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가처음 [977892] · MS 2020 · 쪽지

2022-01-25 2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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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건 아닌데 인생 산 얘기좀 들어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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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ㄱㄴ 아마 스압일거임


05년생임. 지금은 자퇴생.. 집이 어릴 때부터 풍족한 편은 아니었음. 그렇다고 막 가난한 것도 아니지만, 딱 애매하게 부족해서 남들과의 격차 느끼기 딱 좋은 정도. 와중에 외가 다른 분들은 다 좋은 집 사시고, 되게 화목해 보이더라. 의사, 선생님, 잘나가는 회사 등등. 우리 집은 그랬던 적이 없는데. 우리 집도 화목했던 적은 있었음. 엄마가 술을 안 마시고, 아빠가 화나기 전까지. 딱 그 전까지는 화목했음. 엄마는 짜증이 많았지만 내 성격이 워낙 순했고 원래부터 많이 혼나면서 자라는지라 기가 많이 죽어있었어서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음. 아빠도 가끔 화를 낼 때가 많았지만 그것도 괜찮았음. 문제는 부모님이 많이 싸우셨다는 거. 아빠는 엄마를 때리고, 그럼 엄마는 또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느라 늦게 들어오고, 나는 밥을 혼자 챙겨 먹고. 익숙했음. 괜찮았어 나름대로. 엄마가 새벽 꼭두새벽이 되기 전까지 들어오지 않은 날에는 우산 들고 찾으러 다닌다고 온 동네를 들쑤셨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참을 만 했음. 난 순한 성격으로 만들어졌고 그러는 게 여러모로 나았으니까. 비록 머리가 타고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외모가 타고난 것도 아니라서 학원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다 외모로 전에 시비붙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패드립을 먹고, 저런 딸도 낳고 자식이라고 미역국 먹었을까 하는 말을 들어도 나는 괜찮았음. 허벅지가 두껍다는 말을 들어도, 얼굴이 못생겼다는 말을 들어도 나는 괜찮았음. 그럭저럭 참을 만 했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건 너무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과의 간극이지 저 정도 어리고 못 배워서 뱉어내는 말들이 아니었음. 솔직히 타고나게 예쁜 건 아니지만 나름 봐 줄 만하게 생겼다고 생각해서 별로 걱정하지도 않음. 수능 끝나고 대학 붙으면 코는 고치고 싶긴 한데 ㅋㅋㅋ 그건 논외니까.


우리 집은 좁았음. 어느 정도였냐면, 초등학교 때에 친해진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해 놔도, 친구들이 약속 있다고 금방 다 가 버릴 정도로. 난 그 날 시간 비었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씁쓸하지만 뭐 어쩔 수 없었음.

부모님은 매번 싸우고 교우관계도 좋을 수가 없었음. 책으로 빠짐. 초등학교 중학교 모든 책을 집히는 대로 다 읽음.

간간히 서점에서 사 온 새 책들은 닳도록 읽었고 집에 있는 갈아치우지 못한 어린 책들도 나름 다 읽어제꼈음

내 방에는 커다란 곰팡이가 있었음. 왜 서울인데 서울 아닌 그런 곳 있잖아 ㅋㅋㅋㅋ 그런 곳이었음. 커다란 아파트 단지들 옆에,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있는 곳이 내 집이었음. 아 생각하니까 눈물나네.. 어린 맘엔 부럽기도 했음. 나중에는 그게 묘하게 사회에 대한 분노로 바뀌더라. 집에서 온갖 깨지는 소리가 나도 신고 한 번 없던 이웃사람들, 잠옷 차림으로 밖으로 뛰쳐나와 막무가내로 버스 정류장 앞에 앉았는데, 나는 그 때 입술도 찢어져 있었는데, 힐끗 바라보고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사람들, 그 때 버스 정류장에서 오래 울었음. 버스 카드도 안 들고 나와서 갈 곳도 없고, 날 받아줄 곳도 없었음. 사정을 설명하면 도움을 줄 따뜻한 친구와 친구의 부모님도, 이 와중에 번쩍번쩍한 서울의 불빛들은 더 원망스러웠음. 지금도 그 동네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난다 좆같은 추억밖에 없어서.


아무튼,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광이었음. 많이 어릴 때부터 깨달았음 내 입지를 바꾸고 내 주변 사람을 바꾸고 내 시야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적어도 공부밖에 없다는 걸, 지금은 그렇고 이 나라에서는 더 그렇다는 걸 의외로 빨리 깨달았음. 초등학교 2-3학년인가? 처음으로 구몬이란 걸 해 봤는데, 괜찮더라고. 4학년 들어서는 매일 하루도 안 빼고 새벽 5시에 일어남. 일어나서 창문 밖 좀 보고, 구몬 우다다 풀고 책 읽고 다른 공부도 해보고 하는 게 일상이었음. 달리 힘들다거나 불만은 없었음. 난 이 생활에 이골이 나 있었고 바꿀 수 있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애매한 사람이니 불가능할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음. 예체능에 재능이 있는 것도, 얼굴이 예쁜 것도, 매력이 있는 것도, 비율이 좋은 것도,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성공하고 싶었음. 무조건 성공해서 나랑 비슷한 아이들을 구제해주고 싶었음. 문제집 한 권 더 사주고, 편지 하나를 더 써주고, 돈을 더 벌어서, 그렇게 도와주고 싶었음. 다행인 건 언어재능을 타고났다는 점이었음. 언어에 한해서는 뭐든지 빨리 배웠음.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 것 같긴 해. 그래서 지금도 일타들이 책 많이 읽으세요 하면 공감함. 덕분에 국어 영어 둘 다 1등급.


암튼 어두운 디테일들 다 스킵하고, 이사를 감. 신도시였음. 지금은 아주 반짝반짝 다 좋아졌어 들어올 땐 아무것도 없었는데. 근데 여기서도 가정사는 더 안 좋아지고, 경찰이 오고, 고모가 와서 난동을 피우고, 결국 이혼함. 난 보고 배울 게 더 많은 외가를 택함. 적어도 공부 면에서는 더 성공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이혼하면서 정신건강 지랄남. 정확히는 전부터 지랄났는데 더 지랄남. 정신과를 감. 공황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진단받음. 약을 떼거지로 먹고 상담을 다님. 자살시도하겠다고 난리피웠을 때가 여러번인데 지금은 괜찮음.


나중엔 몸만 보고 다가온 사람한테 (난 진심으로 좋아했음) 이용 비슷한 것도 당한 것 같지만 괜찮음. 걔가 날 좋아했던 말던 상관은 없음. 했던 행동들이 쓰레기 그 자체라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세상에 남자 걔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나 싶다. 상담쌤이 많이 달래줌. 그런 새끼는 연애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 뭘 했던 안 한걸로 치면 된다고. 알겠다고 했음. 난 정말로 좋아해서 다 퍼줬지만, 왕복 3시간에 가까운 거리를 매번 왔다갔다 하며 만났지만, 걔가 내 동네에 온 적 한 번도 없지만 정말로 괜찮음. 뭐 어쩔 수 없지 존나 좋아했는데 어쩔거야. 친구들이 쎄하다 할 때 쨀걸 하는 후회는 조금 있음.


지금은 재수학원 이리저리 알아보는 중임. 내일 노대랑 노메 상담가려고. 아빠는 양육비도 요즘엔 안 주고 있는 것 같음. 80밖에 안 주면서 그것도 안 주면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음. 엄마는 콜센터 쪽 일 하셔서 많이 받는 편도 아니시고. 현역까지 딱 나이 맞춰서 24까지 끝내야 하는데 자신도 없고. 재수학원은 백 얼마씩 하던데 거기서 생활비, 세금, 식비, 이리저리 다 빼면 엄마 월급으로 저축이나 될까 걱정이다. 엄마는 이런 거 걱정하지 말라고 막 울던데 어떻게 걱정을 안함. 여전히 엄마는 술을 마시고, 나는 외동이고, 그렇지만 괜찮음. 유시험에 자신이 없어서 (국어는 자신있는데 수학이 자신없음) 치긴 칠건데 이것도 좀 불안불안하고. 죽도록 공부했는데 대한민국 탑인 대학이 욕심나긴 함. 지금 모의고사 성적도 11111~11211인 것도 있어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들고 ㅎㅎㅎㅎ 의대 꼭 가야겠다 싶음. 거기서 배우는 공부가 너무 매력적이라 좋음. 응애 애기 시절일 때는 딩초일 때 막 약물 이름이랑 효과같은 거 정리해서 액셀 파일도 만들고 그랬는데 이건 너무 티엠아인가? 아무튼 그렇다고. 요즘엔 하루 17시간 공부 2시간 휴식 5시간 잠으로 인생을 때우고 있음. 현우진 최고. 와아아아!!! 현우진 강의 듣다가 현타와서 쓰는 글임. 다시 얼른 인강 들어야겠다.. 오늘도 밤 새야겠음. 여기까지 봐 준 사람 있으면 고맙고.. 어... 인강 들으러 가야지 아무튼 감사합니다. 23수능 화이팅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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