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추나죽어 [962851]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1-11-09 18: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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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정시 성의 마지막 조언과 수능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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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봄춥니다.


1. 이제부터는 새로운 문제를 많이 풀기보다는 익숙하고 퀄리티 좋은 문제 위주로 복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설 문제 중에는 과한 것들이 많고 평가원의 방식과 다른 것들도 있습니다. 물론 문제를 평가하는 것은 수험생에게 바람직하지 않지만, 수능이 열흘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는 효율성의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점수 향상에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택하는 것이 낫죠. 지금까지 풀어 오신 기출문제들은 수험생과 평가원의 약속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설 문제들을 풀면서 올린 실력을 바탕으로 실제 기출이 무엇을 물어보는지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출문제집을 쓱 훑어보고, 어렵거나 포인트 있는 문제들 위주로 다시 풀어보면서 풀이를 상기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쉽게 말하자면 사설로 인해 혼탁해진 기준을 기출로 '안구정화' 하는 것입니다. 수능은 결국 그 방식대로 풀립니다. 데칼코마니 공부법이라고 하던가요? 수능에 다가갈수록 최신 기출을 복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출은 작년 수능과 올해 6, 9월 모의평가입니다. 이것들은 달달 외울 정도로 학습하셔야 합니다.


2. 수능장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상상한 대로 스무스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변수가 있고 예측하지 않은 상황이 나타납니다. 지금부터는 자기 전에 잠깐이라도 수능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앞자리에 다리 떠는 빌런이 있다면? 화장실 루틴이 갑자기 망가진다면? 손을 못 댄 준킬러와 반쯤 푼 킬러가 남았다면? 등등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세요.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수능은 여러분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평소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몇 문제를 맞히느냐만이 중요합니다. 변수를 컨트롤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3. 수능이 끝나고 저는 저녁을 먹지 않고 초조하게 탐구 답지가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수능 전에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꾹 참았던 유튜브를 재생했는데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습니다. 한 번에 하려고 국어랑 수학도 채점을 안 한 상태로, 그야말로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습니다.

결국 탐구 답지가 나왔고 저는 메가에다 제 가채점 답안을 입력했습니다. 손이 떨려서 잘못 친 게 있는지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지구과학부터 역순으로 채점하기를 눌렀습니다. 46점.. 그래 시험장에서도 어려웠으니 나쁘진 않아. 틀린 게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다음 물리.. 50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백분위가 그 사단이 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한국사는 뭐 3등급은 나왔겠지 했는데 40점으로 턱걸이 1등급, 올1을 맞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영어는 100점이었는데 워낙 쉬워서 시험장에서도 싱글벙글했기에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이때 한 번 멈칫했습니다. 가장 걱정했던 수학이었습니다. 시험을 보고 나서도 딱히 틀린 문제는 없는 거 같았지만, 실제로 다 맞은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설마 만점은 아니겠지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29번 답이 (201이었나요) 너무 이상했기 때문에 그거 하나 틀렸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채점을 해보니 정말로 세 자리 점수가 나오더라구요.. 해냈구나 싶었습니다. 국어는 틀려 봐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딱 그 문제만 틀려서 98점이 나왔습니다. 채점을 끝내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시험 전에 상상하기로는 지금쯤 눈물을 흘리며 소리지르고 동네방네 자랑을 했어야 하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왠지 모를 공허함과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냥 끝났다는 생각만 들었고 엄마한테 전화해야지... 정도였습니다. 이때의 기분은 지금 돌이켜 봐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때 당시에도 가톨릭의대 정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까보니 딱 그 정도더라구요.


4. 수능을 잘 봐서 좋았던 점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일단 집 가까운 곳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고, 꽤 큰 액수의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또 일이 잘 안 풀릴 때 '수능에서 운이 좋았으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좋았던 것은, 부모님이 모임에 나갔다 들어오실 때마다 신이 나서 사람들의 반응을 서로에게 전해 주실 때였습니다. 제가 매 순간 좋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할 일을 나름대로 한 것 같아서 자랑스러웠습니다. 여러분도 시험 잘 보셔서 여러분들만의 '좋았던 점'을 만들어 나가시길 기원합니다.


5. 저는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끔 어떻게 공부를 잘 하냐고 물어보면 별다른 의견 없이 웃어넘기는 편인데, 유일하게 항상 해드리는 말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국어에서 3분 남았는데 보기문제가 하나 남았을 때도, 점심시간에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 때도, 점수가 원하는 만큼 안 나와서 죽고 싶을 때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이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침착하고 냉정하게 판단하세요. 3분 안에 정신만 차리면 보기문제 풀 수 있습니다. 수능은 국수만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하다못해 원서영역과 논술로 얼마든지 역전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무조건 기회가 옵니다. 그러나 미리 포기하고 절망하면 기회가 온 줄도 모르고 잡을 수도 없습니다. 국어 망한 줄 알고 멘탈 나가서 수탐 던진 분들 중에 국어는 오히려 잘 본 거였다고 한탄하시는 분들 매년 나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올해는 망했다며 미리 +1 예약하신 분들 계실 텐데, 남은 기간 동안 끝까지 최선을 다할지 그대로 포기할지는 본인의 결정이지만, 후자에게는 올해 절대로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승리(victory)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것입니다. 어려운 수능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마인드입니다.


수능이 진짜 얼마 안 남아서 질문은 없으실 거 같긴 한데, 마무리 학습 관련해서 궁금하신 게 있다면 물어보시면 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모두 수능 끝나고 이 화면을 보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rare-나는야 존잘 rare-아님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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