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맥주 [1088100]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1-12-21 17:53:03
조회수 16,831

수능수학의 "기초"는 어디까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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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수학 관련된 글은 처음이라… 많이 떨리네요 ㅎㅎ

일단 제가 수학에 관련된 조언을 해도 될 정도의 실력이 되나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거든요!

저는 과학고나 영재고 출신 선생님들처럼 KMO나 IMO를 짓밟고 다닐 정도로 수학 실력이 대단하지도 않고

(대신에 많이 짓밟혀 보기는 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현역으로 수학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도 아니랍니다.

하지만 수학에 대한 (짝)사랑이나, 수험생분들에 대한 관심만큼은 정말 진심인 사람이에요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요,

요즘 수능 수학이 점점 어렵게 출제되면서

제가 보기에도 어려운 문제들을 너무나 기계처럼 잘 풀면서,

막상 조금만 새로운 유형이 나오면 아무 것도 아닌데도 손도 못 대고 나오는 학생분들이 있더라구요.



그러면 학생분들이 제게 물어보게 되어요

‘선생님, 저는 기초가 부족한 걸까요? 

집에서 풀면 떠오를 만한 내용도, 시험장에서는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안 와요.

인강을 아무리 들어도, 실모 N제를 아무리 풀어도 잘 안 고쳐져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수학에서 말하는 ‘기초’란 과연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 잠깐 얘기해 보고자 글을 썼어요.



선생님들, 수능에서 다루는 수학의 시험범위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공식적인 시험범위는 수학 I, II 그리고 선택과목 3과목 중 택1

그러니까 고2 & 고3 수학으로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수능시험장에 들어갈 때 중학수학이나, 고등학교 1학년 공통수학

  (고등학교 1학년 수학의 명칭은 교육과정마다 너무나 이름이 자주 바뀌었으므로, 

  저는 제게 가장 친숙한 ‘공통수학’이라고 부를게요… 

  잠깐 임플란트 좀 닦고 올게요. 요즘 늙은이들은 틀니 안써 이 바보들아!!)

내용은 모두 까먹고 들어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을 거에요.


그러면 중학교 수학, 또는 고등학교 공통수학 내용은 어느 정도까지 알고 들어가면 좋을까요?


오늘 제가 패기있게 주장하고 싶은 내용은 이거에요:

‘수능 1~2등급을 안정적으로 받기 위해서는 

중학교 수학 + 공통수학 내용도 철저하게 알고 들어가야 한다. 

(1) 중학교 수학에서 배운 내용들의 큰 줄기들을 말로 쭉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2) 공식들은 다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3) 중학교 수학 과정에서 출제되는 고난이도 문제들은 수능 수험생들도 풀어 볼 가치가 있다. 

(실제로 N수생들 경우에는 마음 잡고 공부하면 중1~중3 수학 복습하는 데 1달도 걸리지 않을 거에요!)’



사춘기를 타느라 저도 잘 몰랐지만

중학교 수학은 생각보다 아주 짜임새있게 구성되어 있답니다.

중학교 각 학년의 1학기에는 대수학(수의 체계 / 문자와 식)과 해석학(함수와 그래프)을,

각 학년의 2학기에는 기하와 확통을 배우게 되어 있지요.

표로 나타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학기-대수학과 해석학
수와 연산정수와 유리수유한소수, 무한소수, 순환소수제곱근, 실수
문자와 식문자와 식, 일차방정식연립일차방정식, 일차부등식곱셈공식, 인수분해, 이차방정식
함수와 그래프정비례와 반비례일차함수이차함수
2학기-기하학과 확률, 통계학
기하기본도형, 작도, 평면&입체도형..삼/사각형, 닮음, 피타고라스 정리삼각비, 원의 성질
확률과 통계도수분포표, 히스토그램...경우의 수, 확률산포도, 표준편차, 상관관계


보시다시피, 학년이 올라갈수록 개념들이 한 단계씩 차근차근 확장되어요!


수 체계는, 

중1 때 정수와 유리수 

-> 중2 때 무한소수를 슬쩍 보여주면서, 

‘유리수 중에는 유한소수로 표현되는 경우와 무한소수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는데, 

모든 유리수는 적어도 순순환소수 아니면 혼순환소수(처음에는 더럽게 나오지만 나중에는 순환마디가 나오는 소수)로 표현돼. 

어? 그럼 순환마디가 없는 무한소수는 분수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인가?’ 라면서 

무리수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 중3 때 제곱근의 개념을 보여주면서 무리수의 존재를 귀류법으로 증명, 실수 체계 확립!

(왜 제곱근이 중3 때에야 등장할까요? 

이것은 제곱근이 발견된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는데, 

바로 제곱근을 발견하게 된 계기인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중2 2학기에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걸 공부하면서 정수의 이산성 / 유리수의 조밀성 but 불연속성 / 실수의 연속성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리셨겠죠? 못 떠올리셨으면 절대 여러분 잘못 아니고 공교육 잘못 100%라고 봅니다 저는


대수 체계는, 

중1 때 단일미지수 일차방정식 

-> 중2때 연립일차방정식 & 일차부등식

-> 중3때 (이제 제곱근을 배웠으니까) 이차방정식, 

그리고 이차방정식 중 특수한 경우를 풀으려니까 곱셈공식과 인수분해가 필요하게 되구요


함수는 당연히 중1때 정비례/반비례 (일차식 중 y절편=0인 경우, 특이하게 유리함수 떡밥을 뿌려주네요!)

 -> 중2때 일차함수 (경우에 따라 연립일차방정식과 연관지어 두 직선의 관계를 배우기도 해요) 

-> 중3때 이차함수 순서로 배우게 되지요.


기하에서도 중3때 이미 수능에서 자주 사용되는 닮음

삼각비(사실 내각의 이등분선 정리를 쓰면 이미 중학교 때 15도의 삼각비까지 다 유도할 수 있죠!), 

원의 성질(접선, 할선, 원주각, 공통외접선, 공통내접선… 

이를 응용하면 수능에서 자주 나오는 원 위의 점에서 원 바깥의 한 점까지의 최단거리/최장거리 등도 계산할 수 있지요)이 나오니까, 

절대로 중학수학이 수능에서 사용되지 않는다고는 말 못 하실 겁니닷!



그래도 아직 수능에서 중학수학의 기초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잘 모르시겠다는 분들을 위해서

올해 수능으로 몇 가지 예시를 보여 드릴게요.



이 문제에서, PQ의 x좌표의 차이가 1, y좌표의 차이가 2인 게 눈으로 바로 보여야 하는데

3등급 이하의 학생들에서는 생각보다 이거를 헤매신 분들이 많더라구요!

하지만… 놀랍게도 중학교 1학년 [작도] + 중학교 3학년 [제곱근과 실수] 파트에서는

루트 2와 루트 5, 심지어는 1+(루트 5)를 수직선 위에 작도하는 연습문제가 교과서에 주어져 있답니다.



이 그림의 정사각형의 한 변을 컴퍼스로 쭉 내리그으면, 

수직선 위에 루트 5를 작도할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수직선을 완벽하게 메꾸려면 유리수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구요


(이건 정확한 표현은 아니구요… 

수학적으로, 유리수와 유리수 사이에는 반드시 무리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답니다. 

증명은 해석학의 도움이 필요해요…)



이걸 가지고 중학교 과정과 연계라고 말하는 건 억지 아니냐!라고 하신다면, 

올해 수능 29번 문제를 볼게요.




이 문제에서는, g(θ)에 대한 식을 세우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과정에서 기하에 대해 딱히 배우는 것이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선택과목으로 기하와 벡터를 배운다고 하더라도, 

이는 해석기하학에 관한 것이지 논증기하학이 아니니까요) 

중학교 과정에서 정삼각형에 대해서 우리가 배운 것은, 

한 변의 길이가 a인 정삼각형의 (1) 높이 h=sqrt(3)/2 * a, 

(2) 넓이 S = sqrt(3) / 4 * a2 이 두 가지 공식밖에 없지요.


그러면 당연히, 삼각형 URT와 삼각형 ARB가 닮음인 것을 이용하고, 닮음비를 1:a로 두었을 때

(삼각형 ARB의 높이) = (삼각형 URT의 높이) + (정삼각형 UTS의 높이)임을 이용해서

이 세 수식이 모두 a와 θ에 관하여 표현되니까, a를 θ에 관하여 정리할 수 있고, 

따라서 g(θ)에 관한 식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최상위권 학생과 // 상위권 학생과 // 중위권 이하 학생의 차이는, 여기서 결정나는 것이라고 봐요.

중위권 이하: 기계적으로 문제는 풀 수 있지만, 개념을 던져 주고 설명해 보라고 했을 때 구술하지 못한다.

상위권: 주어진 개념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한 단원에서 배운 내용을 개괄적으로 설명해 보라고 했을 때 짜임새 있게 구술하지 못한다.

최상위권: 자신이 한 학기/한 학년/교과 전 과정에 걸쳐 배운 내용을 요약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자신이 교과 과정 전반에 걸쳐 배운 내용을 요약할 수 있다면

‘나는 내가 배운 내용이 다 기억나.’

=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개념은 없어.’

=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내가 알고 있는 개념과 공식 속에서 다 풀어낼 수 있어.’

라는 자신감이 형성되고, 이 자신감이 있어야만

수능이라는 엄청난 중압감이 주어지는 시험에서 자신의 실력을 최대 한도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위의 29번 문제에서도

'내가 정삼각형에서 배운 내용은 높이랑 넓이밖에 없는데?

근데 문제에서 구하라고 하는 내용이 넓이니까... 높이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풀리겠구나!'

라는 확신이 있는 학생과


'아이씨... 이게 뭐야? 내가 모르는 무슨 공식 같은 게 있는 건가?

막 근사 때리면 그냥 풀리는 건데 나만 모르는 건가? 대치동 어둠의 스킬 이런 거 있는 거 아냐?

엄마!! 아 왜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강남 8학군에 안 낳아 준 거야!!'

라고 생각하는 학생의 자신감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집에서는 뉴런, 킬캠, 빡모 뭐든지 술술 잘 풀리는데

시험장만 가면 머리가 새하얘지고 아는 문제도 막히는 분들은

한번쯤 꼭, 중학교 과정까지 돌아가서 개념을 짚고 넘어가시길 부탁드려요

절대 오래 걸리지 않아요, 절대 쉽지도 않고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수학 교과과정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초4, 중3, 고1 이렇게 세 단계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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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하자면요...


이제 혹시 제 글을 읽고, 지금이라도 중학교 수학을 복습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드셨다면

공식들은 단순히 유도과정을 읽고 직접 유도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제 고등학생(또는 N수생)이니까, 더 넓고 높은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잖아요,

‘왜 이렇게 유도하는가?’를 생각하면서

평생 가져갈 수 있는 한마디로 요약하는 연습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에 수학선생님 유튜브(정승제 선생님이셨나…? 잘 기억이 안나요)를 보면서 확 와닿았던게

‘이렇게 어려운 수능 수학문제를 내고도 90점 이상을 맞는 학생들이 속출하는데

나중에 길거리에서 2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유도할 줄 아냐고 물어 보면 대답하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

한국 수학교육의 비애다’라고 말한 게 너무나 공감이 돼요.

왜 공식을 그렇게 유도하는지 말해 주지 않고 수식만 나열하니까,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는 거라고 봐요, 저는



결국 인간의 사고는 언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리 수학적으로 뛰어난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수학적 아이디어를 말로 풀어서 가지고 다녀야만

비슷한 문제를 만났을 때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이차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하는 원리는

‘모든 이차방정식은, <완전제곱꼴>=<상수항>으로 고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원리에요

그리고 모든 이차방정식을 완전제곱꼴로 고치는 원리는

일단 이차항의 계수로 각 항을 묶은 다음, 일차항 계수의 절반을 이용한다 - 는 것이 세부적인 내용이구요

이 사실만 기억하면 죽기 직전까지도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은 유도할 수 있구요

여기에서 허근, 허수, 복소수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구요


여기에 산술평균-기하평균의 개념을 조금 고슬고슬하게 양념 치게 되면은 

또, X=k^2-2k+2의 최소값은 1인데 

왜 k=2^t + 2^(-t) (단, t는 실수)인 경우에는 

X의 최소값은 2인지…

이런 것들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답니다


(심지어는 3차 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하는 <카르다노의 공식>도 

두 문장으로 들고 다니면 평생 어렵지 않게 주머니에 가지고 다닐 수 있답니다:

(1) 모든 삼차방정식은 이차항이 소거된 형태(X3+pX+q=0)으로 변형할 수 있다.

(2) (a+b)3-3ab(a+b)=a3+b3 으로부터, p=-3ab, q=-a3-b3 즉, a3+b3=-q, a3b3 = -p3/27을 만족하는 a3, b3을 이차방정식의 근과 계수와의 관계를 이용해서 구하면 3차 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피타고라스 정리: 큰 정사각형과 그 안에 내접하는 작은 정사각형을 그리고, 합동인 4개의 직각삼각형을 그려서 곱셈공식으로 유도하거나 // 평면기하학적으로는 직각을 끼고 있는 두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이 빗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다는 것을 증명하면 되므로, 등적 변형 -> 합동인 삼각형으로 옮기고 -> 다시 등적 변형을 하는 과정으로 증명할 수 있다!


제2코사인법칙: 두 변과 끼인각을 알 때, 보조선으로 수직선을 하나 그리면 피타고라스 정리로부터 대변의 길이를 알 수 있다


이렇게 한두 문장으로 공식을 유도하는 아이디어를 들고 다니면,

공식 자체의 유도과정을 줄줄이 들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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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글이 너무 장황해졌네요! 글을 두 번에 나눠서 쓸 걸 그랬나 봐요

항상 시간에 쫓겨 지내다 보니 글이 더욱 두서가 없네요 ㅠㅠ

혹시 읽으시다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는 부분이 있으시면 보충하겠습니다


그럼 좋은 저녁 되세요~!^^


(개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서울대소자쌤'의 다음 글을 참조하였습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https://orbi.kr/00041477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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