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수능 언어 영역 문제 이해 안 되는 문제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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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 봐야 노루 꼬리만큼 짧다는 겨울 해에 점심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들은 학교가 파하는 대로 책가방만 던져 둔 채 떼를 지어 선창을 지나 항만의 북쪽 끝에 있는 제분 공장에 갔다.
제분 공장 볕 잘 드는 마당 가득 깔린 멍석에는 늘 덜 건조된 밀이 널려 있었다. 우리는 수위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마당에 들어가 멍석의 귀퉁이를 밟으며 한 움큼씩 밀을 입 안에 털어 넣고는 다시 걸었다. 올올이 흩어져 대글대글 이빨에 부딪치던 밀알들이 달고 따뜻한 침에 의해 딱딱한 껍질을 불리고 속살을 풀어 입 안 가득 풀처럼 달라붙다가 제법 고무질의 질긴 맛을 낼 때쯤이면 철로에 닿게 마련이었다.
우리는 밀껌으로 푸우푸우 풍선을 만들거나 침목(枕木) 사이에 깔린 잔돌로 비사치기를 하거나 전날 자석을 만들기 위해 선로 위에 얹어 놓았던 못을 뒤지면서 화차가 닿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화차가 오고 몇 번의 덜컹거림으로 완전히 숨을 놓으면 우리들은 재빨리 바퀴 사이로 기어 들어가 석탄 가루를 훑고 이가 벌어진 문짝 틈에 갈퀴처럼 팔을 들이밀어 조개탄을 후벼 내었다. 철도 건너 저탄장에서 밀차를 밀며 나오는 인부들이 시커멓게 모습을 나타낼 즈음이면 우리는 대개 신발 주머니에, 보다 크고 몸놀림이 잽싼 아이들은 시멘트 부대에 가득 석탄을 팔에 안고 낮은 철조망을 깨금발로 뛰어넘었다.
선창의 간이 음식점 문을 밀고 들어가 구석 자리의 테이블을 와글와글 점거하고 앉으면 그날의 노획량에 따라 가락국수, 만두, 찐빵 등이 날라져 왔다.
석탄은 때로 군고구마, 딱지, 사탕 따위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석탄이 선창 주변에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있는 현금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고, 때문에 우리 동네 아이들은 사철 검정 강아지였다.
해안촌(海岸村) 혹은 중국인 거리라고도 불리어지는 우리 동네는 겨우내 북풍이 실어 나르는 탄가루로 그늘지고, 거무죽죽한 공기 속에 해는 낮달처럼 희미하게 걸려 있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짚수세미에 아궁이에서 긁어 낸 고운 재를 묻혀 번쩍 광이 날 만큼 대야를 닦았다. 아버지의 와이셔츠만을 따로 빨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바람을 들이지 않는 차양 안쪽 깊숙이 넌 와이셔츠는 몇 번이고 다시 헹구어 푸새를 새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망할 놈의 탄가루들. 못 살 동네야.
할머니가 혀를 차면 나는 으레 나올 뒤엣말을 받았다.
광석천이라는 냇물에서는 말이다. 물론 난리가 나기 전 이북에서지. 빨래를 하면 희다 못해 시퍼랬지. 어느 독(毒)이 그렇게 퍼렇겠니.
겨울방학이 끝나면 담임인 여선생은 중국인 거리에 사는 아이들을 불러 학교 숙직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숙직실 부엌 바닥에 웃통을 벗겨 엎드리게 하고는 미지근한 물을 사정없이 끼얹었다. 귀 뒤, 목덜미, 발가락, 손톱 사이까지 탄가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왕소름이 돋은 등어리를 찰싹찰싹 때리는
것으로 검사를 끝냈다. 우리는 킬킬대며 살비듬이 푸르르 떨어
지는 내의를 머리부터 뒤집어썼다.
봄이 되자 나는 3학년이 되었다. 오전반이었기 때문에 한낮인 거리를 치옥이와 나는 어깨동무를 하고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커서 미용사가 될 거야.
삼거리의 미장원을 지날 때 치옥이가 노오란 목소리로 말했다.
회충약을 먹는 날이니 아침을 굶고 와야 해요. 선생의 지시대로 치옥이도 나도 빈속이었다.
공복감 때문일까, 산토닌을 먹었기 때문일까, 해인초 끓이는 냄새 때문일까. 햇빛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도, 치마 밑으로 펄럭이며 기어드는 사나운 봄바람도 모두 노오랬다.
길의 양켠은 가건물인 상점들을 빼고는 거의 빈터였다. 드문드문 포격에 무너진 건물의 형해가 썩은 이빨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제일 큰 극장이었대.
조명판처럼, 혹은 무대의 휘장처럼 희게 회칠이 된 한쪽 벽만 고스란히 남아 서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치옥이가 소곤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곧 무너질 것이다. 나란히 늘어선 인부들이 곡괭이의 첫 날을 댈 위치를 가늠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희고 거대한 벽은 굉음으로 주저앉으리라.
한쪽에서는 이미 헐어 버린 벽에서 상하지 않은 벽돌과 철근을 ㉠발라 내고 있는 중이었다.
아주 쑥밭을 만들어 버렸다니까.
치옥이는 어른들의 말투를 흉내 내어 몇 번이고 쑥밭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사람들은 개미처럼, 열심히 집을 지어 빈터를 다스렸다. 반 자른 드럼통마다 조개탄을 듬뿍 써서 해인초를 끓였다.
치옥이와 나는 자주 멈춰 서서 찍찍 침을 뱉어 냈다.
회충이 약을 먹고 질랄하나 봐.
아냐, 회충이 오줌을 싸는 거야.
그래도 메스꺼움은 가라앉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해인초의 거품도, 조개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도, 해조(海藻)와 뒤섞이는 석회의 냄새도 온통 노란빛의 회오리였다.
왜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해인초를 쓰지? 난 저 냄새만 맡으면 머리털 뿌리까지 뽑히는 것처럼 골치가 아파.
치옥이는 내 어깨에 엇갈린 팔을 무겁게 내려뜨렸다. 그러나 나는 마냥 늑장을 부리며 천천히 걸어 해인초 냄새, 내가 이 시(市)와 나눈 최초의 악수였으며 공감이었던 그 노란빛의 냄새를 들이마셨다.
- 오정희, 중국인 거리 -
29. 위 글로 미루어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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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할머니-아버지-'나'
...? 이것도 삼대 집안이라고 합니다..;
2. 태어날 때부터 그 중국인 거리에 살았다면 메쓰꺼움, '최초의 악수' 등의 표현을 쓰지는 않았겠죠. 이미 눈에 익숙한 풍경들일테니까요. 저 표현들은 '나'가 '중국인 거리'에 대해 낯설음이 있었다는걸 나타내는 표현들인 것 같네요.
증조 말입니다 증조 증조가 있다면 4대인데 증조가 있는지 없는 지 모르잖아요
그리고 최초의 악수를 내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최초의 악수라고 할 수도 있지 않나요? 태어날 때부터 해인초의 메스꺼움을 경험했다. 그래서 해인초 냄새를 고향과의 최초의 악수라고 표현한 거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건 저 표현이 필연적인 근거는 아닌 것 같아요
'윗글에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나'의 가족 중에 증조대는 언급되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글 안에서 삼대 가족이구나를 추론하는 거예요. 사대 가족인지 글에 안 적혀있는데 증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저 선지를 틀렸다고 처리할 순 없죠. 그렇게 따지면 고조대까지 살아있다고 생각해서 오대 가족도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최초의 악수'라는건 그 동네와 정서적 교감을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뜻이에요. 그곳이 고향, 즉 태어나서 자란 곳이라면 그러한 교감을 굳이 '최초로 ~를 했다'고 말할 필요는 없었겠죠. 자율적이든, 타율적이든간에 고향에서 자라났으면 그 고향을 계속 보게 되는건 자명하지 않겠나요.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지했을 것은 아니란 겁니다.
글 안에서 추론해야 한다는 말은 당연히 맞죠, 동감합니다. 근데 그거랑 좀 다른 얘기인 것 같아요. 그냥 글에서 할머니의 존재가 언급되었을 뿐이지 그걸로 윗글에선 할머니까지만 언급되어있다고 삼대구나 라고 추론하는 건 논리적이라고 볼 수 없지 않나요? 마치 누군가의 가방에서 5가지 물건 중 3가지 물건만 눈으로 확인 했다고 해서 그 가방에 있는 내용물이 총 3가지 물건이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요 지문에 의거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말과 이 문제는 다른 문제라 생각합니다.
최초의 악수는... 생각해보니 태어날 때부터 해인초 냄새를 첫 인상으로 삼진 않을 듯 하네요. 최초의 악수라는 게 이 동네를 마주한 첫 인상 이라고 생각한다면요 이건 좀 정리가 된 것 같네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오로지 '글 안에서만' 생각해야 합니다.선지의 내용이 지문에서 최소한의 근거를 수반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된다구요.
증조대가 가족 중에 존재하는지를 논하는건 글쓴분 본인이 생각한 내용 아닌가요.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께서 가족으로 계신다는 걸, 아니 최소한 그렇단걸 암시하는 근거가 있나요?
'있을지도 모른다'는걸 '있다'고 표현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말에 깔려있는 전제는 '없다'에 더 가까워요. 거기서 '있다'고 생각해버리면 본인의 주관이 개입된 겁니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로 글에서 확인한 사실을 재구성해서 적당한 선(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정도)에서 추론해낼 수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가족 중 할머니의 존재가 직접적으로 언급됐기에 글 안에서 '나'의 가족은 할머니께서 계시는 삼대 가족 정도가 되겠구나를 이해하는 겁니다. '알 수 없다'는건 '없다' 정도에서 끝내시는게 좋아요.
음 제 말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은데 오로지 글 안에서만 생각했을 때에도 문제가 되는 겁니다. 제가 증조를 굳이 언급한 게 오로지 글 안에서 생각을 안 해서가 아니구요 할머니가 지문에 나와 있으니 가족이 삼대다 라는 추론이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다 다시 말해 반례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는 걸 말하기 위해 끌고 온 겁니다. 제 주관적 생각을 개입시켜서 지문에 근거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거죠.
님이 말씀하신 윗글에만 의거하는 것 저도 그 기준에서 얘기하는 겁니다. 윗글에 할머니까지 언급되어 있다 = 나의 가족은 삼대다 ? 아니라는 거죠. 이게 오히려 윗글에 나와 있지도 않은 내용으로 확대 해석한 것이라는 거죠.
그럼 주어진 상황에서 그 이상을 생각해낼 수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가능성'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시면 현행 국어 시험지의 문제 절반은 중복 정답처리예요. 국어 시험은 수학 시험이 아닙니다. 비록 그 외의 정보가 글 내용과 위배된다고 해도, 문제 해결 상황에서 주어진 조건이 글 내용뿐이라면 그 안에서 생각해야죠.
문학은 개연적인 해석이 어느정도 용인되는 편입니다. 진짜 말도 안될 말이 아닌 이상 최소한의 근거로 낼 수 있는 결론도 틀리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정보는 일단 '나'의 가족 중 할머니가 계신다는 겁니다. 다른 가능성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확실하게 받아줄 수 있는 정보가 지문 내에 하나도 없어요. '할머니가 계신다'는 최소한의 근거로 ''나'의 가족은 할머니 아버지 '나' 이렇게 삼대로 구성되어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겁니다.
만약 지문 내에서 '그럴지도 모른다'는걸 확실하게 입증해줄 정보가 있다면 글쓴분의 진술도 적절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런 정보는 안 보이네요.
할머니 아버지 나까지 이어지니까 3대...ㅠ
각설이 님 댓글 다는 버튼이 없네요 이제 좀 기준선 같은 게 잡히는 것 같네요. 문학의 특성과 최소한의 근거 거리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걸 좀 생각해보니 이해가 조금 됬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제 학습거리 중 하난데 계속 댓글 달아 주신 거 감사합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