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를가다 [1097299] · MS 2021 · 쪽지

2021-12-23 19: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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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내가 수능 잘본게 시험지 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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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예전부터 좀 깔보던 애라 걔가 나한테 먼저 톡을 보내더라.. 자기 성적표로 


수학 1등급이란걸 나한테 자랑할려고 보냈나보다. 다른 과목은.. 2-3등급...



 다소 유치하긴 하지만, 고3시절 이 새끼가


니는 아무리 노력해도 3등급받는 놈이라고 장난인냥 날 비웃었던 기억에


나도 내 성적표를 보냈다. 


솔직히 그때의 굴욕을 마침내 되갚아 주는 것 같아 유치한 행복이 느껴졌다. 


뻔하고 감정없는 안부인사 끝에 오는 말은 수능은 운빨, 시험지빨이라는 얘기들. 


자기는 운도 없고 시험지 운도 없었어서 망한 것 같다고 역시 수능은 운칠기삼이라고.




너는 6평을 그렇게 망하고도 수능을 잘본거면 운도 시험지빨도 좋았던것 같아 부럽다고 한다. 


애초에 딱히 잘본것도, 찍은 것도 다 틀린만큼 운빨도 ㅈㄴ게 안좋았지만 더 이상 이 친구와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인정해주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내가 뭐라고 이런 말을 하겠냐만은..


이 글을 보는 내년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분들은 이딴 헛소리를 하는 인간들은 제발 곁에 두지 않았으면 한다. 


운? 분명히 중요하다. 실수를 우연히 한눈에 발견한 것, 생명 케이스를 찍었더니 그게 답이었던 것, 애매했던 국어 선지를 찍었던 것이 맞는 것. 등급을 가를만한 요소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최악의 상황 앞에서도 최하점수만큼은 버텨낼수있는 공부 내구력


철근 콘크리트같은 단단한 무언가를 준비해두는 것이 가장 맞는 태도라고 믿는다. 


수능 두달전에 본 50회분 이상의 국어실모 중 3,4개만 2등급을 받았었다. 

수학실모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1컷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영어는 이명학,조정식 실모 둘다 한번빼고는 모두 1등급을 받았었다. 

과탐은 더그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1컷까지의 점수를 지켜냈다. 


 최고점보다는 최하점을 내 점수로 여기고 반성노트를 나에대한 욕으로 도배해가며 최하점을 올리려고 진짜 아둥바둥 살았었다. 


그 결과 수능 전날 한시간도 못 자고, 시험지가 젖을 정도로 땀이 흐르는 긴장 앞에서도



국어가 엄청 망했다는 생각에 삼수를 할 것같다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계산실수를 엄청나게 저지르며 3점짜리 3문제가 막힌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나마 잘하던 국,수도 망했다는 생각에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며 푼 영어에서도 


너무 어려운 난이도에 멘탈이 터져서 진짜 말 그대로 울면서 푼 물리,생명에서도 


 어떻게든 내 최하점수 1컷을 방어해냈다. 



수능이 끝나고 대기하던 30분동안 엄청나게 울고, 시험장에서 나와 어머니와 차까지 걸으면서 울고,

차를 타고 채점하기 전까지 너무 미안하다고..근데 나 이젠 이 짓거리 더는 못한다고. 

삼수는 못한다고, 너무 너무 미안해서 엄청 울었던게 기억에 훤하다. 


 진짜 그 정도로 멘탈이 박살날 만한 시험이었거든..


그럼에도


찍은게 다 틀리는.. 항상 그랬던 불운에도, 한숨도 못자 너무 피곤한 상태에도,눈물 때문에 문제도 잘 안보였던 상황에도 


결국 날 지켜준건 내가 올려놓은 최하점수, 나만의 철근 콘크리트였다. 




운과 시험지빨은 분명히 실존한다. 


하지만 그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인간은 발전을 할 수가 없다. 


시험을 못 보면 운이 안좋았다, 시험지빨이 안 맞았다는 핑계로 자신의 노력부족,능력부족을 회피할 수 있거든. 


내가 공부를 뭐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은 가지고 있다. 


핑계를 가장 역겨운 것으로 취급하고,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며 자신을 욕하고 탓하는 것. 

 너무 아프고 힘든 버릇이지만, 그래도 내가 성적을 꽤나 많이 올린건 이 태도에 있었던 것 같다. 


가르치려 드는 것같아 다소 부끄럽지만, 과거의 내가 항상 핑계만 대면서 살았던 기억에 


당신은 그렇지 않았으면 해서 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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