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의 다자이 [876659] · MS 2019 · 쪽지

2021-09-17 0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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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입학 후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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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 가정폭력 노가다 일용직 아버지랑 이혼하시고 식당설거지 하면서 나 키우신 어머니

몇 만원이 없어서 핸드폰 요금 못 내고

버스비 아까워서 집에서 싸온 단무지 하나 들어있는 김밥 씹으면서 걸어다녔다


여기선 적폐 수시충이라고 욕 먹지만 그 제도 덕에 고등학교에서 좀 성실했다고 좋은 대학 들어왔고

좀 앉아서 깔짝대면 어머니가 하루종일 서서 버시던 돈의 5배를 그냥 입금해줬고

여기저기 사람 상대해가며 사업하긴 싫어서 방구석에 컴퓨터 하나 갖다놓고 코인판에 뛰어들었고

몇 번의 천운이 따라주더니

이젠 분단위로 그 때 어머니 월급의 수십배를 잃고 따고 한다


천장에서 물 새던 집도 떠났고

자습실에서 울고 있던 나에게 삼겹살을 먹여준 고3쌤이랑 소고기도 먹고 설 선물도 보내드렸다 곧 추석 선물도 보낼 예정이다


원래대로라면 아득바득 하루하루를 억지로 버텨가며 평생 벌어야 했던 돈, 내 평생의 목표가 클릭 몇 번에 이뤄진 게 허탈하지만

인생이 원래 운인 걸 뭐 어쩌겠냐


그래도 모든 시작은 대학을 잘 가서 과외를 시작한 거였으니까 뭐 그러려니 한다


진짜 인생은 공부가 다가 아니다

그렇지만 대학 덕분에 과외로 노동 대비 말도 안 되는 수입이 생겼고 그걸 시드로 이것저것 할 수 있었다


본인 수저 본인이 바꿀 수 없는 세상이라지만

어디서 어떻게든 우직하게 노력하면 되던 시절이 지나고

맞는 길을 남들보다 먼저 캐치하고 실행하는 능력으로

방법이 바뀐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본인이 흙수저라면

그냥 공부만 제대로 해서 좋은 대학 가고 과외만 해도 세상이 많이 바뀐다

'남는' 돈으로 내가 사고싶은 무언가를 사는 그 순간, 그걸 처음 경험한 순간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진짜 인생이 바뀐다


주절주절 썼지만 입시 커뮤니티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글인 거 안다

운 좋게 공부 적당히 하는 일반고에 온 덕에 내신 잘 따고 수시로 대학 갔고 결국 운으로 횡재한 이야기가 수험생들한테 무슨 가치가 있겠냐

그래도 난 흙수저를 자력으로 벗어난 누군가의 이야기가 큰 위로가 됐었으니까, 단 한 명에게라도 이 글이 위안이 되고 자신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맨날 어그로 끌고 어거지로 싸워대서 미안

반응 재밌어서 가끔 했는데 이젠 재미도 없고 그만하려고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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