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해력 칼럼 9. 국어를 배우지 못한 고등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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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글에서 독해 능력은 기본 독해, 중간 독해, 학문적 독해 이렇게 세 단계로 발전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국어 과목은 최종적으로 학문적 독해, 직업적 독해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학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학령에 맞게 국어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겉으로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능력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성적으로도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학문적 독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학문적 독해에 도달하는 비율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보통 수준...일상적으로 지장이 없는 독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비율이 무려 76%, 대졸자라도 60%나 됩니다.
학문적 독해에 도달했는가를 평가하는 시험, 학문적 독해를 지향하도록 해주는 시험은 바로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출제하는 모의평가와 수능 국어입니다. 단언컨대, 모의평가와 수능의 지문은 우리나라의 어떤 글보다도 독해에 필요한 언어적, 인지적 능력을 사용하게 만드는 가장 적절한 글입니다. 그러나 입시를 용도로 하기 때문에 문제를 동반하고 있는데 근래에는 이 문제들이 지문을 이해했는가를 온전히 평가하지 못할 수준으로 출제되고 있습니다. 문제의 질이 낮다는 것이 아니라 지문을 50-60%만 이해해도 맞출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양질의 지문과 문제를 출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도(출제기준, 예산, 인력 pool...) 현재 수준의 문제를 출제하고 있는 건 참 아쉽습니다만, 지금은 문제의 본래의 목적상 그럴 필요가 있는 때라고 하니 저의 개인적인 아쉬움은 접겠습니다.
어쨌든 학생들이 학문적 독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서 교평 지문을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럴까요. 이전 글에서 말씀드린 관점을 이어가자면 초등학교에서 기본 독해를, 중학교에서 중간 독해를 마스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기본 독해를 마스터하지 못하면 뒤처지게 되는 반면, 중학교에서 중간 독해를 마스터하지 못하면(사실 대부분입니다) 학문적 독해로 나아갈 토대를 만들지 못합니다.
몇 학생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늘 1등급인 학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문제 정도를 틀리는 성적이 더 나아지지 않고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은 중간 독해의 마스터 수준이 최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속도로 글을 읽고 글의 내용을 잘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이 학생이 기억한 내용은 글의 명시적인(explicit), 다시 말해서 표면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심도 있게 이해하기 내용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문법적, 수사적 표지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내용 영역에 따라 상이한 읽기 전략을 체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문의 내용은 100% 기억하되 보통 학생보다 월등하기는 해도 100%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틀리는 문제가 있었고, 왜 틀리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학생은 수준 있는 글을 이해할 때 필요한 읽기 전략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인쇄물 경험(print exposure-읽기 경험)을 축적하면서 기본적 독해를 완성하고, 조금 더 자라 중간 독해도 완성할 수 있으나 학문적 독해 기술은 스스로 일부 터득하기도 합니다만 충분히 익히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지도가 있어야 한다고 학자들이 이야기합니다. 독해 기술은 우리나라 국어의 독서 교과서에 어느 정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독해 학습 지도서에 비하면 매우 두루뭉수리하게 나와 있거나 개념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주제를 어떻게 파악하는지, 주제가 글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한 유명 출판사의 독서와 문법 교과서에서는 독서를 의미 구성 행위, 문제 해결 행위, 의사 소통 행위 등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이 의미 구성 행위가 무엇인지 설명했으나 실제로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의미를 구성하는가를 설명하지 않고 학습활동에서 관련 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학습활동을 하도록 제시한 글은 이야기글(산문문학)입니다. 따라서 설명적 글(비문학)에서 어떻게 의미를 구성할 것인가는 가르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 이해에 관한 심리학에서의 연구는 이야기글을 대상으로 활발했으나 설명적 글로 연구가 확산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지나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국어 학문은 설명적 글에 관한 연구 성과를 참고하기 전에 심리학과 단절하였습니다.
의미 구성 행위
독서는 의미 구성 행위이다. 이것은 기계적으로 문자를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의 상황과 목적에 맞게 글의 의미를 ‘재구성’한다는 뜻이다. 글의 의미는 글 속에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며 읽기만 하면 독자에게 저절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글의 의미를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독자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배경 지식이나 경험 등을 떠올리며 글에 나타난 정보와 결합시켜 글쓴이가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를 파악해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경험, 지식, 신념 등에 비추어 내용을 비판하기도 하고 지지하기도 하면서 의미를 구성해 나간다.
이와 같이 글의 의미는 어느 하나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 배경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글을 읽고 이해한 바를 서로 이야기해 보면 이해의 정도나 방향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중간 독해가 너무 뛰어나서 더 이상 독해 능력을 개발할 필요가 없었던 학생은 마치 김연아 선수 같습니다. 최고 난이도의 독해 기술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완벽하게,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정도로 기술을 구사합니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김연아 선수처럼 완벽한 기본기를 갖출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기본기가 조금 못하더라도 분발하여 비록 성공률은 낮으나 고난이도의 기술을 구사하여 때때로 좋은 성적을 얻는(성적이 기복이 있는) 아사다 마오같은 학생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좀 더 고급 독해 기술을 부분적으로 습득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 중간 독해의 훈련이 완벽하지 못해 불안정한 토대 위에 있어 실패하는 경우(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고급 기술을 습득하는 것도 우연적일뿐 학교에서 또는 학원에서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배우지는 못하므로 아사다 마오가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 난이도의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양학선 선수(체조)가 될 수는 없을까요?
*이해에 관한 설명은 다음으로 미룹니다. 다음 글에서 양학선 기술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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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진짜좋은글이네요ㅜ ㅜ 국어고민하는학생들한번씩정독하면좋을글인듯요 !
감사합니다