날 유형하고는 달랐다고 느꼈다. 답이 정말 쉽게 찾아지지가
않았다.(수능이여서 일수도 있겠지만 수험생들 짜증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작문은 수월하게 풀어나갔는데 문법 11번이 뭔가 이상했다.


 


1번 2번 3번 4번 5번 다 맞는 말 같다.


 


나의 국어의 기술 7회독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문제는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결국 확실한 근거를 찾이 못하고 대충 답을 찍고
말았다.(이런적은 정말 한번도 없었고, 이렇게 하고싶지도 않았지만 이미 예상시간보다 오버됬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다시 미친 듯이 문제를 풀었는데 뜬금없이 등장한 맞춤법 문제.


 


이때 평가원 건물을 폭파시켜버리고 싶었다. 간단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날 당황시키기엔 충분했다. 깍두기를 고르고 쿨하게 2점을
날렸다.


 


그리고 어느덧 독서파트.. 시간은 9시를 약간 넘긴 상황(엄청나게 시간이 오버됬다)


 


모의고사를 통해 나는 내가 독서파트에서 시간을 단축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있게 덤볐다.


 


하지만 아와 비아의 협동 공격과 아속에 비아가 있고, 비아속에 아가 있다는 말도 안되는 언어유희 속에서 내가 체화시킨 국어의 기술의
이항관계는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분명하게 느낀 건, 지문이 개 어렵다는 점과 개 길다는 점, 문제들도 개 많다는 점이였다.


 


4문제가 딸려있었던 것 같은데 3문제는 무난히 풀었다(단어 문제가 있었던 거 같은데 솔직히 너무 헷갈려서 거의 찍다시피했다)


 


3점짜리 문제하나가 홀연히 남겨져있었는데 정말.. 엄마를 찾고 싶을 정도로 어려웠다. 어찌어찌 답을 고른채(처음있는 일이였다)


 


다음 지문으로 넘어가니 칸트의 미적 어찌구저찌구가 나온다. 이거 기출에서 본 내용인 것 같군. 약간 안심했다.


 


하지만 내용의 익숙함과 지문의 이해도는 별개였다. 뭔말하는 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동안 쌓아온 나의 국어본능 믿고 문제를 풀어나갔다.


 


이 이상 생각하면 문제를 다풀지도 못한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등장한 슈퍼문....


 


처음 타원의 두초점? 이거 나올때 캄피돌리오 광장이 생각 나면서 역시 지문의 익숙함을 느꼈다.


 


하지만 진짜 너무 화가나게도 정보량이 많다.


 


작년 cd문제 저리가라다.


 


지문 독해를 끝낸 이후 정신없이 첫번째문제를 풀었는데 이건 그나마 근거를 찾아서 잘 풀었다.


 


문제는 2번째 문제였다. 이걸 그냥 스킵할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1,2,3번 정답지는 내가 풀어낼수 있을것 같아서


 


제발 이안에 정답이 있게해주세요 하고 빌면서 지워나갔다.


 


근데 1,2,3번이 다틀린선지다. 정답을 고르려면 4,5번을 확인해야하는데 4,5번을 이해하고 확인해서 풀면 뒷문제 모두 못푼다는 생각에
과감히 5번으로 찍고 넘겼다.(그리고 난 3점을 까였다.)


 


비문학 다푸니 9시30분쯤이였다. 이렇게 시간이 부족한 적은 수능이 처음이였다...


 


극도의 긴장감속에서 관동별곡의 해석은 ㅈ같이 안됬고, 결국 보기와 짜맞춰서 어찌어찌 답을 구해냈다.(이미 난 신채호때부터 국어 시험이 아닌
본능 시험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무영탑... 아직도 이해가 가지않는 것은 중략 전과 중략 이후의 내용이 전혀 상관이 없는 두 개의 이야기라는 점...


 


차라리 현대 소설 2개내지그랬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사달과 아사녀하니 왜 나는 몽환의 숲이 떠오를까.


 


키네틱플로우를 원망하며 눈물을 머금고 문제를 풀었다.(근데 생각보다 문제는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지 극도의 긴장감을 주는 보기
문제가 2개 있었을 뿐이랄까)


 


그리고 10분 전을 알리는 종이 쳤다. 나는 현대시 파트를 남긴 상태였다....


 


엄청난 내적갈등상황. 마킹을 먼저할까? 먼저 풀까?...


 


일단 마킹을 했다. 빠르지만 정확하게 두번씩확인하며 마킹했다. 그리고 7분정도를 남기고 현대시 풀이에 들어갔다.


 


아는 시였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체감난이도는 이미2011학년도의 그레고리력을 넘어섰다.(누나가 수능을 본해가 2011학년도 인데
남매가 나란히 국어 용광로난이도를 경험하는 평행이론)


 


두 문제는 풀었지만 마지막 남은 45번(3점)이 너무헷갈린다... 1번이냐 3번이냐....


 


난 극도의 고민 속에서 일단 가채점 표를 작성했다. 그리고 1분정도를 남기고 1번에 체크했다.


 


그리고 빛의 속도로 가채점표과 OMR카드, 시험지를 비교하고 난 뒤 종이 쳤다....


 


감독관의 나가도 좋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이건 말도안되는 난이도라며 고사실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나의 친구와 눈빛 교환을 하고 서로의 운명을 짐작하고 사이좋게 미리 싸온 초콜렛을 씹으며 공황상태에 빠졌다.


 


다행히 그 친구가 마인드 컨트롤을 도와줘서 마음이 편해지긴 했지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을까...


 


이런 불행한 운명을 모른채 나는 멘탈을 부여잡고 수학 시험에 들어갔다.


 


이미 해탈의 경지, 잘보든 말든 신경쓸게 없었다. 내 스타일로 편하게 간다는 생각만 있었다.


 


인쇄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쭉 훑어보니 역시 30번은 개수새기...인가?라고 봤더니 6,9평모의와는 좀 다른 것 같아서 약간 긴장이
되긴했다.


 


그러나 고맙게도 수학은 빠른 멘탈 회복을 위해 교과서 수학 익힘책 난이도로 출제되었고, 30분만에 모든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남은 70분동안 시험지를 3번 더풀었다. 3번 더푸니 시간이 10분정도 남았고 그제서야 답안지에 마킹했다.


 


진인사대천명을 이럴떄 쓰는 말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수학시험을 마쳤다.(별다른 임팩트가 없는 시험이였다.)


 


여담인데 수학은 6,9모의를 잘 분석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9월 21번은 접선의 활용문제였는데 난 수능 21번을 풀며 바로 감이 오진
않았다. 그래서 설마 접선일까?라는 생각에 접선으로 놓고 풀었더니... 바로 풀렸다. 이런 수학적 직관은 기출의 반복과 6 9평가원 문제풀이를
반복하면서 길러지는 것 같다. 수포자들 화이팅 모두 해낼수 있는게 수학이다.


 


점심시간.


 


어머니는 아침 식사와 똑같이 멸치볶음에 계란말이 된장국을 싸주셨다. 바나나도 있었다.


 


친구들과 모여 그저 웃지요 라는 표정으로 점심을 먹고 추가로 초콜렛을 씹었다.


 


이제 시험의 결과보다는 해방의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던 것 같다.(=해탈의 경지)


 


1시 10분 영어시험 시작.


 


시험지 인쇄상태를 확인하며 천천히 넘기다보니 빈칸 추론 문제 내용들이 기억난다. 흡사 6월 평가원 모의고사의 재현을 느끼며 기분 좋게
듣기에 임했다.


 


놓치기 쉬운 1,2번 듣기 문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초반에는 듣기에만 집중했다. 이후에는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문제를 풀었다.


 


정말 쉽다. 너무너무쉽다. 쉽다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쉽다. 평소 모의고사와 비슷한 시간을 남긴 채 문제풀이는 끝이 났고


 


그래도 실수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1번씩 더 풀어봤다.(답의 근거를 확실히 찾는 계기가 되었다.)


 


이날 하루 중 가장 긴장감이 없었던 시험시간이였던 것같다.


 


 


영어 시험이 끝난 뒤 답을 맞추려는 소리들을 뒤로한채 사탐 정리 노트를 꺼내보며 초콜릿을 씹었다.


 


사탐만큼은 다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것 같다.


 


첫번째 사탐 윤리와사상.


 


2번문제였나? 플라톤에 관해서 지덕복 합일을 물어봤다. ebs스피드최종병기를 안봤더라면 난 정말 큰일날뻔했다는 생각이들었다.(사탐준비는
단언컨대 ebs로도 충분합니다.)


 


문제를 풀어나가다보니 9평 데자뷰인지 또 민주주의 비스무리한 것이 나왔고 공동체주의도 아닌 것이 세계주의인지뭔지 한번도 보지못한 사상도
나왔는데, 이런 건 보기만 잘보면 된다는 것을 9평때 깨우쳤기 때문에 가볍게 풀어나갔다.


 


헷갈리는 문제들이 얼핏 기억이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건  왕양명과 성리학 비교 문제... 내 후배들이 공부하느라 고생 좀 하겠다는 생각이
문제를 풀면서 들었다.


 


나머지 문제들은 그렇게 어렵다는 체감은 하지 못했으나 말장난도 아닌 것이 80%확신에 20%의 헷갈림을 주는 문제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제 풀이시간도 그렇게 부족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난 자신있게 풀었던 조선 유학 사상가 문제를 틀렸다.(무려3점)


.


 


두번째 사탐 경제.


 


사탐 소개를 하는 수만휘 게시글에서 경제는 신들의 전쟁이자 별들의 전쟁이라는 어구를 읽었다.


 


그동안의 모의고사에서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후배님들아 경제는 정말 비추입니다.)


그러나 이를 되돌릴 수 없기에 9평본뒤부터는 거의 경제를 하루에 1~2시간을 공부했었는데


 


이렇게 공부해도 수능 때 긴장되는 건 변합이 없었다.


 


9평41이라는 처참한 점수를 만회하기위해 노력했던 시간을 헛되이 하지않겠다는 생각으로 시험지를 펼쳐서 풀었다.


 


그런데 나의 체감상으로는 9평에 비해 문제들은 정말 쉬웠고, 딱히 등급을 가를 만한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부담감 없이 풀어냈다. 시간은 15분정도가 남았는데 다시 풀고 마킹까지 하니 5분정도가 남았다.


 


그리고 그 남은 5분동안 후회하지 않을 멍때림을 했다. 파노라마처럼 그 동안 공부했던 것들이 스쳐지나가고


 


그 환상은 종이 치면서 깨졌다.


 


 


 


 


수능이 다 끝난 뒤 나는 제 2외국어를 응시하지 않고 고사장을 나왔다.


 


부모님이 바쁘셔서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는데 다 끝났다는 개운함과 함께 밀려오는 허무감을 지울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끝이 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가니 일단 인터넷은 키기 싫었다. 가채점같은 건 해보기도 싫었고, 그냥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그리고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현실 도피였는지..뭔지)


 


어머니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 깼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제서야 나는 웃을 수 있었다.


 


그런 경우 다들 있을 것 같은데.. 자고일어나면 지난 일들이 모두 별거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상황...


 


그저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자랑스러웠고, 어머니도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안아주셨다.


 


약 2달동안 꺼놨던 핸드폰을 키고 문자들을 살펴보니 응원문자들도 참많이 와있었다. 안보기를 잘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응원 문자들 중에는 나랑 썸타던 친구의 문자도 있었기 때문에... 봤으면 심쿵때문에 시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게 잠시 끊었던 친구들과 연락을 하면서 집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친구들을 만났다.


 


하는 얘기야 뭐 수능 ㅠㅠ 이런거 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때문에 기분전환도 되고 노래방도 가고, 쇼핑도 하고.. 잠시
오늘이 수능이였단 사실을 잊은 채 놀고 11시에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가채점의 시간.


 


그동안 까지는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지만.. 그 시간이 되니 용감해졌다.(밤에는 감수성이 풍부해진다. 시련을 받고 싶었나보다.)


 


ebs가채점 서비스에 들어가서 국어를 먼저 채점했다.....


 


제발...90점만 넘기게 해주세요..... 가채점표의 답을 입력한뒤 채점버튼을 꾹 눌렀다.


 


86/100.


 


탄식이 나왔다... 고등학교 생활동안에서 받아본 가장 낮은 국어점수였다. 순간 컴퓨터를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나도 어려우면 남도 어려운거지...하고 위안하며 다른 과목들을 채점했다.


 


수학..자신있게 풀었는데 제발.. 


 


100/100.


 


수능 때 처음으로 100점나왔다. 69평 96 96이였는데... 나름 위안이 되었다.


 


영어.. 모의 때도 확신있게 정답을 찾아도 틀리는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에 시험이 끝나고 나서 좀 불안했던 과목이였다.


 


100/100.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 동안 불안에서 약간이나마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사탐.


 


두과목을 한꺼번에 채점하는 쫄깃함이 매력적이였다.


 


윤리와사상 경제 둘다 머리가 부서질듯한 고민을 한 문제들은 거의 없었다.


 


제발 다 맞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채점 버튼을 누르고 눈을 감았다.


 


부모님의 탄식이 들린다...  안되...


 


47/50 50/50.


 


부모님의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내 흐뭇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사교육 없이 이정도로 해준 것도 너무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며 안아주시더니 이제 다 잊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지내라고 말씀하시면서 잠을
자러가셨다..


 


그리고 난 약간의 뿌듯함과 허무감의 여운을 느끼며 컴퓨터를 끄고 씻은 뒤에 침대에 누웠다.


 


뭐랄까 거의 정시 올인이 였기때문에 가지고 있었던 재수의 두려움에서 벗어났다는 기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부모님이 뿌듯해하시는 모습이 기뻤던 것 같다.


 


그렇게 잠에 들었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수능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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