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트인 [834163] · MS 2018 · 쪽지

2022-01-05 19:36:25
조회수 2,982

2021 도쿄대학 본고사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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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때 보기 좋은 본고사 시리즈

레이와 3년에 치뤄진 도쿄대 본고사 중 지리역사 영역 가운데 세계사 과목입니다

수능이랑은 크게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심심풀이 삼아 보면 좋답니다

파파고 썼습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어요 양해해주세요...


해당 문제의 저작권은 도쿄대학에 있습니다.

令和3年度第2次学力試験試験問題 | 東京大学 (u-tokyo.ac.jp) 

https://www.u-tokyo.ac.jp/ja/admissions/undergraduate/e01_04_21.html


시험 문제들의 테마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발현된 3개의 문화권의 발전과 변화 / 역사상의 신분과 불평등 / 인류의 이동


재수학원 요요기제미날에서 발표한 모범답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서구 지역에서는 게르만인의 대이동이 계속되어, 5세기 후반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였다. 대신 프랑크 왕국은 클로비스 1세가 아타나시우스파로 개종하고 구 로마계 주민과 융화하여 세력을 확대했다. 6세기엔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로마 제국의 부활을 목표로 정복 사업을 행했으나, 황제의 사망 후 포기되었다. 7세기경부터 비잔티움 제국은 그리스어가 공용어가 되었고, 그리스 정교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권을 확립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단인 단성론파를 탄압했기 때문에 시리아와 이집트 주민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슬람 세력은 이들의 불만을 흡수하는 형태로 지중해로 진출했다. 그러나, 우마이야 왕조에선 개종한 마울라에게도 지즈야를 부과하였기 때문에 비 아랍인의 불만이 심해졌고, 8세기 중반 아바스 왕조가 우마이야 왕조를 멸망시키자, 무슬림의 평등이 달성되고 주민의 이슬람화가 진행되어 이슬람 제국이 완성되었다. 같은 시기 비잔티움 제국의 레온 3세는 기독교권의 기강을 잡기 위해 성상숭배 금지령을 내렸으나, 6세기 말 교황 그레고리오 1세 이후 성상화를 이용한 게르만인의 포교를 추진중이던 가톨릭 교회는 반발하여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우마이야 왕조를 꺾었던 프랑크 왕국에 접근했다. 교황 레오 3세는 카롤루스 대제를 서로마 황제로 대관시켜, 게르만·가톨릭·로마의 문화가 융합된 서구 세계가 확립되었다. 양 기독교회는 발칸 반도로 이주한 슬라브인들에 대한 포교를 추진하여 세력권 확대를 위해 경쟁했다."


지중해권과 관련한 중세 시대 3개 문화권(가톨릭, 정교회, 이슬람)의 형성 과정을 묻는 문제입니다.

서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난 이후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까지 이어지는 가톨릭 문화권

그리스어를 받아들이고 정교를 기반으로한 비잔티움을 중심으로한 정교회 문화권

우마이야 왕조의 몰락과 이슬람의 황금기를 이끈 아바스 왕조 시기의 이슬람 문화권의 형성 과정을 잘 알고 있어야 했던 문제입니다.

제시어 중에서는 그레고리오 1세, 발칸 반도 등이 킬러가 됐을 거라고 추측하더군요.


(2)

(1) (a) 화폐경제가 사회에 침투함에 따라 부역에서 화폐 지대로의 전환이 일어나, 농민의 경제력이 향상되었다. 또한 한랭화나 흑사병의 유행 등으로 농민의 수가 급감했기 때문에, 노동력 확보를 위해 영주가 농민의 대우를 향상시켰다. / (b) 농민은 인격적으로 해방되었지만, 농지의 취득은 유상이었다. 또한 매입금의 완제까지 농지는 미르에 인계되어 연대 책임이 되었기 때문에, 생활은 미르에 의해 속박되어 개선되지 못했다.

(2) (a) 호세 리잘 / (b)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미국이 미국-스페인 전쟁을 틈타 이를 지원했다. 그러나 미국이 전쟁에 승리하고 파리 평화조약에 의해 필리핀의 영유권을 획득하자, 미국-필리핀 전쟁을 일으켜 에밀리오 아기날도를 이겨내고 식민 통치를 개시했다.

(3) (a) 아파르트헤이트 / (b) 백인과 흑인의 생활 영역이 격리되면서 흑인은 많은 사회적·경제적 차별을 받았다. 1980년대에 냉전이 완화되자 서방 여러 국가들이 경제 제재를 부과하게 되었고, 국내의 반대운동도 격화되어 철폐되었다.


역주:

미르(мир): 알렉산드르 1세 시기 러시아의 농민 공동체


(1)번은 기출이었던 테마여서 꽤나 쓰기 용이해 주 득점 문제로 삼았다는 코멘트가 있더군요. 중세말기 서유럽의 경제상을 이해하고 있었어야 되는 문제였구요. (b) 또한 농노해방 당시 러시아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어야 됐습니다.

(2)번은 필리핀의 독립 시기에 초점을 맞춘 문제여서 미국의 움직임에 주의해서 적었어야 한다는 요요기의 평이었구요.

(3)번 같은 경우는 (a)야 말 할 것도 없겠지만, (b) 같은 경우에 아파르트헤이트의 폐지 요인을 국제정치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어야 해서 난해할 수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남아공은 이 때문에 과거에 월드컵과 올림픽도 출전이 금지되었습니다.)


(3)

(1) 안사의 난

(2) 양시칠리아 왕국 (노르만-시칠리아 왕국) ※

(3) 가즈니 왕조

(4) 메스티소

(5) 정성공

(6)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7) 마오리족

(8) 아일랜드 대기근(감자기근)

(9) 대한민국 임시정부

(10) 베를린 장벽


(1)번의 경우엔 안록산의 난이 아닌 안사의 난으로 적는게 중요했고, (6)번은 아이티 혁명의 지도자였던 투생 루베르튀르와 헷갈리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하긴 했는데... 프랑스 지도자의 이름이라 적혀 있으니까요 뭐 ¯|_(ツ)_/¯

그리고 (8)번의 경우엔 감자기근은 일본어 명칭입니다. (ジャガイモ飢饉)

또한 요요기제미날은 (9)번의 임시정부 관련 문제를 3번 문제 중에선 고난도로 꼽았더군요. 1919년이라는 연도 또한 나오지 않아서 어려울 수도 있었다라는 분석이 있더라구요.


2번 관련 내용은 어려우니 잊어버립시다.

2번 같은 경우가 조금 애매한 것이 본디는 시칠리아 왕국이 해당 내용이 맞습니다. 11세기 경 시칠리아에 있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노르만족 기사들이 세운 시칠리아 백작령이 그 기원인데, 원어 명칭으론 Kingdom of Sicily (Regno di Sicilia)이기에 시칠리아 왕국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후 시칠리아의 만종이 일어나 시칠리아 왕국이 두개로 쪼개졌고 이때 이탈리아 본토 쪽에 있는 왕국은 편의상 나폴리 왕국, 시칠리아에 위치한 왕국은 시칠리아 왕국으로 불립니다. 이후 중세 특유의 골때리는 작위 구조 때문에 아라곤 왕조 하에 들어갔다가 어찌저찌 하며 동군연합 상태였다가 이후 19세기에 법적으로 양시칠리아 왕국이 세워지는데요.

일본에선 과거의 시칠리아 왕국을 후일 양 시칠리아 왕국의 전신으로 여겨 이때 양 시칠리아 왕국이 성립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한 출판사의 세계사 교과서에도 1130년 양시칠리아 왕국이 성립했다고 본문에 나와 있다고 하네요. 따라서 교과서 내용대로 양시칠리아 왕국이 정답이 된 것 같습니다.

그냥 어려우니 무시합시다.

관련내용: https://www.y-history.net/appendix/wh0601-113.html



다음에 이 스타일로 돌아온다면 같은 시험 지리나, 다른 학교 문제로 보도록 해요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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