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녀뇨뉴 · 514037 · 14/11/04 05:27

    넵! 2차 미소공위가 실패하고 미소 양국이 대안을 제시하지만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이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 문제를 UN에 상정하고 UN총회에서 UN 감시하에 인구 비례에 의한 총선거 실시를 결정, 이에 따라 UN 한국 임시 위원단의 한국에 입국하죠.
    여기서 소련이 위원단의 입국을 거부하면서
    UN 소총회가(1948.2) 실시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 할것은 결정하죠. 이 것이 5.10 총 선거고요.
    이렇게 되면 분단이기 때문에
    김구와 김규식 등은 남북 협상(1948.4) 을 하게 되지만, 실패로 끝남으로써 분단되고 맙니다!
    님 때문에 저도 다시한번 찾아보게 되었네요!!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플루토늄 · 451090 · 14/11/04 08:35 · MS 2013

    통일은 지향했으나, 분단은 막으려고 하셨던 분이죠.
    정말 리얼 민족주의자.

  • ㅎㅈㅇㅈㅈ · 470756 · 14/11/04 11:23 · MS 2013

    신탁통치에 대해서 무조건 반대 입장취하셧던게 김구선생님 행보 중에 젤 아쉽네요.. 좌우합작에도 찬성하셨던분인데

  • 내여자Yeoni · 517950 · 14/11/04 17:25 · MS 2017

    넵 1947년 11월 국제연합 총회는 남북한 총선거를 결의했기때문에 당근 찬성이지만 소련이 반대하자 1948년 2월 국제연합 소총회는 남한만의 총선거를 결의하고 백범은 남북협상에 임하셨됴

  • bitheism · 509653 · 14/11/04 20:14 · MS 2014

    유엔총회 결의에 대놓고 반대는 안했지만, 견해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유엔총회 이전의 기본 가이드라인은 "선 임시정부 수립 - 후 총선"이었는데 임정수립을 위한 미소공위가 난항에 빠지자 유엔이 개입하면서 "임정 건너뛰고 남북총선거 이후 정부수립"으로 의제가 바뀝니다. 앞서 말했듯이 김구가 여기에 대놓고 반대는 안했겠죠. 어쨌거나 "남북총선거"니까. 그러나 결국 남한단독선거로 틀어지자 김구는 남북협상을 추진합니다. 거기서 나온 주장이 다시 "선 임시정부(좌우합작) 수립 - 후 총선"입니다. 김구 본인은 일관되게 "선임정 후총선"을 주장했다고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