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으로 읽는다는 것 - 비판적 독서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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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하나의 경구가 상투어로 되어 떠돌고 있습니다. 창의성이 필요한 시@데다. 무비판적인 상명하복의 체계가 아니라 상호비판적인 체계가 필요하다. 자유롭고 열린 사고에서 비판적 사고가 나온다, 등등. 그러나 이렇게 들불처럼 일어난 '비판적' 사고의 유행, 혹은 차라리 '비판적 사고의 빈곤'이라 표현해야 할 그런 유행에는 어딘가 의뭉스러운 지점이 있습니다. 예. 사람들은 비판적 사고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비판이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은 거의 시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비판이라는 개념의 뜻하는 바조차 고려하지 않으면서 비판적 사고라는 말을 무자각적으로 사용하게 된 걸까요?
그러한 인식틀이 성립한 기원을 추적해나가자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요. 저는 그 대답이 단순하다고 생각하는데, 간단하게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학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념의 기원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 그러한 개념이 출현하게 되는 지적 토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골방에 틀어박힌 음습한 철학도들 뿐이겠죠. 건설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비판에 대한 비판 같은 골치 아픈 문제는 고민하지 않는 쪽이 당연합니다. 사실은 일상언어에서 사용하는 용법으로 '비판'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일은 없죠. 가끔은 전문 철학자들조차도 '비판'을 일상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는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스스로를 노력 중인 철학도라 생각하기 때문에, 적어도 어느 정도는 철학도로서의 소명을 부여받았다 생각하기 때문에, 미숙하더라도 비판에 대한 비판을, 다시 말해 비판의 의미에 대한 복권을 시도해 보아야만 하겠습니다.
헤겔은 <정신분석학>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정확히 인식되어 있지 않다'는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비판적 사고라는 상투어의 경우에도 꼭 이와 같다고 말해야만 하겠지요. 철학사적으로 보았을 때, 비판은 명료한 뜻을 지닌 개념입니다. 그의 비판 개념을 칸트에게서 빌려오고 있는 질 들뢰즈의 경우에는, 비판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대상을 총체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어떤 세부사항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세한 이해의 망. 들뢰즈처럼 난해한 방식으로 글을 쓰기로 유명했던 철학자조차, 비판이라는 기본 개념에 대해서는 명료한 정식을 요구했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식의 정식은 철학자들 저마다 서로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별 철학자들이 비판을 어떤 방식으로 정식화하든 간에, 그 근본적인 문제설정에 있어서는 다들 비슷한 의식을 공유합니다. 즉 비판은 공격이 아니라 이해에서 출발해야만 하며, 그러한 이해는 부분적이거나 부정적인 방식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 아래에서 그리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시도되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은 간단한 원리입니다. 비판이라는 것은 '~ 아니다'가 아닌 '~이다'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격이 아니고, 또한 부분적인 취약성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전체적인 이해이기 때문에 공격이 아닙니다.
비판적 사고와 공격적 사고를 구분할 때, 저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적어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잘 알려진 비유를 주로 예시로 듭니다. 레닌은 '사슬의 강도는 그 사슬의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비유를 들어 소비에트 연방의 '완전한 혁명화'를 정당화했습니다. 이처럼 적대적인 의도를 갖는 공격이라는 것은 비판보다는 훨씬 쉬운 작업이기 마련인데, 왜냐하면 특정한 대상에 대한 공격이란 결국에는 '가장 약한 고리'를 찾고 그 지점을 파고드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판이라는 작업이 총체적이고 긍정적인 방식의 이해를 의미하는 이상, 공격은 비판의 한 부분일 수는 있더라도 비판 그 자체일 수는 없습니다. 비판은 '가장 약한 고리'를 두들기는 작업이 아니라 사슬이라는 체계 전체를 파악하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비판적인 사고는 단순히 공격적인 사고와는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비판한다고 할 때는, 적의가 아니라 오히려 선의를 갖고 접근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비판이 대상에 대해 적대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그런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생각해봅시다. 만약에 비판이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진지한 성의를 갖고 이루어지는 이해의 작업이라면, 그것은 결코 적의만으로는 유발될 수 없는 지적 노동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서론에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바는 짤막하게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 비판이 이해라는 것은 '까더라도 알고 까자'는 식의 태도가 아닙니다. 비판은 일정한 선의를 요구하는 지적인 노동입니다.
자, 그럼 서론의 결론을 말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1. 이해?
비판을 총체적이고 긍정적인 이해의 작업이라고 규정할 때, 우리는 바로 첫 번째 난관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총체적이라는 말과 긍정적이라는 말은 무엇이냐, 아니 도대체 이해라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이냐, 하는 난관 말입니다. 사실 이런 질문들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이해란 무엇인가'를 다루는 철학의 분과는 넓게 본다면 인식론이고, 좁게 말하자면 해석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인식론과 해석학에 대한 수백 년짜리 논쟁을 되풀이할 여백은 없고, 그렇게 할 역량 또한 제게는 없습니다. 인식론은 근대철학의 거대한 줄기를 이루는 핵심적인 질문이었으며, 해석학은 그보다는 비교적 좁은 분과였을지언정 계몽주의 시@데로부터 발원해 현대에 와서는 철학의 주요한 방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잠시 '인식론'과 '해석학'이라고 하는 용어는 접어둡시다.
2. 총체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용어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봅시다. '총체적'이라는 말과 '긍정적'이라는 말. 총체성은 우직하게 말해서 '전체를 부분으로부터, 부분을 전체로부터' 읽어내는 태도, 그러니까 구성적으로 통일된 일정한 체계 아래에서 대상을 이해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설명은 말 그대로 우직한 설명에 불과해, 구체적인 실감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 미궁으로 빠져들 뿐이겠죠. 더군다나 총체성의 개념은 그 나름대로의 문제 역시 떠안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 루이 알튀세르는 총체성에 대해 '기술적으로는 옳지만 이론적으로는 틀린' 태도라고 쓰고 있습니다. 대상을 일정한 통일적 체계로 파악하는 시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총체성에 대한 강조가 과도할 경우 이해가 무의미한 도식 속으로, 다시 말해 실제 대상 이전에 미리 전제된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총체적인 이해는 우선 그러한 환상을 벗겨내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환상을 벗겨내자'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우리의 선입견을 떨쳐버리자'라는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비판적인 태도는 우리가 우리의 선입견 속으로 들어갈 것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환상을 벗겨내는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선입견에 대한 꾸준한 성찰 없이는 시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소위 말하는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그러한 개인을 형성하는 것은 일종의 물질적이고 지적인 구조입니다. 우리는 특정한 물질적, 지적 토대 위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토대를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고에 대해 실존주의 혹은 일부의 분석철학은 반대 의견을 표하겠지만, 여기서는 일단 이런 관점들은 제쳐두고 생각해봅시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헌법이라는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죠. 제가 헌법을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하며'라는 구절이 삽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헌법에 따라 본다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하는 가운데 성립된 민주 공화국입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자유민주주의는 과연 일반적인 질서일까요? 민주주의라는 정체는 일반적인 정체일까요? 아니면 공화국이라고하는 정체는? 정답은 '아니오'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세 구조는 모두 역사적으로 특수한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이며, 어떤 것도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예시를 하나만 들어 볼까요. 근대적인 입헌 공화국이 성립된 최초의 예시로 유명한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사실은 우발적인 계기에 의해서 입헌 공화국의 성립으로 나아갔다는 관점이 최근에는 조명받고 있습니다. 역사의 진행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프랑스 혁명은 근대적 공화국 체제의 시초가 아니라 근대적 입헌주의 군주국의 설립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를 채택한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체제 하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하나의 특수한 조건이며, 우리의 고유한 선입견을 형성합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인 우리가 보기에 과거 사람들의 인식은 종종 기이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대의제가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장치라고 배워 왔습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의 자유주의자들에게 대의제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과두정을 지속시키는 장치였을 뿐입니다. 보통 선거 제도의 확대가 정치적 진보라고 믿는 우리의 '현대적' 믿음과는 달리, 대의제는 19세기 서유럽이라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상황 속에서는 일종의 타협에 불과했습니다. 다시 말해 민중 세력의 정치적 참여 기회에 대한 요구를 실질적 과두정 체제의 유지라는 목표와 타협시키는 수단이었죠.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 보통선거의 확대가 맞이한 결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집권.
그렇다면 현대까지도 대의제에 대한 저러한 이해를 변형 없이 적용할 수 있는 걸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오늘날의 대의제에는 분명히 과두정의 속성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민주주의의 탈을 뒤집어 쓴 실질적 과두정에 불과한 것도 아닙니다. 비록 자크 랑시에르를 비롯해 현재까지도 그런 입장을 고수하는 철학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현대의 대의제는 19세기의 대의제와는 많은 면에서 달라졌습니다. 오늘날에는 대의제의 엘리티시즘을 걱정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의제의 양당정치가 지나치게 현실정치화 되면서 장기적인 목표를 잃고 표류하는 현상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후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포퓰리즘이라는 현상에 대한 걱정이지요.
바로 이런 것이, 우리가 선입견 속으로 들어가서 사고해야만 한다는 말의 구체적인(그러나 실제로는 상당히 단순화된) 실례입니다. 우리 자신과 이해하고자 하는 대상이 서로 다른 토대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총체적 인식은 그 지점에서 비로소 현실적인 의미를 갖고, 무의미한 도식이 아니라 통일성을 갖춘 이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요컨대 대상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되, 그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맥락 속에서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할까요.
'긍정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총체적이라는 말보다는 좀 더 쉽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긍정적'이 우리가 일상적인 용법으로 사용하는 '긍정적'과 같은 의미는 아니겠죠. 이 말은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책을 읽자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엄격함과 냉정함이야말로 비판적인 읽기의 핵심이라고 해야만 할 겁니다.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긍정적'의 의미는 우리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형식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다'라는 판단은 긍정판단이며, 반대로 '~ 아니다'라는 판단은 부정판단입니다. 형식논리적인 표기를 따르자면 'φ' 와 '~φ' 의 의미가 되겠습니다만은, 어쨌거나 긍정적이라는 말은 비판적 읽기가 '~이다'의 형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비판적 읽기는 대상을 규명해나가는 작업입니다. 비판은 대상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의미를 파악해나가는 작업이라는 뜻으로 우리는 '긍정'을 사용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텍스트를 꼼꼼하고 성실하게 읽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우리가 흔히 비판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작업, 그러니까 대상의 의의와 한계를 설명하고 논리적, 수사적인 강점과 단점을 드러내며, 작품의 구성을 밝혀내고 텍스트를 가로지르는 통일된 의미를 이해하는 작업은 모두 꼼꼼하고 성실한 읽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굉장히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하게 됩니다만은, 때로는 원론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을 담고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논의를 종합하자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텍스트를 꼼꼼하게 읽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그러나 단순히 꼼꼼하게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각자의 선입견 내에서 사고하는 존재라는 것을, 요컨대 각자가 포함되어 있는 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서 있는 선입견의 토대와 대상이 서 있는 선입견의 토대 사이에 놓인 차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됩니다. 맥락에 대한 이해 없는 비판은 성급한 공격이 되기 쉽습니다.
3.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
추천도서를 딱 한 권만 꼽으라고 한다면, 퀜틴 스키너의 <역사를 읽는 방법>은 일독을 권하는 작품입니다. 해석학적인 역사철학에 있어서는 최고의 권위자이기도 하고, 굳이 역사철학이 아니라 해도 해석학적 방법론에 대한 접근을 위해서 이보다 더 적합한 입문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소개해두지 않은 또 다른 접근법, 그러니까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에 근거하는 언어 맥락주의적인 접근 또한 소개되어 있지요.
앞서 언급한 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를 위하여>도 물론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추천하기는 어렵겠습니다. 해석학적으로 분명한 논거를 갖고 마르크스를 재구성해내고자 하는, 문헌비판이 실천적으로 실현된 가장 훌륭한 사례들 중 하나입니다만은, 마르크스주의라는 맥락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없이는 읽는 게 불가능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저 불가능하다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사회주의에 관심이 없던 사람(오늘날에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이 읽으면 그냥 무의미한 문자열의 나열일 거예요.
그 외에도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미셸 푸코의 작품, 그중에서도 후기 강의록인 <안전, 영토, 인구>도 있고, 퀜틴 스키너가 쓴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도 있습니다. 미셀 푸코의 방법론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남긴 많은 입문서도 있구요. 고전으로 향한다면 빌헬름 딜타이나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된다면 한 번쯤 읽어볼만!@한 작품들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4. 결론
서론의 결론을 여기서 반복하되, 그에 몇 마디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비판적으로 책을 읽을 때, 우리 모두 충분한 선의를 갖고 읽기 위해 노력해봅시다. 공격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상세한 이해로부터 우리의 비판을 이끌어내 봅시다. 그건 분명히 공격적 읽기에 비하면 훨씬 힘겨운 작업이겠지만, 그럼에도 텍스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훨씬 풍부하게 해줄 것입니다. 앞서 비판이라는 말의 의미를 고민하는 건 우중충한 철학도뿐이라는 농담을 던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진지한 비판정신을 갖고 독서를 해나가는 것은 여느 독서애호가에게도 보람찬 경험일 거예요.
금지어 시스템 진짜 개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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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모아보기 뜨나요?
아뇨
예전에 읽어서 요약불가임
밑에 출처 링크 보이나요?
네
https://ga1ll.d1cinside.com/mgal1lery/board/view/?id=reading&no=238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